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다양한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낚시 배를 한번도 타보지 않았지만 ‘노인과 바다’를 읽을 땐 나도 나이든 어부가 되어 그의 고충과 보람을 같이 느낄 수 있었고 ‘셜록홈즈’를 읽을 때는 레인코트에 멋진 모자를 쓴 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아침 안개가 자욱한 영국 베이커 스트리트 주변을 거닐며 중요한 단서를 찾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었지요.

요즘 영화로 나와 사랑받고 있는 ‘작은 아씨들’도 어릴 적 언니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수 없이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었어요. 사랑스러운 4자매의 이야기에 푹 빠져 엄마가 동생으로 딸 쌍둥이를 한번에 낳아주면 우리집도 한 번에 4자매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며 엄마가 알면 기절할 만한 소원을 둘이서 두 손 모아 빌곤 했답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는 것과 책을 읽으며 내 머릿 속에서 만들어진 영상 속에 빠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가끔 주인공의 외모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서 영화에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말들을 하는데요. 책을 읽을 때는 그럴 걱정이 없답니다. 책에서 묘사한 주인공의 모습이 내 머릿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이 되기 때문이죠.

여기 돈키호테 책에도 ‘내가 저 인물이었다면’하고 상상하게 되는 극과 극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마르셀라

첫 번째는 너무 아름다워 문제가 생기는 여성 ‘마르셀라’입니다. 여러분들이 꼽는 최고의 미녀는 누구인가요? 세르반테스가 책 속에서 마르셀라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묘사하는 걸 보시고 다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이가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이 되자 그 아이를 보는 사람은 모두 그토록 곱게 아이를 기르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고, 대부분이 아이에게 반해 정신을 잃었죠. 아이 삼촌은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보며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꼭꼭 숨겨 놓고 길렀어요. 아무리 그렇게 했어도 아이가 대단한 미인이라는 소문은 널리 퍼졌고…중략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거의 스물네댓 그루나 되는 높다란 너도밤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끈한 나무껍질에 마르셀라의 이름이 새겨져 있거나 적혀있지 않은 나무는 하나도 없어요. 어떤 데는 이름 위쪽에 왕관이 새겨져 있는데, 이건 그녀를 연모하는 남자가 마르셀라는 그 뛰어난 미모로 왕관을 얻는 것이 합당하다고 확실하게 표시하려 한 거죠. 여기서 한 놈이 한숨을 쉬면 저기서는 다른 놈이 신음하고, 다른 쪽에서 사랑의 노래가 들리는가 하면 이쪽에선 절망의 노래가 들려요. 떡갈나무나 바위 아래 앉아 아침이 될 때까지 그녀 생각에 취해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자가 있는가 하면, 낮잠을 자야 할 가장 더운 여름의 열기 속의 타는 듯한 모래사장에 누운 채 계속 한숨을 쉬어 대며 자비로운 하늘에 대고 하소연하는 자도 있었답니다.

 

캬아~ 이쯤 되면 이 근방 청년들은 다들 밤 낮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고 있는 거 맞죠?

이렇게 온 우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르셀라가 연루된 사건은 바로 ‘장례식’이었습니다.

엄청나게 추앙받던, 뭐하나 빠지는 게 없던 젊은이 ‘그리소스토모’ 또한 그녀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요. 결국 마르셀라의 사랑을 얻지 못해 좌절한 나머지 ‘자살’을 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자살은 이 마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남겨진 그의 글이 장례식장에서 낭독이 되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외치던 온 동네 사람들이 이제 그녀의 매정함을 쑥덕이게 되지요.

유서를 슬쩍 들어보면 마르셀라의 아름다움, 그녀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마음, 그러나 흔들림 없는 그녀의 마음, 차가움, 비정함, 그녀 때문에 생긴 질투, 허망함, 죽음에 이르는 절망들이 구구절절 장장 7페이지에 달하도록 시로 적혀져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르셀라가 영 몹쓸 여인처럼 느껴지거든요.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 때 지나치게 외모 몰아주기를 한 창조물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흔히 트집이라고 하죠. 외모만 얼핏 본 사람과 그 창조물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과의 예상가능한 대화를 한번 상상해보면…

A: 머리가 텅텅 비었을 거야.

