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미술과실에 모인 '우주개구리' 멤버들. 왼쪽부터 충북대학교 전자공학부 김선영(28), 조형예술과 이정아(25)와 이다현(24), 청주대학교 경영학과 황진웅(26) 씨.

"우린 사회가 원하는 대로 스펙을 쌓고 누군가에게 선택되길 기다려요. 나이는 먹었는데 학창시절과 다를 바 없는 시스템 속에 사는 거예요. 얼마 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깝고 비참했어요. 정해진 레일을 달려 힘들게 취업한 청년이 몇 만원도 안 되는 헬멧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가 마치 우리 청년 전체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팠어요. 자기 권리도 요구 못하는 사회초년생과 이런 구조를 만든 기성세대, 둘의 상하관계를 깨고 싶어요. 정해진 틀대로 순응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고 싶은 거예요."

[충북인뉴스 계희수 기자] 청년이 패기와 낭만의 상징이던 때가 있었다. 몇 번의 경제위기를 거치는 동안 청년은 우리 사회 최약체 집단 중 하나가 됐다. 번듯한 내 집과 정규직은 운 좋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사치일 뿐. 사회는 창의적 인재가 되라고 요구하지만, 대기업 광고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현실은 토익점수·학벌·자격증·해외연수 같은 스펙을 한껏 꾸민 채, 보다 안정적인 직장의 문턱에서 'Pick Me'를 외치는 게 최선이다.

이 엄동설한에 청년 미술작가 이다현(24)·이정아(25) 씨는 청주에서 미술 전시를 기획했다. 졸업전시도 아니요, 누구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주축이 돼 9인의 청년 예술가들이 뭉쳐 ‘우주개구리’라는 예술가 팀도 꾸려졌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무려 우주를 탐험하는 개구리가 되겠다는 의미다. 개구리들이 무사히 겨울을 지나 우주를 향해 힘껏 점프할 수 있을까. 쌀쌀한 바람이 불던 1월 마지막 주, 충북대학교 미술과에서 충북대 조형예술과 이다현(24)·이정아(25) 씨를 만났다. 전자공학부 김선영(28), 청주대 경영학과 황진웅(26)씨는 기록용 인터뷰 장면을 촬영했다.

사라지는 설 자리…청년이 직접 마련

"특히 청주에는 청년작가들 입지가 많이 좁아요. 대학마다 순수 미술이 사라지고 예체능 계열이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이죠. 전시를 할 기회도 없어요. 청년 작가인 우리는 분명 존재하지만 사회와 환경이 우리의 자리를 자꾸만 지워버려요. 이 와중에 청주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왔어요. 가봤는데 되게 크고 멋있더라고요. '문화인의 도시'를 표방하는 청주시가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의미인 거죠. 하지만 주체가 되고 성장해야 할 우리들의 존재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엔 관심이 없어요. 모순적인 거죠. 이런 모순적 구조를 타파하고 싶어서 저희가 뭉치게 됐어요."

'먹고사니즘'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다 못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대학은 산업이 원하는 실용 학문을 중심으로 학과를 빠르게 재편했다. 그 사이 순수학문과 예술 분야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도내 대학에서 순수미술은 국립대인 충북대학교가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청주대·서원대 등에도 미술계열 학과가 있긴 하지만, 전부 융합디자인 같은 응용학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

 

지난 2014년 서원대학교가 미술학과 폐과결정을 내린 뒤, 총장실에 붙은 현수막. 당시 서원대 미술학과 학생들은 총장실을 점거하고 뷰티학과와의 통폐합을 반대했다. 현재는 BIT융합대학에 미술학과와 뷰티학과 등이 함께 속해 있다. ⓒ육성준

다현 씨는 다른 학교 순수 미술학과들이 없어지거나 변형되는 걸 목격하면서 늘 불안했다. 취업과 상관없는 예술을 천대하는 것이 분명 틀린 생각이라는 의견을 힘주어 말했다. 그는 "모든 시각적인 작업들의 기초가 되는 건 순수 미술이에요. 디자인을 하더라도 미술을 한 것과 차이가 있죠. 사람들의 예술적 사상과 감각을 틔워줄 수 있는 것이 미술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정아 씨도 의견을 보탰다. 그는 "모든 분야가 본질을 모르고선 응용을 할 수 없죠.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자꾸 비주얼아트, 산업디자인 같은 응용학과만 남기고 순수미술은 없애거나 정원을 줄여 가고 있어요. 우린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인데,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아 씨는 "대학들이 수박 겉만 핥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기본을 다 없애고 응용부터 시작하라고? 학과를 정리하려 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걸까? 이렇게 어린 우리들도 아는 진리인데… 예술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 같아요."라고 현 세태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의구심이 '우주개구리'라는 팀을 만들고, 전시 기획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이미 미술학도들의 과제인 졸업전시를 마치고, 학교와의 이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취업진로가 정해지지 않은 여타 대학생들이라면 '취준'에 올인해도 모자랄 터.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둘은 "졸업 전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했다. 다현 씨는 "졸업전시는 숙제처럼 하는 거죠. 무조건 해내야 하는 하나의 행사인 거예요. 자율성이 없다보니 재미가 없죠. 이번엔 우리가 정말 하고 싶어서 기획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만의 전시예요."라고 말했다.

