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교육 위한 위탁교육기관 필요성 대두
H-2 비자로 한국에 제대로 정착하기 어려워

<고려인 아이들 보고서 2>

“1937년도 9월초 화장실도 없는 짐 싣는 기차에 다 실어서 짐승들처럼 그렇게 실려 갔어. 그거, 내 지금도 생각해 보면 야… 가뜩이나 아이들은 얼마나 죽었겠소.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벌판에다가 던져놓고 너 살겠으면 살고 죽으면 죽고 알아서 하라고 했어. 어쨌든지 아이들이 2살까지는 다 죽었소. 아침에 일어나면 저 집에서 울음소리 나고, 이 집에서 울음소리 나고, 먹을 물 없고 해서 손도 씻고 빨래도 하고, 그런 물마시고 애들이 죽고.”<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웹진 6월호, 최진석 저>

서울대학교 최진석 교수는 지난 6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웹진에 “1937년, 애도 받지 못한 비극-고려인 강제이주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최 교수는 강제이주 당시 기차에서 벌어졌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 터전을 잡고 있던 고려인들이 1937년 강제이주 정책으로 기차 화물칸이나 가축용 운송 칸에 몇 달씩 실려 척박한 땅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지로 내몰린 사건을 조명한 것이다.

인권말살 그 자체였던 1937년 강제이주정책, 그리고 80여년.

그토록 고난의 시간을 견뎠음에도 고려인들의 삶은 현재까지도 순탄치 못하다. 최진석 교수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경제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경제상황을 단순비교 하자면 한국의 5분의 1 수준도 못 미친다는 것. 특히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소련해체 이후 민족주의가 우세, 고려인들은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또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고려인들의 후예들이 경기도 안산, 광주 고려인마을에 이어 청주로 오고 있다.

그렇다면 엄마 아빠를 따라 청주로 온 고려인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성장하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청주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성인은 물론 아이들도 대한민국, 청주에 정착하기를 희망하지만 일단 ‘언어장벽’에 부딪쳐 어려움을 호소하고, 초등·중학교 이후 진로·진학에 있어서는 사실상 대안이 없다.

특히 출입국 관리법 상 고려인 아이들은 한국에 정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고려인들은 대학졸업 등 일정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방문취업(H-2) 비자만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는 3년에 한 번씩 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반복해야 한다. 결국 정규직 취업이 어렵다는 얘기다.

 

"인문계고, 특성화고라는 말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고려인 아이들은 청주로 오고 있다.

충북국제교육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충북도내에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학생은 300여명이고 특히 봉명초, 한벌초, 서경중, 경덕중, 남당초에 다니고 있는 고려인 아이들은 250여명에 달한다. 올 연말 봉명초에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대기자만도 10명이 넘는다.

봉명초등학교 전경
봉명초등학교 전경

현재 고려인 아이들을 위한 지원책은 충북도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충북국제교육원 및 다문화교육 정책학교의 한국어교육을 들 수 있다.

충북국제교육원 다문화교육지원센터(청주권)에서는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초등학생 25명이 매일 2시간 30분 씩 방과 후에 한국어 수업을 받는다. 또 중학생 나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은 청소년 13명에게도 한국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2018년 4월 1일 기준 청주권에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학생이 223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많지 않은 숫자다. 이와 관련 국제교육원 관계자는 "223명이 모두 고려인 후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제교육원에서는 한국어 교육 이외에도 △초·중등 글로벌 인재 다문화교육과정 △다문화교육 전시체험관 △다문화학생 글로컬 브릿지 사업 △초·중등 디딤돌 과정 △찾아가는 예비학교 △방과후·방학중 다국어 과정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제교육원 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 따르면 올 1월부터 현재까지 '찾아가는 예비학교' 사업에 참여한 러시아계 학생은 19명, '초·중등 디딤돌 과정'에는 66명, 러시아어를 배우는 다국어과정에 참여한 학생은 26명, 다문화학생 기초기본학습 멘토링에 참여한 학생은 27명이다.

