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식구들과 곧 열릴 충북여성영화제에 가서 영화<주디>를 보기로 했다. <주디>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 역을 맡은 배우 ‘주디 갈랜드’가 나이 어린 여성 배우로서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인생을 그린 영화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주디 갈랜드’의 삶은 비극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주디>의 감독 루퍼트 굴드는 ‘주디 갈랜드'가 인생의 역경을 극복한 삶을 살았다 결론지었고 그렇게 그리려고 했다고 말한다.

'주디 갈랜드'가 노래한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그가 분한 무지개 너머 세상을 꿈꾸는 도로시의 목소리는 흔히 상상하는 꿈과 희망에 찬, 순수하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아니다. 이미 인생의 쓴맛을 겪을 대로 겪은 착잡하고 쓸쓸한 목소리이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상 풍파 다 겪은 듯한 '주디 갈랜드'의 노랫소리는 당시 캐스팅 담당자들이 많이 고민하게 한 요소였다고 한다.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는 순간이 무지개를 넘을 때 상상하던 것처럼 그다지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많은 현실 경험을 생각하면, 꾀꼬리 같지 않은 도로시의 슬프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진정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꿈꾸었던 무지개 너머 세상은 무엇이었나 돌이켜본다. 3년 전 내가 활동가를 하겠다며 썼던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찾아보았다. 나를 세 가지 스토리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하나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맞지 않는 일을 그냥 해야 해서 참고 그저 하는 삶은 옳지 않으니, 하여 꿈을 꾸겠다고 했다. 또 하나는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공부할수록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많고 모두가 아픈 사회에서는 나 혼자 행복할 수 없기에, 나는 행복해도 행복할 수 없기에, 하여 공부하겠다고 했다. 마지막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시작하는 사랑이 세상을 움직이고 아픈 세상을 치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꿈꾸고, 공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리라 소개하였다.

 

“모든 괴로움이 레몬 사탕처럼 녹아내리는 곳,

새들은 무지개를 넘어가는데 왜 나는 그럴 수 없을까.”

-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o.s.t ‘Somewhere over the rainbow’의 가사 中

 

지난날 건너온 길 어디까지 도달했을까. 무지개를 건너는 길 입구를 발견하긴 했을까. 아직 문 앞에 있지도 못한 것 같은 현실에, 꿈꾸던 미지의 세계는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아 아득하다. 나는 누군가의 꿈을 짓뭉개고, 공부는 게을리 하고, 사랑은 내던지는 사람은 아니었던가.

미지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는 얼마나 되었을까. 나는 미지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못해 이를 거절할 대비만 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을 보고 당황하다가 이게 진짜일 리 없다며 소리 지르지는 않았던가. 눈에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새로운 세계를 잔뜩 일그러뜨려 찌푸린 눈으로 혐오를 담아 보고 있지는 않았던가. 그렇게 내가 기다려왔던 오즈의 세계를 내 손으로 직접 내치고 있던 것은 아니었던가. 사실 바로 지금이 현실 세계와 환상의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인 것은 아니었던가.

의외로 우리가 마주한 서쪽 마녀도 그저 물을 끼얹는 간단한 방법으로 내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꿈꾸는 무지개 너머 최고의 멋진 세계는 지금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인지도 모른다. 무지개 너머 멋진 세상을 꿈꾸었던 도로시가, 무대 위에서 희망을 노래하던 '주디 갈랜드'가 도달한 무지개 너머 세상이 미지의 세계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세계에 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무지개 건너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의 책을 한 장 넘기기만 하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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