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 청주방송 이행안 공개 ②] 이번에는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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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한 프리랜서 PD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CJB 청주방송에서 14년을 일한 이재학 PD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으로 회사와 다투다 패소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그 결과가 세상에 공개됐다. 

4자 대표자(CJB 청주방송·유가족·언론노조·시민사회)가 이행안 합의를 의논했다. 그가 사망한 지 170여 일에야 합의를 이뤘다. CJB 청주방송은 23일(목)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에 따른 이행안을 공개했다. 

이행안 요구안은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만들어졌다. △공식 사과 책임자 조치 △명예회복과 예우 △비정규직 고용구조·노동조건 개선 △조직문화 및 시스템 개선 △방송사 비정규직 법·제도 개선으로 6개 분야 27개 과제를 제시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이행점검위원회로 전환된다. 이들은 2023년까지 매년 이행 점검을 확인한다. CJB 청주방송은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만약 위반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충북인뉴스>는 두 차례에 걸쳐 CJB 청주방송의 이행안 내용을 전달한다. 

유족 대표 이대로 씨는 "비정상을 정상화로 돌리는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을 있는 일로 받아 들이는 게 힘들었다"며 "협의 과정에서 많은 의혹도 있었고 부당하게 번복되는 일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이성덕 대표가 아닌 다른 힘에 의해 힘들게 오게 됐다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 김다솜 기자
유족 대표 이대로 씨는 "비정상을 정상화로 돌리는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을 있는 일로 받아 들이는 게 힘들었다"며 "협의 과정에서 많은 의혹도 있었고 부당하게 번복되는 일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이성덕 대표가 아닌 다른 힘에 의해 힘들게 오게 됐다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 김다솜 기자

진상조사위원회는 CJB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26명을 심층 면접 조사했다. 그 결과 CJB 청주방송의 고용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법적 위반 사항도 다수 발견됐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파견·도급·프리랜서 등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 방식이 동원됐다. 

이재학 PD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동료들의 처우 개선도 바랐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프리랜서 PD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판례를 남기겠다”, “법원 판결이 나면 전국에 알려지지 않겠냐”는 말을 전했다. 조종현 민주노총 충북본부장은 “이재학 PD는 스스로 노동자라 주장하면서 더 어려운 노동자를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냈다”며 그를 ‘전태일’에 빗대기도 했다. 

이행 요구안에 그 뜻이 반영됐다. △비정규직 고용구조·노동조건 개선 △조직문화 및 시스템 개선 △방송사 비정규직 법·제도 개선이 제시됐다. 합의 이행 기간도 명시했는데 노동자성 인정과 불법 파견 직군 정규직 전환은 ‘2022년 12월 31일까지’로 가장 길었다. 이행 점검 기간이 매년 이뤄진다고 해도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이두영 CJB 이사회 의장이 경영 관여와 관련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성덕 CJB 청주방송 대표는 "경영 상 관여는 없을 것"이라며 "본인이 이두영 의장이 아니기 때문에 답변이 어렵다"는 등의 답변을 내놨다. ⓒ 김다솜 기자
기자회견장에서 이두영 CJB 이사회 의장이 경영 관여와 관련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성덕 CJB 청주방송 대표는 "경영 상 관여는 없을 것"이라며 "본인이 이두영 의장이 아니기 때문에 답변이 어렵다"는 등의 답변을 내놨다. ⓒ 김다솜 기자

이행 요구안에 따라 CJB 청주방송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AD 직군을 정규직 전환한다. 또한 CJB 청주방송이 외주 업무를 맡겼던 엔터컴 직원 2명은 사실상 CJB 청주방송 소속으로 판단돼서 정규직 전환 절차를 밟는다. 작가 직군에도 변화가 생긴다. 이들은 CJB 청주방송에서 상시·지속 업무를 해당하기 때문에 직접고용 된다. 고용안정이 필요한 파견 노동자(16명), 도급 노동자(4명)은 촉탁직이나 업무 지원직으로 전환된다. 

