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이길 거부한다 ①] 노조 설립 이후 인정된 산재 5건, 근로감독관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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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 회사’라는 타이틀은 대단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됐다. 그러다 깨달았다. ‘우리는 부품으로 일하고 있었구나’. 2018년 12월 19일, 금속노조 산하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결성됐다. 부품이길 거부한 생산직 노동자 280명 중 250명이 노동조합 가입 신청서를 내밀었다. 결성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조는 해묵은 문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노사 갈등은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행동 방법인 파업에 이르렀다. 전면파업 200일을 맞은 지금, <충북인뉴스>는 이들의 투쟁기를 연재한다. - 편집자 주 

묵직한 폭발음이 공장을 뒤흔들었다. 노란 연기가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국소배기장치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연기를 붙잡을 수 없었다. 공장은 창틈 사이로 연기를 토해내기 바빴다. 

“불산이다! 불산!” 

연기 사이로 연구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학실험을 하다 누출사고가 벌어졌다. 1분 1초가 다급했다. 불산을 빨리 씻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길용호 씨(41)는 연구원들을 샤워실로 안내했다. 길 씨는 나중에서야 자신이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는 지정병원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의사는 불산가스가 피부에 접촉됐으면 연고 처방으로 끝나지만 이미 길 씨가 가스를 흡입한 상태라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원인이 됐던 불산. 불산 함유량은 50%였다.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사고 당시 원인이 됐던 불산. 불산 함유량은 50%였다.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병원비만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회사는 산재가 아닌 ‘공상 처리(사용자와 근로자 합의 하에 근로자가 산재법 보상 받지 않고, 사용자가 직접 근로자에게 보상해주는 것)를 하라’고 권유했다. 공상 처리는 노동자에게 불안을 안긴다. 추후 장해가 발생해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재요양은커녕 보상금 받기도 어렵다. 회사가 산재 처리를 꺼리는 이유는 산업재해율을 낮추기 위해서다. 산업재해율이 높을수록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뿐더러 작업환경개선 요구와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길 씨가 계속해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자 연구소 담당 팀장은 나무라기 시작했다. 

“왜 당신만 유난을 떨어? 건강검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작업장이 몸에 안 맞는 것 같으니 다른 부서로 옮겨야겠네.”

보험급여를 신청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돼있지만, 회사는 ‘부서 배치 전환’을 운운하며 길 씨를 압박했다.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행동이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병원 가는 일도 눈치가 보였다. 길 씨는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마음 졸이며 그 시간을 견뎠다. 

119에 신고하면 인사고과 0점 처리 

“우리 회사에서 허가받지 않고 불산을 썼어요. 워낙 소량이고, 연구소에서만 쓰던 거라…. 이게 알려지면 문제가 돼요. 의사한테 정황 그대로 얘기하지 말고, 실험하다가 (불산가스를) 조금 들이 마셨다고 해요.”

안전관리담당자는 길 씨의 건강보다 불산 누출을 덮는 일이 먼저였다. 화학물질이 누출되면 즉시 △지방자치단체 △지방환경관서 △국가경찰관서 △소방관서에 신고해야 한다. 누출 사고는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대형 재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안산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공장 내 집기가 찌그러지거나 부서졌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안산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공장 내 집기가 찌그러지거나 부서졌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회사 측의 화학물질 사고 은폐·축소 의혹은 이 건만이 아니다. 정민엽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은 “2~3년 전 안산에 있는 일진다이아몬드 공장에서 몇 달 간격으로 두 번의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터졌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내부 일을 외부에 알리는 걸 극도로 꺼렸다”며 “119에 바로 신고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배준희(40) 씨는 동료가 다친 사실을 119에 신고했다가 낭패를 봤다. 신음소리가 들려 뛰어갔더니 동료가 쓰러져 있었다. 100kg 중량물을 옮기다 허리를 삔 것이다. 급한 대로 배 씨는 119에 신고했다. 10분 만에 앰뷸런스가 현장에 도착했다. 구급요원들이 들어와 동료를 옮기려 했지만 직장(생산현장에서 노동자를 지휘·감독하는 직책)이 막아섰다. 

“우리 회사 보고 체계도 있으니 그냥 돌아가세요. 지정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됩니다.”

