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걸어와 “학교랑 선생님 꼭 알리고 싶다” 밝혀
지난 1월 4년만에 충북에너지고 졸업한 박○○의 사연

“기자님, 한번 써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이런 학교 없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뭐 이 마음을 뭘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정말이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지난 1월 15일 불현듯 걸려온 전화 한통.

청주시 미원면에 사는 ○○의 할머니라고 자기소개를 마친 A씨는 자신의 손자가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취업까지 시켜준 학교가 있다며 기사를 써주면 안되겠냐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자신과 손자의 이야기는 밝히기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런 학교는 널리널리 알리고 싶어 직접 전화를 걸었다며 꼭 만나고 싶다고도 말한다. 생면부지 기자에게까지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는 미원면 할머니.

솔직히 순간적으로 “뭐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호기심은 발동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감사하다는 걸까?”

 

사연의 주인공은 지난 1월 충북에너지고등학교를 졸업한 박○○군이다. 에너지고에 2016년 3월 입학해 2020년 1월에 졸업했으니 고등학교를 4년 다녔다.

할머니와 에너지고 교사들로부터 들은 박 군의 사연은 이렇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박 군은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여러 번의 수술을 했다. 그만큼 초·중학교 시절 학업결손이 컸다. 할머니는 ‘공부’는 부족하지만 어릴 적부터 기계, 자동차 등 손으로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손자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에너지고 입학을 추천했고 교과보다는 ‘손재주’에 능했던 박 군은 1학년 말경 (냉동기술)기능반을 선택하게 된다. 부족한 교과실력을 기능반에서 만회해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박 군이 2학년이던 2017년 9월, 고광욱 교장이 부임한 이후 기능반은 학교의 고민거리가 되기 시작한다. 

2017년 당시 에너지고에는 냉동기술 등 4개 기능반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기능반 학생들은 교과보다는 기능대회 메달에 '목숨'을 거는 생활을 했었다. 교과수업은 물론 담임교사와 함께하는 조회나 종례에조차 거의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광욱 교장은 이런 기능반이 꼭 필요한지 고민하게 된다. 매년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만 그만큼의 성과는 없었고, 메달을 따지 못한 대다수 기능반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 또한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대다수 기능반 학생들은 지방경기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을 첫 목표로 시작해 전국대회, 기능올림픽 출전을 위해 고등학교 3년을 모두 희생합니다. 하지만 매년 지방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수만 명의 학생들 중 금·은·동 메달을 얻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전국경기대회도 마찬가지죠. 그 극소수의 학생들은 또 고배를 마시고 기능올림픽 출전권을 받는 학생 수는 그야말로 ‘로또’에 가깝습니다. 에너지고 기능반 학생들도 열중했지만 입상성과는 없었습니다. 기능반을 운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죠.”

 

고광욱 교장은 1등만을 기억하는 대회를 위해 많은 학생들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2017년 전국기능대회 냉동기술 분야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박 군을 제외하고 기능반 폐지에 동의한 모든 학생들은 전공과로 복귀하게 된다. 기능반 학생들만이 사용하던 장소는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당구장, 바리스타실, 체력단련실로 탈바꿈하게 된다.

 

기능반은 폐지했지만 박○○는 냉동기술 분야 전국대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경험도 있고 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도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청주에 있는 특성화 공고로 전학을 간다는 거예요. 당시 기능반을 담당했던 교사가 그 학교로 전근을 가는 시점이었거든요. 그래서 고가의 냉동기술 장비를 모두 관리이전시키고 ○○가 대회에서 수상할 수 있도록 격려해줬습니다. 물론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있었죠.”

 

그렇게 박 군은 2018년 △△공고로 전학을 가게 됐고 모두 이쯤에서 박 군의 일은 잘 ‘마무리’된 줄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장비와 함께 △△공고로 옮겨간 박 군은 적응하지 못했고 지속적인 일탈행위를 했다. 밥 먹듯 결석을 했고 생활도 성실하지 못했다. 결국 2018년 자퇴를 했으며 이듬해 다시 △△공고에 복학신청을 했지만 복학심사전형위원회에서 받아주지 않아 졸업도 못할 처지에 놓였다.

표현은 안했지만 박 군도 24시간 내내 메달에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기능반 생활이 더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가출과 결석 등 일탈은 이어졌고 더 이상의 학교생활은 불가능해졌다.

고광욱 교장은 이 모든 사실을 △△공고 복학 불허 ‘판정’을 받은 2019년 1월, 박 군의 할머니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고 알게 된다.

 

제가 양육하면서 제 때에 훈육을 못하여, 아이의 일생에 커다란 흠집이 생겼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발생한 공황장애로 인해 신경정신과 치료 중인 제 자신이 믿기지 않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지혜가 부족하여 깊으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찍 사과드리지 못한 것과 저희들로 인해 에너지고와, 교장선생님의 격려와 배려에 누를 끼쳐드린 이 할머니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광욱 교장은 할머니의 손편지를 읽으며 손자를 잘 키우지 못했던 회한과 후회가 뒤섞여 할머니가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고 어떻게든 이 학생을 다시 보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광욱 교장은 곧바로 복학신청 불허를 냈던 △△공고에 부탁을 해서 간신히 복학허락을 받은 후 곧바로 다시 충북에너지고로 전학 오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교사들의 심한 반대와 걱정에 부딪히게 된다. 교사, 학생면담만 수차례 거쳤다.

 

“결과적으로 학교의 정책으로 희생당한 학생이 힘들어하는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얼마나 큰 자산인데 이 아이를 학교가 다시 받아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1년 넘게 학교를 쉬었던 박 군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에너지고로 돌아왔고 졸업 직전까지 1년여 동안 내·외부상담을 이어가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전기자격증도 취득하고 졸업식 다음날에는 진천 (주)에어택 입사에 성공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박 군도, 할머니도, 고광욱 교장도, 교사들도 모두 눈시울이 붉히게 된다.

 

여기까지가 박○○의 사연이다. 할머니도, 교사들도, 박 군의 지난 사연을 이야기하며 중간 중간 한숨을 쉬며 ‘정말 힘들었고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한 두 시간 만에 끝났지만 실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지치고 힘겨웠을까? 어림으로 짐작해본다.

학교에 갈 때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손자가 첫 출근을 위해 아침일찍 일어나 ‘이쁘게 씻고 집을 나섰다’며 미원면 할머니는 활짝 웃는다. 그리고 또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사연을 다 듣고 난 후 떠오른 것은 수많은 교육계 수장들과 교사들이 말하는 ‘한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쉽게 말하고, 또 쉽게 듣는 말이지만 정말 한 아이를 지키지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수많은 박○○들이 있다. 공부도 못하고, 거기다 진로도 제대로 찾지 못한 수많은 박○○들. 그래서 결국은 사회에서도 부적응자 또는 패배자로 내몰린 수많은 박○○들. 이들을 다잡아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교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2의, 제 3의 충북에너지고가 생기길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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