고용구조 개선 문제는 CJB 청주방송이 가장 합의를 망설였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성덕 CJB 청주방송 대표는 "이유는 잘 아시겠지만 올해 전반적인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며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의 요구를 최대한 맞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행 요구안 내용이 벅찬 부분도 있겠으나 최대한 성실하게 임하려고 한다"며 "하다가 안 되면 여러분들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가 장기화로 방송사 경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행 시기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가 만연한 상황에서 CJB 청주방송이 선제적으로 고용구조 개선에 나서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상황이 이런 만큼 고용구조 개선안은 100% 신뢰하기 어렵다. 경영 상 이유로 번복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성덕 CJB 청주방송 대표는 "이행 요구에 대해 벅차지만 최대한 성실히 이행하겠다"며 "이행하다 안 되면 여러분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 김다솜 기자
이성덕 CJB 청주방송 대표는 "이행 요구에 대해 벅차지만 최대한 성실히 이행하겠다"며 "이행하다 안 되면 여러분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 김다솜 기자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

당장 이달 말까지는 노동조건도 개선해야 한다. 언론노조의 책임이 무겁다. 이들은 비정규직 직군별 대표와 함께 회사와 협의를 통해 노동조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CJB 청주방송은 노동조건 개선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운용 지침 마련 △임금인상 및 복지 개선 △근무환경 개선 △전문 직종 상시 재교육 프로그램 제공을 약속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이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이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언론노조에서 비정규직 조합원을 받을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노조는 언제든 열려 있다"며 "다만 CJB 청주방송 지부에서도 비정규직 조합원 가입을 받으려 했으나 열악한 지위 때문에 전체가 가입하지 않으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현안을 단위 교섭에서 반드시 반영하는 게 언론노조 지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진상조사보고서와 이행요구안을 가지고 CJB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간담회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혜진 진상조사위원장은 "비정규직 추천 외부 위원을 참여시키거나, 노사협의회에 비정규직 대표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전했다.  사실상 언론노조가 '대리인'이 되는 셈이다.

CJB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행 요구안 실현 과정에서 한계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이 안 돼서 단체교섭권이나 노동권, 단결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조직이 아닌 개인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송계 고용구조 문제 축소판  

CJB 청주방송만 비정규직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아니다. 지상파 방송국들이 광고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방송영상제작사에게 그 부담을 넘겼다. 제작비 책정이 낮게 매겨지자 방송영상제작사는 프로그램 단위로 인력을 쓰고, 낮은 임금을 주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방송 인력 노동 환경이 무너졌다. 

대한민국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는 고질적이다. 이재학 PD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 4월 프리랜서(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방송계 종사자 1,1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다.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 절반 이상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10명 중 3명은 주 68시간 일했다. 이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었다. 응답자 74.3%는 근로계약도 체결하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율은 90% 가까이 나왔다. 

국회 소통관에서 발표된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보고서 결과 CJB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졋다. ⓒ 이재학 PD 사망 사건 대책위 제공
국회 소통관에서 발표된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보고서 결과 CJB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졋다. ⓒ 이재학 PD 사망 사건 대책위 제공

이행요구안에서 방송사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 개선 방안을 명시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사 재허가 조건상 경영 및 고용 건전성 기준 강화 △표준계약서 현실화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고용보험 적용 △방송산업 관계 법령에 ‘방송노동자’ 명시하는 법 개정 추진 △방송사와 비정규직에 대한 상생 방안 제도화 등 개선 방안을 관계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 ‘청주방송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다행히 언론노조도 이번 청주방송 진상조사를 계기로 타 지역민영방송들에 대한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최초로 실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 진상조사보고서 내용 일부 

진상조사위원회는 비정규직 실태 조사 결과를 놓고 ‘대규모 지상파 방송사가 안고 있는 고용구조 문제가 모두 포함된 축소판’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CJB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 조사가 대한민국 방송사에서 가지는 의미가 크다. 

CJB 청주방송의 이행요구안 시행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번 기회가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초석이 될 수도 있어서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진상조사보고서는 CJB 청주방송만이 아니라 언론계 전체 비정규직 문제를 열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열쇠라고 큰 평가를 할 수 있다"며 "역사적 전기를 마련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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