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머루’와 산책을 다녀왔다. 엄청난 체력으로 명성이 자자한 보더콜리 종인 머루와의 산책은 마스크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때까지 달려도 처음 달리는 것처럼 활기차다. 머루가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되었다. 한 살이 채 되지 않은 머루의 짧은 인생은 산책처럼 마냥 신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루는 폭력적인 주인에게서 학대받고, 산책 한 번 못하며 살다가 최근에서야 지금의 주인을 만났다. 그 삶을 벗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나와 한참을 산책하고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도 커다랗고 까만 눈알 속엔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서려 있었다. 나는 또 그 눈빛이 걸려 마음 한쪽에 걱정을 남겼다. 신나게 놀고 있는 머루를 또다시 보지 않으면 내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 같아, 다음 주말에도 머루와의 약속을 잡아야겠다.

내 마음에 머루가 잔상을 남기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나도 그런 존재인 듯하다. 어느 이들이 내게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궁금해 한다. 간혹 내가 생각나지 않는 텅 빈 기억을 짜 말하려 애쓰고 있으면, 그들은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선물 같은 걱정이다.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감사를 모아 “고맙습니다.”하고 말한다. 깊은숨을 쉬고 처진 어깨를 편다. 오늘을 정갈히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나를 걱정하는 고마운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다.

또 한 날의 선물은 톡을 통해 받은 한 문장이었다. 책의 한 구절인 그 문장을 선물로 보내준 이는 나와 버스로 네 시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먼 곳에 산다. 랜선 선물을 통해 우리 마음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한순간에 완전히 연결되었다.

1)‘걱정하는 마음은 서로를 연결한다. 그건 아마 연대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마음을 누군가는 ‘호기심’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동정’이라 하고, 누군가는 ‘걱정’이라고 한다. 아무도 정답을 모르지만 상관없다. 그이가 내게 보낸 사랑이 와 닿았으니 다 되었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다’라며 걱정을 비하하던 내가, 어느 날엔 어느 이들의 걱정이라는 선물로 이 험난한 시기를 따스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나라는 사람이 어리석었다는 증거였으리라.

내 숨과 저 이의 숨이 잠시라도 부딪칠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날이다. 작은 숨 하나 스칠 수 없는 야박한 시절, 내가 곤두세운 신경만큼, 내게 남은 당신의 잔상만큼, 닿지 않으려고 멀어진 거리만큼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있다. 아마도 짙어진 걱정만큼 우리의 연결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홀로 집에 남아 있는 시간도 외롭지 않다.

소복이 눈이 쌓인 아침, 창문 너머 거리에 작은 눈사람이 보인다. 내게 눈인사를 하는 듯하다. 모두의 입을 가린 마스크만큼 하얗다. 방금 내린 커피 향이 달다. 라디오의 선율도 따듯하다. 머루가 달리는 영상을 보며 까르르 웃는다. 연결된 모든 이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1)출처 : <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 저자: 솜숨씀,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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