B:아닌데? 똑똑한데?

A:그럼 성격이 드러울 거야.

B:성격도 나름 나쁘지 않더라고.

A:아냐. 그거 다 연기하는 거고 자존심만 드럽게 세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 막 무시하고 그럴지도 몰라.

B:겸손하던데? 너보다…

A:야! 그런 애들이 동성한테는 쿨한 척하는데 이성 앞에서는 돌변할지도 몰라. 막 눈웃음 치고.

B:눈 웃음 치는 거 한번도 못 봤는데? 그런 거 안 해도 예쁜데 뭘 눈 웃음을 치겠어.

A:아냐. 니가 몰라서 그래. 그런 애들이 자기 좋아하는 사람들 줄선거 알고 어장관리 한다. 적당히 잘해주면서 자기 못 떠나가게.

B:연애에 관심 없다고 완전 딱 잘라 말하던데? 흑심 있어 보이면 바로 자기는 아니라고 얘기하고. 자기는 지금 결혼이나 연애는 관심 없다고 딱 정확하게 말하던데?

A:아닐거야. 잘 봐바. 막 명품선물 밝히고 SNS에 설정샷 가득하고 그럴지도 몰라.

B:그냥 살만큼 사는 애지 막 그렇게 명품 밝히는 애는 아닌거 같아. SNS는 못 봤고.

A:야, 혹시 막 꽃뱀 같은 애 아냐? 돈 많은 남자들 옆에서…

B:그만! 그만해. 얼굴 예쁘다고 거기까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A:야, 너는 뭘 안다고 그 애만 싸고돌아? 그렇게 친해?

B:아니… 너는 만나 본 적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무조건 흠만 잡아?

A:뻔하잖아. 외모만 예쁜 애들 중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들을 한 것뿐이야. TV나 영화에서 보면 이런 얘기들 수두룩해. 다 현실을 기반으로 쓰는 거라며 시나리오들…

B:그 뻔한 클리셰에 그만 빠져보자 우리…

A가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 소비된 우리의 모습이라면 B는 바로 400여년 전의 세르반테스의 모습일지 몰라요.

저 또한 마르셀라를 외모와 인성 모두 너무 말도 안되는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어 놓아서 사실 잠깐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는 거 인정합니다. 읽으면서 앞서 상상 속 대화의 A가 가졌던 생각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장례식장에 마르셀라가 직접 나타나 자신의 생각과 심정을 당당히 이야기하는데 그 멋진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늘은 저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랑해 달라 하지 않아도 저의 아름다움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제게 보여주신 사랑 때문에 저 역시 여러분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제게 주신 타고난 이해력으로 무릇 아름다운 것은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그 역시 자기를 사랑하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중략

하늘이 저를 아름답게 태어나게 해주시는 대신 혹시 못생긴 여자로 만들어 주셨더라면, 저는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도 되는 건가요? 무엇보다 저의 아름다움은 하늘이 베풀어 주신 은혜로, 제가 요구하고 선택했던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캬아…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캐릭터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심지어 마르셀라는 한번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특권처럼 쓰지 않은 까닭에 그녀의 당당함은 오히려 겸손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자신은 아름답게 태어났으나 그 아름다움으로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남들에게 거짓 희망을 준 적이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으니 자신으로 인해 질투나 절망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소스토모의 ‘자살’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리소스토모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을 준 적이 없으므로 저의 무정함보다도 오히려 그분의 집념이 그분을 죽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분의 생각은 순결했고, 그러니 그분의 생각에 응했어야 했다고 제게 짐을 지우신다면, 말씀드리지요. 중략

저더러 야수나 치명적인 뱀이라고 하시는 분은, 저를 그냥 해되는 나쁜 여자로 치부해 버리십시오. 제가 배은망덕하다고 하시는 분은 제게 잘해 주지 마십시오. 제가 감사할 줄 모르는 여자라고 말하는 분은 저를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제가 잔인하다고 하시는 분은 제 뒤를 따라다니지 말아 주십시오. 야수에, 치명적인 뱀에, 은혜를 모르고, 무정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이 여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들을 찾지 않고, 섬기지도 않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다니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리소스토모를 죽인 것은 그의 초조함과 무모한 욕망이었거늘, 어찌하여 저의 정결한 행동과 신중함을 죄라고 하시는 겁니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너희들, 이제 닥쳐! 그리고 관심 꺼. 나도 너희한테 관심 없으니.

