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판지, 두 개의 노동조합 ⑤] 회사가 만든 노동조합, 이대로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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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를 아십니까. 2009년 12월 31일, 노동조합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복수노조가 허용됐습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만드는 노동조합에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왔습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듯이 대한민국 노동조합이 가질 수 있는 교섭권과 파업권도 하나입니다. 복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교섭창구단일화를 거칩니다. 노조 간 합의 또는 과반수 조합원이 있는 노동조합이 모든 권한을 가져갑니다. 

대양그룹은 제지사업 2개와 판지 사업 4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국내 최대 산업용지 생산 기업입니다. 대양그룹의 판지 사업 계열사 중 하나인 대양판지 청주공장에서도 복수노조가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던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대양판지 청주공장지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회사가 주도해서 한국노총 이름으로 또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든 겁니다. <충북인뉴스>는 ‘대양판지, 두 개의 노동조합’ 기획을 통해 그들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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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조 만든다”고 하니…대양판지의 맞대응은 ‘복수노조’

<2> 회사 전무가 말했다 “노동조합 등록해라”

<3> 노무관리이사의 등장, 그는 ‘노조 파괴 전문가’로 불렸다

<4> 회사는 세 번째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가입 비율 9.9%. 열 명 중 한 사람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이 나라에서 한 사업장에 세 개의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대양판지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양판지 노동자는 170여 명. 노동조합 가입 인원은 138명에 이른다. 노조 가입율이 약 80%에 이르는 이 회사, 언제부터 우리나라 기업은 노동조합 가입을 장려하게(?) 됐을까. 

3월 25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지부 대양판지지회 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 대양판지지회)이 설립됐다. 한 달 사이 많은 변화가 일었다. 회사는 대양판지 청주공장으로 노무관리이사를 보냈다. 회사 관리자들은 조회시간, 근무시간을 가리지 않고 현장직 노동자들을 불러냈다. 대화의 목적은 노동조합 가입 독려였다. 이전에는 한마디도 언급이 되지 않았던 노동조합이 두 개나 연달아 생겼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노동조합 파괴를 위한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있다. 제2, 제3의 노동조합에 권한을 더 부여해 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은 힘을 잃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결국 대양판지의 뜻대로 이뤄졌다. 회사가 사람들을 끌어모아 만든 노동조합이 ‘대표노조’가 됐다. 

노동조합 확정 공고문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제공
노동조합 확정 공고문 ⓒ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제공

 

“검찰이 범죄 개연성 인정한 것”

금속노조 대양판지지회는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했다. 이의 신청의 목적은 두 가지다. 나머지 두 개의 노동조합이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만든 노동조합은 인정받을 수 없다. 

또 하나는 노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위반 사항 지적이었다. 이번에 대표노조가 된 대양판지주식회사노동조합은 충북 청주공장과 전남 장성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장성군청에서 설립신고를 했다. 본래 2개 이상 지역에 걸치는 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에서 설립신고를 해야 한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이하 전남지노위)는 금속노조 대양판지지회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가 노동조합 설립에 개입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법원 확정판결이나 노동조합 설립 취소 처분이 없는 이상 이미 만들어진 노동조합을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설립신고 과정에서 위반 사항이 있었던 점은 노동조합을 처음 해봤기 때문에 몰라서 그럴 수 있다고 마무리됐다.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부장은 “이번 이의 신청으로 누가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노동조합을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대신 압수수색 결정이 내려진 걸 봤을 때 검찰에서는 범죄 개연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증거인멸·조작 우려 높다”

지난 9일(화) 검찰은 대양판지 본사부터 장성공장, 청주공장 그리고 계열사 광신판지까지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함께 수사에 들어갔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은 금속노조에서 사건을 접수한 3월 30일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한 차례 영장이 기각됐으나 이번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회사 책임자들이 어용노조에 개입하고, 설립을 주도 했다는 내용을 밝혀야 한다”며 “회사 책임자들의 논의 내용이나 결정 과정에 대한 집행 과정들이 확인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디지털 포렌식’ 수사다. 휴대전화에서 주요 증거가 확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일부 조사 대상의 휴대전화가 고장이 나거나,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성명을 발표해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화면 갈무리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성명을 발표해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화면 갈무리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이다. 수사를 시작한 지 두 달하고도 보름 만에 압수수색이 진행됐기 때문에 그 사이에 사측이 준비를 많이 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또한 계좌, 이메일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포함돼있지 않은 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압수수색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인원이 제한적이고, 디지털 포렌식이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진 않아서다.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부장은 “검찰에 제출되는 증거 자료 채택 여부를 놓고 건마다 다툼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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