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앞 11일째 노숙농성하는 ‘옥시싹싹’ 피해자 강에스더 씨
7월 3일 환경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모여 집회 예정
‘노숙농성 중 환경부 건물 화장실 사용불가’ 환경부 태도에 분노

<'피해자'로 등록되지 못한 사람들>

 

가습기피해자 강에스더씨, 이병노 씨, 류승범 씨는 지난 15일부터 환경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가습기피해자 강에스더씨, 이병노 씨, 류승균 씨는 지난 15일부터 환경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좌측부터 강에스더, 이병노, 류승범 씨.
좌측부터 강에스더, 이병노, 류승균 씨.

 

“그동안 마음속으로 무수히 자살했고, 무수히 살인했습니다. 망가진 몸도 몸이지만 국가가 우리를 버렸구나, 우리는 파리만도 못한 목숨이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너무 분하고 원통합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고 의무인데 개인이 잘못한 거랍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해놓고 광고를 믿고 돈 주고 산 사람이 잘못이래요. 정말이지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감정을 어떻게 추스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15일부터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이들이 있다.

‘독성가습기 살균제로 사망, 상해 입은 피해자들은 파리목숨인가!’,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전시행정 집어치우고 피해자들 울부짖음 들어라!’

35도가 오르내리는 날씨 속에서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 가습기살균제로 가족을 잃었고 자신들도 평생 고통을 당해야 한다며 분노하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울분에 차오르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강에스더(39) 씨가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처음 사용한 것은 2011년 3월이다. 가습기에 세균이 많아 자주 청소를 해야 한다는 아침방송을 본 게 화근이었다. 매일 청소하기 어려우니 ‘인체에 무해한’ 살균제를 쓰면 안전하면서 편하게 가습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친절한(?) 안내도 받았다.

촉촉한 느낌이 좋아 가습기는 항상 머리맡에 두었고 몸이 안 좋은 날엔 코를 가습기에 대고 있다시피했다. 옥시싹싹을 사용한 기간은 장장 7개월. 구입한 3통 중 2통 반을 썼다. 다른 피해자에 비하면 긴 시간, 많은 양은 아니지만 좁은 방안에서 매일 밤 사용한 탓에 그녀의 몸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스노보드 등 스포츠를 즐겨하던 그였다. 치질수술을 위해 1박 2일 입원한 것을 제외하면 서른이 넘도록 입원을 해 본적도 없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1, 2층 계단만 오르내려도, 무거운 물건만 들어도 숨이 헐떡거린다. 급성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것만도 여러 차례, 알러지성 비염, 결막염, 상세불명의 기관지 폐렴, 천식, 폐결절, 간낭종, 갑상선결절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신세가 됐다.

그러나 그녀는 2017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으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판정을 받았다.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4등급 판정을 받은 것인데 소엽중심성폐섬유화 진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강에스더 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될 수 없었다.

물론 지난 3월 국회 본회의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공포되고 오는 9월부터 시행돼 피해자 인정 범위가 확대됐다지만 아직 시행령이 확정되지 않아 강 씨와 같은 이들이 피해자로 규정될지는 미지수다.

강에스더 씨가 2011년 3월 롯데마트에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산 영수증.
강에스더 씨가 2011년 10월 롯데마트에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산 영수증.
강에스더 씨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과 관련 항의의 표현으로 환경부 앞에서 소복을 입고 농성을 하고 있다.
강에스더 씨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과 관련 항의의 표현으로 환경부 앞에서 소복을 입고 농성을 하고 있다.

 

“옥시싹싹을 산 영수증도 있고, 사용했던 사진도 있고, 몸 상태가 사용 전과 이렇게 확연히 달라졌는데 피해자가 아니랍니다. 그동안 운영하던 가게도 몸이 아파 접고 이제는 생계도 불안합니다. 집에 있으면 열불이 나고 화가 치밀어 있을 수가 없어요. 분명히 피해를 봤는데 피해자가 아니라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죽는다는 각오로 나왔습니다.”

 

억울한 사연은 류승균(72) 씨도 마찬가지다. 골수이식을 받은 부인이 ○○병원 무균실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한 달 만에 사망했고 류 씨도 70평생 없던 피부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또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등록되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가 부인사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류 씨의 피부병도 가습기살균제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는 4등급 판정을 내렸다.

 

“무균실에서는 반드시 가습기가 필요합니다. 외부공기가 들어가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가습기를 틀어놓습니다. 환기도 안합니다. 간병인이나 제가 가습기를 주로 청소했었는데 그 일을 줄이려고 살균제를 사용했습니다. 열심히 사다 날랐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집사람 상태가 급속도로 안좋아졌습니다. 살균제가 괴물일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죽였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 손과 발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강에스더, 류승균 씨에 비하면 이병노 씨 상황은 좀 낫다고 해야 할까? 이병노 씨(53)는 가습기살균제로 어머니를 잃었지만 다행히(?)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피해보상금은 3000여만 원. 강 씨나 류 씨에 비해 상황은 좀 나은 편이지만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이 씨는 주장한다.

“어머니는 산악회 활동을 할 정도로 건강했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3년 만에 호흡을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8년을 고통 속에 살다가 돌아가셨죠. 3000만원으로 보상할 수 있나요?” 이 씨 또한 뇌출혈로 쓰러졌고 하루하루 분을 삭이는 사이 나이 50이 훌쩍 넘어버렸다.

환경부 앞 노숙농성은 강에스더 씨가 주로 하고 인천과 원주에 사는 류승균 씨와 이병노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농성장을 찾는다.

이들의 주장은 정부와 가해기업들이 제발 피해자들을 바라봐달라는 것이다. 6000여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몇 년 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사과한번, 조사한번 없었다며 피해자들의 고통을 눈으로 직접 보고 들어보라고 외친다.

 

“이제 와서 여러 질병과 가습기살균제 상관관계를 조사한답니다. 정말이지 답답한 노릇입니다.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사람도 없고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조사한번 안하고, 도대체 얼마나 죽어나가야 합니까.”

 

가습기살균제피해지원종합포털에 따르면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6794명, 사망자는 1552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피해자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땀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던 강에스더 씨는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바로 환경부로부터 받은 마음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안내문이다. 그는 이것을 보고 화가 더욱 치밀었다고 성토한다.

 

“몸이 아파 죽겠는데 마음을 치료하랍니다. 몸이 아픈데 캠프에 참여하랍니다. 근본적인 치료와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제발 제대로 된 조사와 현황파악,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세요.”

 

23일 환경부 직원이 환경부 건물 내 화장실 및 휴게실 사용을 통제하자 강에스더 씨가 항의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에스더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것이냐"며 분노했다. 환경부에서 건물 화장실과 휴게실을 사용할 수 없다고 출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강 씨는 그날 밤 항의의 표현으로 정문 앞에서 소복을 입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사회적 참사라 불리는 가습기살균제 사고.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9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오늘도 환경부 앞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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