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한 곳에서 일했지만…법 때문에 실업급여 제한
사각지대 놓인 노동자 구제위해 법 개정됐지만 ‘허점’노출

정규직 전환의 그늘①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시도된 지 3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5월말 기준 정규직으로 전환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는 18만 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규직 전환으로 오히려 피해를 봤다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발 들어달라고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정규직화가 만들어낸 '또 다른 그늘'을 충북지역에서 찾아봤다.(편집자)

“그땐 정말 좋았죠. 오래 있다 보니까 나도 정식 직원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에 너무 좋았습니다. 그동안 받았던 무시를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뭐 그런 느낌도 들고……. 근데 이제 와서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정규직이라는 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일할 수 있는 기간만 줄어든 거죠 뭐.”

비정규직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오히려 억울한 상황에 놓였다고 호소하는 이가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직접고용 정규직원이 됐음에도 사정은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법의 허점’으로 억울한 상황에 처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토로한다.

한국폴리텍대학교(폴리텍대)에서 30년 가까이 시설관리직원으로 일을 한 A(68)씨. 그는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앞으로 국민청원과 행정소송도 준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28년간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 했는데…

일단 그의 사연을 들어보자.

A씨는 1990년 37살 나이에 폴리텍대(당시 명칭은 직업훈련원) 시설관리 직원으로 채용됐다. 전기시설부터 건물 수리, 방수관리, 풀 깎기 등 말 그대로 시설과 관련된 온갖 일을 했다. 일을 시작한지 10년 정도 지났을 무렵에는 IMF구제금융이라는 국가적 재난도 겪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힘들다’, ‘죽겠다’ 호소하던 시절이었으니 2000년 이뤄진 폴리텍대 구조조정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구조조정으로 바뀐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소속이 폴리텍대에서 용역업체로 바뀌었다는 것과 둘째는 급여가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용역업체로 소속이 넘어가면서 급여가 절반으로 줄었어요. 예전 급여의 65%정도가 책정됐는데 거기에서 10%정도는 또 용역업체가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갔어요. 결국 예전 급여의 55%만 받은 셈이죠.”

박봉이었지만 온 나라가 힘든 상황이니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적은 금액이지만 당장 돈이 필요했고, 보장되지 않은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퇴사한다는 것은 가장으로써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게 구조조정 후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A씨는 그동안 세 명의 용역업체 사장을 만났고 18번이나 계약서를 썼으며 18번의 퇴직금을 받았다.

어느덧 65세가 된 2018년, 드디어 폴리텍대 소속의 정규직원이 됐다. ‘오래살고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하며 좋아했었다.

정규직원이 되는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용역업체를 퇴사하고 퇴직금을 정산 받은 뒤 다시 폴리텍대 신규직원으로 임용되는 방식이었다. 30여년의 경력을 뒤로 하고 신입사원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게 꺼림칙했지만 어차피 급여나, 하는 일 모두 똑같으니 불만은 없었다. 가슴에 학교 배지도 달고 명절 상여금도 두 번이나 받았다. 소속감과 책임감이 샘솟기도 했다고.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정규직이 된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A씨는 정규직이 되면서 좋아진 것은 없고 오히려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고 토로한다.

“정규직이 되면서 달라진 건 명절 상여금 두 번 받은 것이 전부예요. 비정규직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규직이 됐다고 해서 달라진 게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니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실업급여 왜 못 받나?

고용보험법 제 10조는 65세 이후에 고용된 사람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9년 개정됐다. 2019년 1월 15일 ‘65세 이후에 고용되거나 자영업을 개시한 사람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65세 전부터 피보험 자격을 유지하던 사람이 65세 이후에도 계속하여 고용된 경우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로 개정된 것이다.

법 문구대로라면 A씨는 당연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최근 고용노동부로부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부칙이었다. 부칙에는 ‘고용보험법 개정법 시행 당시 실업급여 적용이 제외된 사람은 개정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을 적용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 캡쳐

A씨의 생년월일은 1953년 3월 20일이다. 용역업체를 퇴사한 시점은 2018년 6월 30일이고 폴리텍대 신규직원으로 임용된 것은 2018년 7월 1일이다. 다시 말해 만 65세 3개월 10일이 지났을 때 폴리텍대 신입직원으로 채용됐고 A씨는 ‘개정법 시행 당시의 사람’으로 분류되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생년월일이 1952년 7월 1일부터 1953년 6월 30일 안에 들면서 고용주체가 바뀐 비정규직들은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는 얘기다.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가 폴리텍대에만 40여명에 이른다”며 “30여 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왔고, 고용보험료를 단 한 달도 거른 적이 없는데 만 65세 이후 용역업체를 퇴직하고 새로 임용됐다는 이유로 실업급여 자격이 안 된다니 도대체 무슨 법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물거품 된 ‘제 2의 인생’

A씨에게 실업급여는 단순히 ‘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에게 실업급여는 제2의 인생설계를 위한 밑천이었다.

“1년 정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재취업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평생 시설만 관리하던 저에게도 꿈이라는 게 있었고 더 늦기 전에 그것을 꼭 이루고 싶었거든요.”

그의 오랜 꿈은 간호조무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에게 침과 뜸을 놓아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아픈 사람들에게 침을 놓아주던 것을 보고 자란 탓인지 늘 한의학이나 침, 뜸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다고.

집안형편이 안 좋아 한의사가 되는 대학에 가거나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키우다보니 하루하루 살기 바빴고 꿈이 무엇인지 점점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일단 책을 사서 혼자 침과 뜸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필요할지 몰라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 놓았다. 10여 년 전부터는 관련 동호회에도 가입해 봉사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환자들에게 침과 뜸을 놓으려면 일단 의료법상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자격증을 따려면 1년가량을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해야 하고요. 돈을 안 벌면서 1년 동안 공부만 할 수 없는 형편이라 퇴직 후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려고 했었습니다.”

그는 현재 사회복지시설에 취업해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고 있다.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당장 돈을 벌어야만 했고 다행히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지금의 일도 보람은 있지만, 이제는 '꿈이고 뭐고 다 물거품이 된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는 “30여 년 간 한 번도 밀리지 않고 고용보험료를 꼬박꼬박 냈는데 정말 허무하기 짝이 없다”며 “이제라도 구제해주면 정말 좋겠다”고 힘없이 말한다.

‘8개월간 일당 6만6000원.’

그가 그토록 소망하는 것은 ‘8개월간 일당 6만6000원’이 아니라, 어쩌면 젊은 시절 못 이룬 ‘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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