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이길 거부한다⓷] 일진다이아몬드 노조, 이렇게 만들어졌다 

묶음기사

‘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 회사’라는 타이틀은 대단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됐다. 그러다 깨달았다. ‘우리는 부품으로 일하고 있었구나’. 2018년 12월 19일, 금속노조 산하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결성됐다. 부품이길 거부한 생산직 노동자 280명 중 250명이 노동조합 가입 신청서를 내밀었다. 결성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조는 해묵은 문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노사 갈등은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행동 방법인 파업에 이르렀다. 전면파업 200일을 맞은 지금, <충북인뉴스>는 이들의 투쟁기를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지난 연재 기사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 정경구 씨는 전날 밤 술자리를 떠올렸다. 술잔과 함께 회사 이야기가 오갔고, 결론은 ‘노동조합’으로 끝났다. 그 술자리에서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정 씨 하나였다. 급여, 상여금, 사내 복지까지… 노조 있는 사업장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정 씨는 “회사는 갈수록 성장하는데 왜 우리는 몇 년이 흘러도 그대로인지, 회사에 요구할 수 없는 창구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노조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에 노조 하는 사람 누가 있더라’하다가 고등학교 동창 연락처를 찾아냈다. 동창은 자신이 어쩌다 노동조합에 들어갔고, 어떤 일을 했는지를 쭉 설명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거다 싶었다. 정 씨는 같은 공정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다른 공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찾아갔다. 다들 ‘빈말’로 취급했다. 정 씨가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오늘 우리 퇴근하고 민주노총 가봅시다.” 

정 씨는 노조 결성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을 모아 민주노총 충북본부로 향했다. 행동으로 옮긴 건 처음이니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이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근로 조건에 관심을 가지는 건 처음 보게 됐다. 민주노총에서는 사내 직급 체계부터 문화까지 꼼꼼하게 살펴 갔다. 

“현장직이랑 말 섞지 말라”

이날 민주노총 충북본부를 찾아간 사람들 대부분이 일진다이아몬드 노조의 주축이 됐다. 성세경 전 금속노조 충북지부 사무국장이 노조 조직을 전담했다. 성 전 국장은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비인간적인 대우와 처우였다”고 말했다. 

성세경 전 금속노조 사무국장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성세경 전 금속노조 사무국장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가령 눈이 많이 내리면 치우는 사람은 무조건 ‘현장직’이다. 사무직은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낄낄거리는 이 사내 문화가 노동자들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2018년 이전까지만 해도 매주 목요일 15~20분씩 조기 출근해서 현장직 노동자들에게 청소를 맡겼다. 일진다이아몬드 관리직은 사무직들에게 현장 노동자들과 말 섞지 말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처우는 갈수록 안 좋아졌다. 10년 차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상여금 400%가 날아갔다.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맞추기 위해 상여금 400% 깎는 꼼수를 썼다. 최저임금 정책으로 임금에 나가는 돈이 많아지니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미룬 것이다. 

작업 환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18종의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이었다. 이수연 조합원은 “내가 일하는 현장은 질산, 염산 약품을 많이 사용하는 데 비해 설비가 미비하다”며 “가스를 잘 빨아들이지 못하고 낙후된 상황에서 일해왔다”고 말했다. 

“저는 2011년도에 입사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현장직에 대한 복지가 나름 충분했어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사라지는 과정을 다 보게 됐죠.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불만이 있어도 얘기를 꺼내질 못했어요. 삼삼오오 말해서 회사에 불평해도 그때뿐이었죠.” - 김대권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사무장 

배출구가 있는 건물 옥상 현장. 산으로 인해 바닥의 페인트칠이 녹아내렸다. 넘쳐 흐른 산은 배수구를 통해 들어갔다. 일진다이아몬드의 작업 환경이 노동자들에게 불안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배출구가 있는 건물 옥상 현장. 산으로 인해 바닥의 페인트칠이 녹아내렸다. 넘쳐 흐른 산은 배수구를 통해 들어갔다. 일진다이아몬드의 작업 환경이 노동자들에게 불안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쌓여가는 노동조합 가입 신청서 

“교육 내용도 어렵고…. 그때는 걱정, 근심, 두려움밖에 없었어요. 노조 만들자고 했을 때 ‘우와’하면서 분위기가 좋은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침울해서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죠.” 

홍재준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 지회장은 교육받던 시기를 ‘걱정, 근심, 두려움’이라고 표현했다. 성 전 국장은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찾아온 청년들에게 ‘너를 믿어라’, ‘할 수 있다’는 격려를 건넸다. 성 전 국장은 “신규 노조 조직을 하다 보면 특별히 애정 가는 사업장이 있는데 일진다이아몬드가 그랬다”며 “다들 선하고, 착하고, 성실한 노동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조 설립에 동의한 사람들은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10차례 노동조합원 교육을 마쳤다. 일진다이아몬드의 모기업 일진그룹은 노조 파괴로 악명이 높았다. 다른 사업장보다도 교육 기간이 길었다. 그만큼 공들여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 

2019년 7월에 열린 결의대회.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2019년 7월에 열린 결의대회.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교육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간 그들은 노동조합 가입서를 동료들에게 건넸다. 걱정, 근심, 두려움으로 출발한 싸움이었다. 김대권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사무장은 “처음에는 80장이었던 가입서가 퇴근할 땐 150장이, 그다음에는 200장으로 넘어갔다”며 “퇴근하고 만난 동료가 작업복 속에서 두툼하게 쌓인 노동조합 가입서를 꺼낼 때 기분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생산직 280명 중 250명의 노동자가 조합원이 되겠다고 나섰다. 3일 만이었다. 2018년 12월 18일 금속노조 산하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결성됐다. 성 전 국장은 “일진다이아몬드의 노조 결성은 조합원들이 삶의 주체로 서는 계기가 됐다”며 “그전까지 노동자들은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받았지만 더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