동료는 고통을 못 이겨 배 씨의 손을 꼭 붙잡고 떨었다. 배 씨는 아픈 동료를 30분 동안 지켜만 봐야 했다. 그때 일은 다음 해 인사고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인사고과 결과는 0점이었다.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줬을 때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외부에 먼저 신고했다는 게 이유였다. 

핵산이 유해화학물질인 줄 몰랐다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에서만 쓰이는 유해화학물질은 18종. 전체 공정(51개) 중 45곳에서 유해화학물질을 다룬다. 유해화학물질 취급 공정에서 일하는 사람은 16시간의 특별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교육 대상 117명 중 17명만이 특별안전교육을 받았다. 안산공장은 단 한 명도 유해화학물질 관련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 태반이다. 회사는 기계를 돌려야 하니 교육 시간마저 아깝다. 교육받았다는 사인만 하라고 한 뒤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허다했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음성공장 7구역 노동자들은 한 번도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저희가 신규 노조다 보니 잘 몰랐었어요. 다른 회사 노동안전부장님들한테 우리 회사 이야기를 하면 다들 놀랄 정도죠. 다른 곳은 (유해화학물질을) 기껏해야 3~4개 쓰는데, 우리는 18개나 쓰니까. 근데 교육도 안 받았으니 무슨 화학물질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했죠.” - 정민엽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 

지금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음성공장 복지관에 차려져있다. 노동자들은 이곳을 점거하고, 공장 안에서 벌어졌던 문제점들을 하나씩 되짚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지금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음성공장 복지관에 차려져있다. 노동자들은 이곳을 점거하고, 공장 안에서 벌어졌던 문제점들을 하나씩 되짚고 있다. ⓒ 김다솜 기자

 

일하다 핵산이 얼굴에 튀어도 휴지로 닦아내며 일했다. 핵산은 중추 신경 계통을 억제하는 위험 물질이다. 단기간 노출됐을 시 피부에 자극이 가고, 신경 이상이 생길 수 있다. 흡입하게 된다면 신체 마비나 혼수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라는 점을 이용해 청소까지 했을 정도로 공장 안에서는 무심결에 사용하던 물질이었다. 현장 노동자들이 건강검진 소변검사를 받을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핵산이기도 했다. 공장 안에 상시 배치해야 하는 물질안전보건자료도 없었으니 핵산이 얼마나 몸에 해로운 지 알 길이 없었다. 

음성공장 노동자들은 유해화학물질 속에 뒤섞여 살았다. 이헌호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폐렴에 걸리기도 했다. 그는 연삭기나 드릴링 머신으로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깎고, 성능이 잘 나오는지 평가했다. 회전하는 공작물 사이로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깎여 나갔다. 이 과정에서 유해 물질로 분류되는 철가루, 알루미늄 가루, 티타늄 가루가 발생했다. 작업장 한편에는 이 가루들이 수북이 쌓였다. 

정범영(38) 씨는 HM원료실·성형실에서 약 10년 동안 근무했다. 입고되는 원료들을 배합하거나 성형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여러 화학물질이 혼합된 원료를 만지는 일이지만 얇은 마스크와 방진복이 전부였다. 2시간만 일해도 온몸이 새카맣게 변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 까만 물이 뚝뚝 떨어졌다. 코를 풀거나 침을 뱉은 뒤에 휴지를 봐도 까만 물이 나왔다. 분진이 많은 작업장에서 일하다 보니 겪는 일이었다. 정 씨가 근무 중에 착용했던 마스크는 아주 얇았다. 그것도 매일 수량이 부족해 길게는 3일 넘게 일회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했다. 

허리가 끊어졌다 

일진다이아몬드는 공업용 다이아몬드 가공 과정에서 기계보다 사람의 손이 더 필요하다. 유해화학물질을 사람이 직접 만지고, 다루기에 장기적으로 질병성 산업재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무거운 원료를 다루다 다치는 근골격계 질환이 자주 생긴다. 

원료 분말 가루를 담은 깡통의 무게는 50kg. 정 씨는 이걸 일일이 날랐다. 하루 평균 18번 옮겼다.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면 하루가 다 갔다. 13년 동안 정 씨의 허리는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아래는 정 씨의 건강보험요양급여내역이다. 