이 얘기를 이렇게나 고상하게 할 수 있는거군요. 사회적인 평가와 대중의 시선으로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이 여인은 이렇게 때려 부숩니다.

이 부분을 고른 기사단의 소감
이 부분을 고른 기사단의 소감.

마르셀라는 ‘내가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보기도 쉽지 않은 캐릭터이지만 정말 내가 그녀였다 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녀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 대중의 시선을 뒤로 하고 걸어 갈 수 있을까요? 400년 전, 스페인 사회에서도 책 속에 이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여성과 그 시대 현실 속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 사이에 비교할 수 없이 큰 차이가 존재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셀라의 이런 모습을 꼭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현 시대를 함께 향유하는 시나리오 작가님들, 드라마와 영화 감독님들, 연예부 기자님들, 사생팬 및 네티즌 분들께 생략되지 않은 마르셀라의 연설 4페이지를 꼭 보여드리고 싶답니다.

세르반테스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그 뻔한 클리셰에 그만 빠져보자 우리…’

 

도로테아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삽화 도로테아.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삽화 도로테아.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도로테아와 그녀의 방에 급습한 돈 페르난도.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도로테아와 그녀의 방에 급습한 돈 페르난도.

두 번째는 너무나도 불행한 여인 도로테아입니다. 세상에는 각자의 사연으로 불행한 여러 사람들이 있지요. 그 중에서도 도로테아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 같아요.

집이 너무 부유해서 평범한 농사꾼이 기사 작위까지 받게 된 부모님 밑에 태어난 무남독녀 외동딸 도로테아는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자랑스러운 딸이었지요.

 

부모님께서 당신들의 가장 큰 재산으로 귀하게 여기셨던 것이 바로 딸인 저였답니다. 그분들을 이을 사내아이나 다른 딸이 없었기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던 부모님께 저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죠. 저는 부모님이 당신들을 비춰 보시는 거울이었고, 노후에 의지할 지팡이였습니다. 그분들의 소망은 모두 저를 향한 것이었고, 저는 그분들을 하늘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의 소망은 모두 훌륭한 것들이어서 제 소망은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지요. 제가 부모님 마음의 주인이었으니 그분 재산의 주인이기도 했습니다.

 

아… 이 부분 왜 낯설지가 않죠?

4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변함이 없는 것 같네요. 이런 도로테아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바로 “결혼” 때문이었습니다.

그 지역 대귀족의 작은아들 방랑자 돈 페르난도가 도로테아의 아름다움을 엿보게 되고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공세는 물론 마을 전체가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구애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모든 행동이 음탕한 욕망을 채우기 위함으로 느껴졌고 그에 대한 마음을 전혀 열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둘은 “결혼”을 하기에는 신분의 차이가 너무 컸던 바. 도로테아의 부모는 혼기에 다다른 딸이 결혼 가능성이 없는 돈 페르난도와 부정한 일에 휩싸이게 되는 것을 염려하고 그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마땅한 상대와 결혼을 시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 소식이 그의 귀까지 들어갔고 몸이 달은 돈 페르난도는 야심한 밤 그녀의 방에 찾아와 다짜고짜 그녀를 덮치려고 하고 청산유수 같은 말로 그녀를 현혹하기에 이르렀으나 도로테아는 정신을 되찾아 용기를 내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는 나리의 아랫사람일 뿐 노예는 아닙니다. 나리의 혈통이 귀족이라 해서 저의 비천함을 업신여기고 욕보일 권리는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됩니다. 나리께서 신분이 높은 신사라고 자만하시는 것만큼 저도 평범한 농사꾼으로서의 그만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나리의 권력은 제게 아무런 힘도 못 쓸 것이고, 나리의 재산도 제게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나리의 말씀 또한 저를 속일 수 없으며, 나리의 한숨과 눈물 역시 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강인한 모습에 돈 페르난도는 그 자리에서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릅니다. 방에 있던 성모상이 하늘의 증인이 되고 땅의 증인으로는 몸종이 들어와 앉아 그들 앞에서 돈 페르난도와 그녀는 결혼을 맹세하고 도로테아는 예상치 못한 첫날밤을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돈 페르난도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고 며칠 뒤 돈 페르난도가 이웃 마을 아주 지체 높은 집안의 최고로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좌절한 도로테아는 직접 돈 페르난도를 찾아가 무슨 마음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물어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돈 페르난도의 결혼에도 얽히고 설킨 사연이 있어 끝내 만날 수가 없었고 집을 나오는 과정에서 데리고 나온 하인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합니다. 이미 온 마을에는 배신한 몸종이 흘린 이야기와 더불어 데리고 나온 하인과 말도 안되는 저급한 이야기가 퍼져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산에 숨어 죽어 버리려고 했지요.

