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6월 8일부터 12일까지 ‘차별과 배제를 뒤엎자’ 충북차별철폐대행진을 벌입니다.

한국사회는 불평등 문제가 심각합니다. 불평등의 심화는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차별과 배제를 낳았습니다.

현행법과 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차별과 배제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재난은 한국사회의 불평등, 차별과 배제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일터와 삶 전체가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은 더 큰 위험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2020년 충북차별철폐대행진을 통해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코로나19재난을 계기로 더 큰 ‘위험’을 만들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려 합니다.

코로나19재난 위기 극복은 차별과 배제가 아닌 함께 사는 길을 찾을 때 가능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에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가 기고한 차별철폐대행진의 주요 의제를 5회에 걸쳐 연재 합니다. (편집자 주)

글 : 윤남용(공공운수노조 충북본부장)

 

 

어떤이는 지금의 코로나19 위기가 전 국민이 집단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도 하며, 향후 사회는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가 아니라 위드(with) 코로나 시대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현 사회의 바이러스 감염 사태는 계급, 계층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모든 이에게 이후 시대를 대응하는 다양한 고민들도 던져주고 있다.

 

최저임금마저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매년 6월은 다음 해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달이다. 얼마 전 최저임금 1만원을 최초로 제안하고 활동했던 故 권문석 님의 7번째 추모제가 있기도 했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요구에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화답했다.

최저임금 1만원을 넘어 비정규·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많은 노동자들이 좀 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 들어 매년 6월 한 달은 최저임금 투쟁이 최 정점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최저임금 1만원을 임기 내에 관철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이 공약을 지킬 수 없다고 발표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던 이 정부는 이제 재벌과 권력의 이익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쨌든 최저임금은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들에게는 자그마한 희망임과 동시에 커다란 절망이라는 선택을 매년 6월에 겪어야 한다.

그런데 이 최저임금마저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최저임금법 제7조에 적용되는 사람들이다.

알다시피 최저임금법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계약이 불투명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목숨 줄을 연명시키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그 법적 장치에서도 제외된 이들이 있으니, 바로 ‘장애인’이다. 최저임금 제7조 (최저임금의 적용제외) 제1항에 속하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 이하로 지급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는 헌법의 정신에도 어긋나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과도 맞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참에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나라에 800개가 넘는 법률이 존재한다는데, 제발 공부 좀 하시라. 최소한 헌법의 정신에 맞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기본 의무다.

이 법에서는 차별하지 말라 해놓고 저 법에서는 차별해도 된다고 하니 말이 되는가! 누가 뭐라 해도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다.

 

비장애인의 ‘노동’과 다르지 않은 장애인 ‘노동’

 

장애인 (노동에 대한) 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장애인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매우 절실한 권리로 다가온다.

비장애인은 이동권(이동할 수 있는 권리), 교육권(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 자립생활권(자립 생활할 수 있는 권리) 등의 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 권리들은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따로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은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비장애인의 택시에 해당하는 콜택시)이 없으면 비장애인이 누리는 자유로운 이동을 할 수 없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 부모들은 장애아를 숨기고 누구나 무상교육을 받아야하는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학교에 보내고 싶어도 장애라는 이유로 교육기관에서 거부해 입학조차하기 어려웠다.

비장애인은 성인이 되면 통념상 자립한다. 그러나 장애인은 가족에 의해, 교육기관에 의해 성장기 사회생활은 차단당하고 생활시설에서 갇혀 살다보니 자립이란 개념을 이해하는데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다.

비장애인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산 좋고 물 좋은 한적한 생활시설에서 갇혀 지내는 경험을 하면 아마 자립생활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것이다.

이것은 무슨 해방 후나 어려웠던 과거 언제 적 보릿고개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7년에 제정되어 2008년에 시행되었다.

청주시내에 저상버스가 처음 다닌 시기도 2008, 9년도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 이야기이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장애인의 ‘노동’을 비장애인의 ‘노동’과 다를 것이 없으며 일할 수 있는 있는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는 ‘노동’을 지금 이 사회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

 

3중, 4중의 벽으로 존재하는 ‘차별’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법에 장애인 의무고용에 관한 제도가 들어 있다. 50인 이상의 모든 사업주(기업, 공공기관, 국가 및 지자체)는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이상 고용해야 한다.

2020년 기준으로 기업은 3.1%,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은 3.4%이상 의무고용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간기업 특히 재벌들은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아 부과되는 고용부담금 즉 벌금을 납부하고 장애인을 고용시키지 않는다.

이렇듯 장애인의 노동은 임금에서의 차별, 고용에서의 차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의 시혜와 동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모든 권리로부터의 차별이라는 3중, 4중의 벽을 넘어야 한다.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 불안함, 어려움의 무게는 개인, 집단, 지역사회마다 다를 것이다.

특히 돈과 힘 있는 재벌과 권력은 이 무게를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지우려 하고 있다. 많은 수의 장애인이 대부분 보호 작업장에서 일을 한다.

보호 작업장도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임금을 받는 사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제외조항으로 많이 받아야 임금의 70%정도 받으며,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쉬게 되면 휴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다른 사각지대, 장애인 활동지원 노동자들

 

장애인 노동과 같이 또 다른 노동의 사각지대가 있다. 장애인과 떨어질 수 없는 직업인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노동 또한 현재로선 최저임금에 미달하고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매년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하는 활동지원수가에 임금이 반영되어 있으며 실시간 결제시스템인 바우처시스템으로 운영되다 보니 수가를 대폭적으로 인상하지 않는 이상 최저임금, 근로기준법에 의해 지급해야할 법정수당 등이 보장이 되지 않는다.

정부예산으로 운용되나 그 사업기관은 장애인단체와 같은 민간 사업기관에서 수임하다 보니 실질적 사용자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더구나 더 나은 처우를 사업기관에 요구를 해봐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는 장애인 단체 등의 사업기관은 민간 기업처럼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서비스 이용자(장애인)와의 매칭이 끊어지면 곧바로 임금생성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생계에 치명타를 입는다. 특히 코로나19사태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서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에선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비롯한 돌봄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우를 개선하고 바우처시스템이 아닌 월급제형태의 임금지급을 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원을 하루빨리 설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경기, 대구, 경남 등에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서비스 이용자인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모두 만족스런 결과를 낳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충북도 부족한 것은 당사자들과 소통하면서 하루빨리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할 것을 기대해본다.

‘함께 살자’, ‘장애인이 행복한 세상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 등의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정규직, 비정규직,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별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사업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실현하고픈 모두의 염원이기 때문이다.

운전할 때의 사각지대는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보조 거울을 달거나, 최신 차를 사거나, 몸을 앞으로 움직여야 그나마 보인다.

복지의 사각지대인 장애인 복지, 코로나 19사태의 사각지대인 비정규·불안정 노동자, 코로나19,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인 장애인 노동. 최소한 몸이라도 움직여 살피고 함께 아파하고 연대하자.

국가와 정부는 장애인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상충되는 법과 제도를 뜯어 고쳐 차별받지 않는 사업장, 사회를 지향하며 함께 행복한 사회를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각지대 없는 사회로 좀 더 가까이 가지 않을까?

지난 5월 22일 광주 하남산단 재활용업체 사업장에서 홀로 일하다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장애를 가진 스물여섯 청년노동자 故김재순 님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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