한 명의 학생이 중복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학생들의 참여율은 저조한 실정이다. 국제교육원 한 관계자는 “내년에는 사업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충북의 다문화교육정책학교는 초중등 28개교이고 유치원은 6개원이다. 이중 청주의 다문화교육정책학교는 10개교, 유치원은 2개원이다. 지난 3월 다문화교육 진흥조례를 일부 개정, 도교육청에서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봉명초 등 다문화교육정책학교에서는 이주 첫 6개월 동안 오전시간을 할애해 한국어교육을 받을 수 있다.

110여명의 외국인 및 다문화 아이들이 재학하고 있는 봉명초의 경우에는 한국인 강사 3명, 이중 언어강사 2명이 무학년제로 별도의 반을 구성했다. 이곳에서는 30여명의 (고려인) 아이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고려인 아이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한국어교육을 받고 있다”며 “한국 아이들과 함께하는 반에서는 체험학습이나 예체능 중심 교과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교육원의 프로그램이 있지만 한국어교육 이외에 중·고등학생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진로, 진학 관련 프로그램은 열악한 상황이다. 취재결과 러시아에서 청주에 온지 2년가량 된 중학교 2학년 학생은 인문계고, 특성화고라는 말조차 모르고 있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초등학교 이후 외국인 아이들의 학업은 사실상 한국아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청주시 산하의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건강가정센터)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결혼이주 여성의 자녀들을 위한 사업에 집중, 사실상 외국인(고려인) 아이들까지 돌볼 여력은 없는 상황이다.

건강가정센터 한 관계자는 “봉명초등학교를 방문해 4~6학년 학생 16명을 대상으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며 “건강가정센터의 사업대상은 다문화나 외국인 아이들뿐 아니라 일반 가정의 아이들까지 다 포함된다. 특히 도교육청과 중복되는 사업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청주시에는 아동복지과가 있지만 외국인 아이들의 현황파악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는 하는데 충북은 못하는 것

도교육청으로부터 인가는 받지 못했지만 고려인 아이들 사이에서 ‘또 다른 학교’로 인식되는 ‘청주새날학교’에서는 현재 고려인 아이들 40여명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청주새날학교 곽만근 교장
청주새날학교 곽만근 교장

설립된 지 올해로 13년째를 맞는 이곳에서는 검정고시를 대비한 수업과 인문학 및 사회통합 프로그램, 체험중심 수업을 진행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8명의 교사 및 봉사자가 운영한다. 학생들로부터는 1인당 월 10만원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어린이집 운영도 시작했다.

청주새날학교 곽만근 교장은 “공교육에서 다 소화하지 못하는 외국인 아이들은 아직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마음에 상처도 있다. 새날학교에 오겠다고 한 학생이 6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교사인건비, 학교 운영비가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광주새날학교처럼 도교육청 위탁교육기관으로 선정되길 바라고 여러 차례 건의도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들이나 지자체장들은 우리와 한민족이었던 고려인을 위한 지원을 약속은 하지만 실제 이행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광주교육청으로부터 매년 8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위탁교육기관, ‘광주새날학교’는 눈길을 끈다.

광주새날학교에는 현재 75명의 다문화 및 외국인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짧게는 6개월에서 3년까지 교육받을 수 있고 한국어 교육을 주로 하고 있다. 광주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한국에 오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결손을 보완해주고 있다”며 “초·중·고 통합 위탁교육기관이지만 초등학생은 가능한 한 일반학교에서 한국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권하고 중고등 학생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교육기회 필요…"교육기회 균등해야"

고려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 수요가 많다 보니 청주시 사창동에는 ‘러시아학교’도 최근 문을 열었다.

여 알카디 씨
여 알카디 씨

일명 루스키돔으로 불리는 이 학교에는 주로 고려인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루스키돔에 자녀를 보내고 있다는 여 알카디 씨는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 못하게 되고 결국 대학도 잘 못 가게 된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긴 하지만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아이들과도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 알카디 씨는 “고려인들은 고향에서도 한국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최진석 교수는 "고려인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는 하나 분리된지 10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다. 같은 핏줄이라는 개념으로 더이상 묶을 수는 없다"며 "고려인 아이들 또한 무조건 측은한 시선으로 볼 필요도, 또 무조건 포용할 필요도 없어보인다. 다만 추가적인 교육의 기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곧 사회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기회의 균등 속에서 그들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한국을 위해서,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야할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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