2010년 4월 7일 △△한의원 : 아래허리통증-허리 부위 2회 진료 
2012년 5월 23일 ■■■한의원 : 요추의 염좌 및 긴장 2회 진료 
2014년 11월 1일 ■■■한의원 : 요추의 염좌 및 긴장 8회 진료 
2014년 11월 26일 ○○○○한의원 : 요통, 요천부 2회 진료 
2019년 6월 3일 ○○○○한의원 : 요통, 요천부 13회 진료 
2019년 6월 11일 ●●●●정형외과의원 : 요추의 염좌 및 긴장 8회 진료 
2019년 6월 24일 △△△△병원 : 신경뿌리병증을 동반한 요충 및 기타 추간판장애 입원 및 진료 
-정범영 씨 건강보험요양급여내역 .
혼자서 50kg 중량물을 하루 평균 18번 옮긴다. 원료통을 들어 옮기려면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허리를 움직여야 한다.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혼자서 50kg 중량물을 하루 평균 18번 옮긴다. 원료통을 들어 옮기려면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허리를 움직여야 한다.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제공

송혁진 씨(34)도 허리가 망가졌다. 송 씨는 25kg 박스를 20~30번씩 들어 올리고, 내렸다. 바쁠 때는 수백 번씩 그 행동을 반복해야 했다. 위로 쌓는 동작이 많다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잦았다. 요추간판 외상성 파열을 진단받았다. 손가락이 잘릴 뻔한 일도 있었다. 생산팀 노동자들은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됐다. 

“손가락이 기계 사이에 끼여서 몇 주 동안 감각이 안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공상 처리도 못 받았어요. 나는 아픈데 회사에서는 무재해 며칠이라면서 그러니까 다친 사람 입장에선 속상했죠. 내가 부품인 것처럼 느껴지고….” 

일하다 아프게 됐는데 왜 산업재해가 아닌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플 때마다 제일 보기 싫었던 건 무재해 일수가 쓰인 입간판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송 씨는 입간판을 외면하며 걸었다.

아직도 일하는 사람이 있다 

2018년 12월 19일,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와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고발장을 접수했다.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했다는 내용이었다. 피고발인은 변정출 일진다이아몬드 대표이사와 회사 관리자급이다. 위험한 작업 환경 문제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도 인정했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사측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 김다솜 기자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사측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 김다솜 기자

 

‘관리대상 유해물질 취급 장소에 국소배기장치 설치 등 설비 미흡과 배치 전 건강검진 및 취급물질에 대한 위험성 교육 실시 없이 근로자가 작업을 진행하여 근로자의 건강상 장해가 일어날 우려가 높음.’

- 부분작업중지명령서 (2019년 7월 24일) 

“여기서 중대재해가 안 생긴 게 신기하네요.”

현장을 찾은 근로감독관조차 놀라워 했다. 지난해 7월부터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에서 ‘부분작업중지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7차에 걸쳐 전체 공정(51개) 중 45개가 지적받았다. 6개월 사이 회사는 35억 원을 들여 작업환경개선에 나섰다. 현재는 △HM원료실 △HM항온항습실 △HM개발실 △K동까지 4개 공정만 작업을 중지했다.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부장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개최되지 않고 있어 작업 환경이나 방식을 제대로 심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노사 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운영해야 하지만 노사 갈등으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 사항을 위반해도 사업주는 고작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할 뿐이다. 

특별안전교육 실시 여부도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회사 측은 근로감독관이 현장조사를 한 뒤 유해화학물질에 관한 특별안전교육을 실시했다고 알렸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전에 회사는 가짜 사인을 받아 가며 정기안전교육을 실시했다고 거짓말했다. 이헌호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작업환경이 개선되면서 집진기나 국소배기장치가 많이 들어온 덕분에 유해물질에서는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업무 상황이나 교육 수료 여부가 불확실한 건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사람들이 일을 못하고 있다. 노조가 전면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대화를 끈을 놓아버렸다. 노동자들은 작업 현장이 아닌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장에는 그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부품’으로 투입됐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그곳에, 아직도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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