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기사

 

나는 현대인이 마주해야 할 실존적 과제가 공복과 허기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조리도구, 조리 방법, 식품첨가물의 개발로 인류는 더, 더 자극적이고 만족스러운 맛과 식감을 구현해왔다. 유튜브에는 어떻게 하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고기를 구울 수 있는지, 육즙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고기 풍미를 극대화하는 방법 등등 주로 육고기 중심의 조리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영상에서 본 식재료들과 기구들을 구입할 수 있다. 인간이 불에 고기를 익혀 먹기 시작한 이래 가장 풍미가 넘치는 식탁을 손 쉽고 빠르게 마주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먹는 일만큼 기쁜 일이 없고, 음식만큼 배신하지 않는 쾌락은 없는 것 같다. 1인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비대면이 일상이 된 요즘에도 음식은 배달을 통해 내 곁으로 오고, 예상했던 쾌락을 만들어준다. 다른 사람 속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곤란하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환대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스트레스 속에서 한결같은 기쁨을 전해주는 매개가 음식 외에 무엇이 있을까 싶다. 가끔씩 맞이하는 한가로운 밤에 술상 하나를 내어놓고 낮 동안 한껏 자라난 고독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따뜻한 안줏거리로 보듬는 모습이 우리들의 자화상 아닌가. 최근에 만난 어떤 고등학생에게 당신은 나중에 노동자로 살게 된다면 어떤 모습을 꿈꾸는지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은 ‘칼퇴근(정시퇴근)해서 여유롭게 치맥(치킨에 맥주)하는 것’이었다.

먹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먹이사슬의 우위에 있는 개체가 열위에 있는 개체를 잡아먹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떤 생물종의 개체 수가 줄어들면 연쇄 반응이 일어나 영향을 미치기에 먹이‘사슬’이라고 한다. 생물종이 많을수록 포식자-피식자 관계 또한 다양해서 개체 수 변동에 따른 멸종을 면할 수 있다. 다양한 생물종들은 포식-피식관계만을 맺는 게 아니라 공생, 기생과 같은 서로의 생명을 보존해주는 관계를 맺기도 한다.

가령 철새의 이동은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활동이어서 맹금류도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며칠은 회복기를 가져야 할 정도인데, 그 시기에는 서로 잡아먹는 일을 그만두고 작은 새들이 맹금류의 등에 업혀서 이동한다는 이야기(김종철, 『간디의 물레』, 녹색평론사)라든가, 전세계 인간들이 먹는 식량 90%를 차지하는 농작물 100여 종은 꿀벌의 수분으로 열매를 맺는 비율이 70%에 달한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라든가, 인간의 존속을 위해 꿀벌 보호에 목소리를 내고 양봉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다양한 생물들의 공생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인간은 지난 200년 사이 개체 수를 8배 늘리면서 지구상 모든 야생 포유동물의 83%와 식물의 절반을 파괴했다.(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2018년 5월 21일 발표) 연구진은 지난 50년 사이에만 지구상 동물의 약 절반이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이 극단적인 파괴 속에서 인간은 특정 동물종의 개체만을 늘렸는데, 바로 닭, 오리, 돼지, 소와 같은 가축들이다. 한 해에 600억 마리가 넘는 닭들이 살점을 내놓기 위해 제 명을 살지 못한 채 죽고, 공장 속에서 태어난다. 종 다양성을 이룬 많은 생물이 인간이 먹기 좋은 종들로 대체되고, 개량되고 있다.

인간은 서둘러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욕구를 채우고 싶어 지금의 탄소 에너지 기반의 편리한 도시를 만들고 공장식 축산에 기댄 비대한 육식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TV만 틀면 고기들의 붉은 살점들이 노골적으로 전시되고, 붉은 핏물인 ‘육즙’은 맛의 한 요소로 언급된다. 사람들은 전보다 고기들을 쉽게, 자주 찾고, 사랑하고 있다. 여러 반찬과 곁들어 먹는 걸 넘어서 고기만 무한정 먹는 뷔페가 도처에 깔린 지는 15년도 안 된 것 같다. 

인간이 공복과 허기를 구별해야 할 때가 왔다. 빈속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빈속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먹을 것을 주저해 하며, 육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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