 

이렇게 저는 다시 산속에 숨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한숨과 눈물로 하늘에 기도할 장소를 찾았던 겁니다. 저의 불행을 가엾이 여기시고, 이 불행에서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주십사 하고요. 그게 안 된다면, 아무런 죄도 없이 고향에서뿐만 아니라 타지에서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이 슬픈 여자에 대한 기억이 남지 않도록 아무도 없는 이 산속에서 죽을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하고요.

 

기댈 곳이 단 한군데가 없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인 것이겠죠?

믿었던 가장 가까운 몸종을 시작으로 사랑의 맹세를 거듭하던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부모님께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안전망을 벗어난 아름다운 여인은 만나는 모든 남자들로부터 힘에 밀려 겁탈의 위협을 당하고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말지요.

아… 어디 한 군데 위로를 해주기에도 힘든 상황입니다.

대부분 많은 소설과 현실에서는 이런 캐릭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삶을 지속할 만한 그 어떤 희망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불행한 도로테아는 이 책 속에서 모든 사람들의 동정심을 한번에 받고 사라지는, 그야말로 그냥 한번 등장하고 마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1권이 마무리될 때까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누구보다 현명하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갑니다.

한편 그녀에게 세상 모든 고통을 안겨준 돈 페르난도에게도 나름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절망에 빠트렸던 돈 페르난도의 결혼식에도 놀랄만한 사연이 숨겨져 있었거든요. 특히나 그 결혼식에는 또다른 남녀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켜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알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한가지 힌트만 드리고 갈게요. 도로테아가 돈 페르난도와 다른 여인(루스신다)의 결혼식에 대해 전해들은 이야기를 돈키호테 일행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읽고 기사단 한 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한번 보셔요.

 

돈 페르난도가 루스신다와 결혼한 날 그녀가 그 사람의 아내가 되겠다며 <예>하고 대답한 다음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는 겁니다. 신랑이 달려가서 숨을 쉬게 하려고 가슴 단추를 끄르니 루스신다 필체로 된 편지가 있었답니다. 자기는 이미 카르데니오의 아내이므로 돈 페르난도의 아내가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쓰여 있었대요. 그 남자 말에 따르면, 카르데니오라는 사람은 같은 도시에 사는 아주 지체 높으신 신사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돈 페르난도에게 <예>라고 대답한 것은 부모님께 복종하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이 부분을 고른 기사단의 소감.
이 부분을 고른 기사단의 소감.

이 결혼이 도로테아의 불행뿐 아니라 연관된 모든 사람의 불행을 가져온 것은 불 보듯 뻔하겠지요? 게다가 이미 책 속의 독자들은 카르데니오를 도로테아보다 먼저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실마리가 한번에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누가 봐도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누가 봐도 살 이유가 없이 불행해 보이는 사람도 모두 우리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 범위 안에서 떠다니는 오해의 조각들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남의 행복과 불행을 우리의 잣대로 쉽게 평가하면 안되는 것이겠죠.

내가 오늘 하루동안 속세에서 말하는 외모, 재력, 지성 삼박자를 갖춘 마르셀라가 된다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할까요? 아니면, 세상 온갖 불행한 사연을 다 안고 있는 도로테아로 살아야 한다면 지금의 나의 불행의 씨앗들이 하찮기 그지없어 보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행복도 불행도 사실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오늘은 돈키호테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사연 많은 두 여인의 삶을 통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후기로 만나뵐게요!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