거짓말처럼 새해가 왔다. 지난 일 년, 일상의 발자국은 흐릿하고 지나온 시간은 희미하다. 모든 것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멈춰 있다가, 급하게 움직인 시계가 오늘이라는 현실에 데려다 놓은 듯 딱히 밝힐 소회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1년을 맞이하는 심정이 얼떨떨하기만 한 사람이 나 뿐은 아니지 싶다.

연휴 내내 모임은 제한되었고 외출을 위한 개인적인 빌미도 없었다. 속 편하게 집에서 책이나 보자. 책장이 넘어간 만큼 그간의 복잡하던 머릿속이 단순하지 않고 간략해지겠지. 갈피마다 생각을 켜켜이 접어 넣어 보리라. 작정한 듯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일’로 어느 해보다 치열했던 지난해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통신회사 현장 팀에서 26년을 일했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9번의 일』은 첫 문장부터 이렇게 시작한다.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하고 성실한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회사에 헌신하며 회사의 성장이 자신의 성공을 의미한다는 믿음은 확고하고 흔들림이 없는 듯 보였다. 자그마하던 회사가 자신의 노력으로 이름을 알리고 규모를 갖추었다는 비밀스러운 자부심이 그의 믿음을 부추겼을 것이다. 소싯적부터 중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회사는 시간을 나눠 가지고 추억과 기억을 공유한 친구이자 동료였고 가족이었으며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사를 자신의 일부이자 전부로 여기는 그가 무한경쟁과 효율을 내세운 회사로부터 내침을 당하는 사건으로 소설은 갈등을 유발한다.

회사는 담당부장의 입을 통해 그를 저성과자, 교육대상자로 낙인찍는다. 부장의 호출은 말이 면담이지 희망퇴직 강요나 다름없었다. 계속되는 면담이 그에게 얼마나 쓰고 떫은 모멸감을 맛보였을까. 진짜 인생의 낙오자, 실패자인가 싶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다 자신을 탓할 문제인가. 회사를 위해 젊음을 소진한 정당한 생색도 내고 그에 합당한 권리를 외치며 분노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맞다. 어렵고 고된 세월을 함께 헤쳐 온 그에게 감사와 예의, 존중의 태도를 보여야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는 그의 의중이 궁금했다. 회사를 상대로 끝까지 겨뤄보리라는 배짱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는 회사에 길든 사람이었다. 26년 동안 해 온 일과 아무런 관련 없는 업무를 떠맡거나, 더 나쁘게는 아예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하는 투명 인간 같은 처지로 내몰린다 해도 회사를 향한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회사와 자신 사이에 무언가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예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대목에서 나는 서글픔에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무기력, 박탈감, 소외감도 모른 채 회사에 삶을 맡겨버린 무기력한 모습을 본 듯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파고들면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에게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이었을까 아니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보호막이었을까. 몸이 습득하는 삶에 대한 믿음, 생계를 책임지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그에게는 ‘일’이었다. 피로하지 않은 척, 견딜만하다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듯했지만, 그도 역시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면 ‘힘들지?’하는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목구멍의 슬픔을 토해내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일할수록 소외되는 각박한 현실, 어디 하나 툭 터놓고 넋두리할 곳도 없는 씁쓸한 현실에서 허무함과 허탈함, 후회와 무기력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소설 『9번의 일』에서 주인공은 끝내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다. 회사가 지시하면 뭐든 해야 하는 78구역에서 그는 이름을 잃고 작업자 번호인 9번으로 끝이 난다. 익명의 누군가가 살아낸 처절한 삶일 뿐이라며 아무리 우겨보아도 내 가슴에는 어쩔 수 없는 공허함이 남았다. 9번은 누구일까. 진정 모르는 얼굴일까.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이야기는 ‘삶을 살아가는 일’을 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에 의해 변해가는 인간상에 관한 쓸쓸한 관찰이며 ‘일’로 고단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쓰다듬으며 나는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드러운 석양이 무사히 보낸 하루를 감싸고 있는 듯 보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종종 드는 허우룩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눈팔 새 없이 달려왔다면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분명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살아가는 일’은 단순히 스트레스와 고통, 슬픔만을 가져다주는 수단이 아닌 때로는 기쁨과 즐거움, 안도감과 기분 좋은 피로감을 안겨주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해주는 ‘삶’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기대를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는 서로를 위한 애틋한 시선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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