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아키히토 출생하자 친일 권종원 군수, 일장기 연못 만들어‘황태자전하 탄신기념비’와 정자 건립…정자는 향토문화재로 보호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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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내에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 이 연못은 1934년 일본 아키히토 황태자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음성군수 권종원이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만들어진 당시 연못은 네모난 형태를 띠었고 그 안에 동그란 섬을 만들어 일장기연못으로도 불린다.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내에 위치한 음성군 향토문화제 9호 경호정. 경호정은 1934년 일본 아키히토 황태자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음성군수 권종원이 세운 뒤 인풍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후 해방이후 이름을 경호정으로 바꿨다.

“설성공원 안에 있는 정자로, 1934년에 군수 권종원(權鍾源)이 인풍정이라 하여 창건한 것을 그 뒤 군수 민찬식(閔燦植)이 경호정이라 개칭한 것이다. 주위의 버드나무 그늘과 연못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여유와 사색의 공간으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휴식처”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9호 경호정. 음성군 홈페이지에 실린 설명글이다.

여기에 덧붙여 “(경호정) 전면에는 음성읍 평곡리 평곡리 사지에서 옮겨다 세운 3층 석탑과 독립기념비를 배치해 놓았다”고 했다.

설성공원은 읍성읍 시내 중심부에 있는 공원이다. 음성군이 자랑하는 품마축제가 매년 5월이면 이곳에서 열린다. 축제 때면 설성공원 내 연못 안에 설치된 경호정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된다. 음성군은 이곳을 ‘힐링 명소’로 소개한다.

 

음성군 향토문화재의 충격적 진실 “아키히토 황태자전하 탄신 기념”

 

그렇다면 과연 경호정은 시민들의 ‘힐링 명소’로 적합할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간한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경호정은 1934년 일본 황태자 아키히토의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1933년 황태자가 없어 안절부절 못하던 일본 황실에서 황태자가 태어났는데, 당시 음성의 지역 경제를 쥐고 있던 일본인들이 군수였던 권종원(權鍾源)에게 황태자 탄생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하여 일본 황실에 충성심을 보이라는 권유를 했다.

이에 (당시 음성 군수 ) 권종원은 1934년에 음성읍 읍내리 817번지에 약 1500평 규모의 연못을 파고 그 안에 다시 약 200평 규모의 섬을 조성한 뒤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는 비석을 세운데 이어 정자 주변에 3,000여 평의 운동장을 조성했다. 당시 권종원은 정자에 인풍정(仁風亭)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위 사실에 대해 『경호정잡기(景湖亭雜記)』의 기록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2002년 당시 이기준 음성군 노인회장은 <음성신문>에 경호정과 관련된 장문의 글을 기고한다.

이 회장은 우선 “음성설성공원 경내에 경호정에 서 있는 독립기념비에 대하여 근일 보도를 통하여 여론이 일고 있기로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산증인으로서 한마디 증언하고저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경호정의 유래에 대하여 70년전(1934년 당시) 면장 이명로씨가 면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부역으로 호당 1주일씩 출역하여 기제 등짐으로 자갈을 파내 조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이명노 면장은 면민들에게 욕과 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넓은 네모진 못이 조성되고 그 안에 섬을 만들어 가섭산 소나무를 베어다 인풍정을 지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1934년 자신은 10살로 수봉학교 1학년으로 수업중에 경찰서에서 싸이렌 소리가 몇 번 울려 퍼졌다고 기억했다. 그 소리는 일본 아키히토 황태자가 탄생했는 전국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그해 인풍정에 아키히토 황태자 전하 탄신 기념비(明仁皇太子 殿下 誕辰 記念碑)가 세워졌다고 밝혔다.

 

1934년 음성군수 권종원이 일 황태자 아키히토의 출생을 축하하기 위해 세운 '황태자 전하 탄신 기념비'. 해방이후 비문을 지우고 새로 '독립기념비'라는 글자를 새겨넣었다. 박경일(사진 내 인물) 음성문화원 사무국장은 이 비를 쓰러뜨리고 그것을 기대으로 해 소녀상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 그리고 인풍정

 

“처음에는 연못을 네모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연못 안에 둥근 섬을 만들었지요. 한마디로 일장기에요. 그리고 둥근 섬 안에 ‘황태자전하 탄신 기념비’를 세우고 정자를 지은거에요.”

음성문화원 박경일 사무국장은 음성군 향토문화재 경호정은 한마디로 ‘일장기 연못’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옛 인풍정이 있는 연못은 원형이 일부 변경됐다. 처음 네모지게 만들었던 연못은 둥근 타원형이 되고 가운데 둥그런 섬은 오히려 각이 생겼다.

박경일 사무국장은 “매우 여러 번 중수 과정을 거쳤다. 특히 연못 안 물이 썩어 냄새가 심했다. 변형 고사를 하면서 일장기 모양의 원형을 없어진 상태다”고 설명했다.

 

지난 해 음성군 설성공원내에 설치된 소녀상 전경. 멀리 친일 흔적이 남겨져 있는 경호정(옛 인풍정)을 물끄러비 바라보고 있다.
음성군 설성공원내에 설치된 소녀상. 지역 시민단체는 친일흔적이 남아있는 경호정 자리에 '황태자전하탄신기념비'를 기단으로 삼아 그 위헤 설치하려 했지만 음성군의 반대로 이곳에 설치됐다.

 

 

인풍정이 경호정이 된 이유

 

이기준 전 노인회장은 인풍정이 경호정이 된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이 회장에 따르면 1945년 9월경으로 어른들 사이에서 일본 황태자 탄신기념비 처리문제를 놓고 양론이 대립됐다.

비석을 때려 부수자는 편과 복수차원에서 글자를 깍아내고 그 위에다 독립기념비를 만들자는 의견이 대립됐다. 일본의 아키히토를 깔아 뭉게고 우뚝 세우자는 문제에는 이론이 없었다.결론은 황태자 탄신기념비를 그대로 사용하여 독립기념비를 세우는 것으로 하여 그 자리에 건립한 것이 음력으로 8월 9일로 기억된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인풍정의 이름이 왜색의 냄새가 난다는 연유에서 경호정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이 전 회장은 “이때 (자신은) 23세에 청년으로 어른들 하시는 대로 구경만 했을 뿐이다. 이것이 일제의 잔재라기 보다는 두고 두고 일제를 조롱한다는 상징물로 전해 주는 것이 선인들의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복수심을 후세에 전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황태자 탄생기념비, 지금은 독립기념비 됐지만?

 

연못 안 경호정 앞에는 이기준 전 노인회장의 설명대로 ‘독립기념비’가 서있다. 바로 ‘황태자 전하 탄신기념비’다.

박경일 음성문화원 사무국장은 “예전 비에서 글이 새겨져 있던 앞 뒷면 모두 상당부분 깍고 그 위에 새로 글자를 새겼다”면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 햇빛이 투영될 때 잘 보면 옛 비문 흔적이 어슴푸레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떻게 황태자탄신기념비가 아직도 버젓이 서 있을 수 있나? 여전히 찝찝하다"고 했다. 박경일 사무국장은 ”지난 해 이 비석을 쓰러 트리고 이를 기단삼아 그 위에 소녀상을 세우려고 했다“며 ”하지만 음성군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신 설성공원내에 이곳 정자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소녀상을 세웠다. 하지만 이것 조차도 음성군이 동의하지 않아 무단으로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박 국장의 설명대로 경호정과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소녀상이 있었고 이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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