 

청년 미술가 이다현(24)·이정아(25) 씨가 사라지는 청년예술인들의 입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곧이어 '우주개구리' 팀이 결성됐다. 순수미술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디자인, 경영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분야 전공자들이 모였다. 전시 구성을 다채롭게 하는데 이점이 됐다. 다현 씨는 "최신 전시는 AR이나 영상, 조형물 구분 없이 예술작품들이 자유롭게 구성되고 있어요. 서울에선 흔한 전시지만 청주에선 드물어요. 그래서 졸업 전에 '고향은 각기 다르지만 몇 년을 청주에서 공부했으니 여기서 펼쳐보자' 한 거죠. 여러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소재가 다양해진 거예요. 이젠 기술도 예술이니까요."라고 말했다.

바보 아니면 못하는 미술

'우주개구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곳은 청주시 홈페이지 '시장과의 대화' 코너였다. 이들은 '젊은 작가들의 입지가 사라지고 있다. 구조해 달라!'는 제목이 달린 전시 기획안을 첨부하며 시에 보조를 요청하는 글을 썼다. 그 당당함에는 패기를 넘어 어떤 결연함까지 엿보였다. 하지만 청주시는 전년도에 관련 예산 편성이 끝났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했다. 원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예고 없이 팝콘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의 창의성을 담기엔 청주시의 그릇이 너무 작았던 걸까요?"라고 묻자 다현·정아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움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지원 사업 공모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탈락이었다. 다행히 스승인 라폼므현대미술관 관장이 대관을 무상으로 해주기로 했다.

그나마 지금은 전시가 많지 않은 '비시즌'이라 운 좋게 대관이 가능했다. 젊은 작가들이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건 기회나 비용적 측면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서울은 갤러리에서 소규모 전시가 활발히 진행되지만 청주에는 그마저도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청년 작가들은 관람객 없는 한 여름, 한 겨울에 입지가 좋지 않은 곳의 갤러리를 싸게 대여해야 한다. 다현씨는 "지난해 여름에 서울의 달동네 갤러리에서 영상 전시를 했어요. 그러다보니 준비하는 데도 더위 때문에 너무 힘들었죠. 차도 없어서 낑낑대고. 게다가 전시장에 곱등이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엄청 큰 곱등이랑 눈 마주치고 그랬었어요."라고 지난 날을 회상했다. 옆에서 곱등이와의 추억을 떠올린 정아 씨가 진저리를 치며 웃었다. 청주 시내 곳곳에 방치된 수많은 유휴공간들이 떠올랐다.

 

'문 인 우주개구리(MOON IN SPACE FROG)' 전시작 일부. 왼쪽 정수민 작가의 <귀찮은 금붕어>, 오른쪽 우준원 작가의 <불완전한 청춘>. 전시는 2월 16일부터 24일까지, 청주시 용정동 '라폼므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 우주개구리 제공.

'알바' 뛰어 전시비 충당…"괜찮아요, 행복하니까요!"

"전시비용 마련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책임지는 게 너무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어요. 학교에선 알려주지 않는 걸 전시를 통해 배우거든요. 같이 기획하면서 언성 높이고 싸우면서 섞여나가는 과정들도 재밌고요. 내놓은 작품들에서 내 성장 속도와 변화가 보이는 것도 재밌어요. 작품에 투영된 내 자아가 변해가는 걸 보는 거죠. 돈 되는 일도 아니고, 실질적인 이득도 없는데 왜 저러나 싶겠지만, 순수하게 돈 안 되는 활동이라 더 기분 좋아요. 남들 보기엔 바보 같을 수 있겠지만요."

대관은 어찌어찌 해결했는데 다른 비용이 문제였다. 현재 ‘우주개구리’ 전시를 후원하면 이들의 마스코트가 그려진 엽서, 배지 등의 전시 기념 물품을 받을 수 있는 펀딩이 텀블벅(https://tumblbug.com/spacegaegul2019)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관람료를 받지 않을 예정이라 현재까지 모인 50만 원 남짓의 금액으로는 물품 제작비를 빼면 남는 게 없다. 그래서 전시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전시 비용을 벌고 있다.

정아 씨는 "우주개구리 모두 학생신분이라 모두들 아르바이트를 해서 전시비용을 대고 있는 상황이에요. 저는 아이스크림 가게, 블로그 홍보 재택근무, 미술관 도슨트로 일을 하고 다현이는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솔직히 가끔 정말 힘들 땐 엄마한테 10만원만 보태달라고 할 때도 있고요."라고 웃었다. 돈 안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돈을 열심히 벌고 있는 중이다.
 

'문 인 우주개구리(MOON IN SPACE FROG)' 전시의 후원이 진행 중인 텀블벅 페이지. 후원을 하면 덤으로 '우주개구리' 마스코트가 그려진 귀여운 제품들을 받을 수 있다. 텀블벅 페이지 갈무리.

 
이렇게 고생할 걸 알면서 왜 또 전시를 기획한 걸까. 다현 씨는 "원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잖아요? 힘들었던 기억은 다 잊고 좋은 기억만 남은 거 같아요. 전시 기획하고 작품 만들고 하는 게 너무 힘든 과정이지만 단 몇 명이라도 작품을 봐줄 때의 그 기분은… 좋다? 어떻게 말로 표현이 안 돼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원래 바보 아니면 미술 못해요!" 다현 씨 대답이 끝나자마자 정아 씨가 크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들의 목표는 무사히 전시를 마치고, 졸업 후에도 '우주개구리'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각자 생업을 찾아 나서겠지만, 사회가 깔아놓은 레일을 벗어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말자는 뜻에서다. 인터뷰 말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냥 누군가 우리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 기쁘다"라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이 사회는 청년에게 창의성과 모험심을 요구할 자격이 있을까.

'문 인 우주개구리(MOON IN SPACE FROG)' 전시는 오는 2월 16일부터 24일까지, 청주시 용정동 '라폼므현대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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