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어라. 그가 너에게 하루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때마다 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루가 17, 1-4)
절대적인 선善은 무엇인가? 혹은 절대적인 악惡은 무엇인가? 우리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진리라는 것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행복은 무엇이고, 불행은 무엇인가? 무엇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무엇이 그 기준에서 일탈逸脫된 불행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아름다움은 또 무엇인가? 어떤 형상을 지녀야 우리는 아름답다고 불러줄 수 있으며, 또 어떤 것을 추하다고 할수 있는가.
우리들 삶이란 것도 그렇다. 어떤 삶이 선한 삶이며, 어떤 삶의 행보가 진실된 삶이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며, 또 어떤 삶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향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은 온통 의문부호 투성이다.
세상과 사랑과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부호를 잔뜩 안겨준 그녀를 만나러 가평꽃동네 노체리안드리자애병원 병실을 찾아가던 날, 슬픔처럼 겨울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나직히 흘러나온 말.
‘아, 겨울이야!’
우리가 그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리 알아두어야만 할 것들이 있다. 우리를 옥죄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 그리고 제도화 되다시피하여 이제는 둔감해진 도덕불감증. 일련의 사회의 부정항의 모습, 그 구조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향기를 잃어갔고, 삶의 윤기를 잃어갔고, 눅눅하고 음습한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죽음과 대면하게 됐다.
변순덕 씨.
쉰줄을 넘어선 변씨 또한 그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사회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변씨 또한 자궁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제가 늘 엄마라고 불렀어요. 그분도 자궁암으로 퍽 고생하셨는데, 저보다도 더 중증이었죠. 저보다는 늦게 노체병원에 들어왔으니까 제가 고참인 셈이죠?”
변씨는 자궁암으로 늘 몸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자궁에서 흘러나오는 분비물은 그 악취가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변씨를 친어머니 모시듯 정성으로 돌봤다. 똥 오줌 치우고, 기저귀를 갈고, 얼굴을 닦고, 목욕을 시키고, 화장실 모시고 가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고, 식사 때면 늘 숟가락에 죽을 떠 넣어주곤 했었다. 처음엔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병세가 점차 악화돼 거동도 못하게 됐다. 그만큼 그녀의 일은 늘어났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주위사람들로부터 경원의 대상이었던 변씨도 그런 지극 정성인 그녀에게만은 늘 미안한 마음으로 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변씨의 병간호를 자신의 몫으로 여겼다. 어쩌면 그 일은 주님께서 주신 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마저 갖게 됐다.
“엄마, 내가 다 해줄테니까 편하게 생각해. 나 엄마 딸이잖아. 너무 미안해 하지 말고.”
시간이 흘러갔다. 흘러가는 시간의 깊이만큼 변씨의 병세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그리고 2000년 7월 14일, 변씨는 그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임종했다.
“제 옆에서 돌아가셨어요.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무언가 유언을 남기시려는 것 같았는데 입도 떼지 못하고 가셨지요. 눈도 못 감고 말이죠. 엄마의 딸이 있었나 봐요. 딸 사진을 손에 꼬옥 쥐어주고 눈을 쓸어내리니까 그제서야 눈을 감으시더군요.”
노체병원 복도에는 아직도 변씨와 그녀가 엄마와 딸처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진을 한번씩 어루만진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란다.
“덤덤하더군요. 이젠 눈물샘조차 말라서 나올 눈물도 없어요. 살아오면서 너무 많이 울어서, 울다 울다 너무 지쳐서, 너무도 힘든 투병생활로 울 힘도 없어서 울 수가 없어요.”
그녀도 처음 노체병원에 왔을 땐 대면하기 힘든 부류의 환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생활도 밑바닥이었고 죽을 병까지 걸려 눈에 보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간호사 언니들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욕도 해가면서 말이죠. 죽을 고통 때문에 그땐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 정도로 고통이 심했어요. 이제는 제 숙명이려니 하면서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답니다.”
그녀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그녀가 평택에 있을 때 ‘손님’으로 만난 남자였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녀에게 그가 전화를 했다.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다른 사람과 달리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말 한 마디 더 해주는 그가 믿음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깊어 갈수록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됐다. 그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열 여덟 꽃다운 나이에 처녀성處女性을 잃고 삶의 가장 음습한 하층부에서 살아온 자신을 돌이킬 때 그는 자신에게 너무도 과분한 사람이라는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그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했다.
“저도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때가 있지만,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죽기 전까지 할머니들을 보살피고 싶어요. 그러면서 편안하게 죽고 싶어요. 죄 많은 인생, 좋은 일도 조금 하다 가야 되지 않겠어요? 할머니들은 저보다 더 힘들잖아요. 나이도 드셨으니 외로움도 더 타시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마치고 싶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애절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과거, 자신의 삶을 잊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여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불행한 삶, 바람기 많았던 아버지,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의 죄업까지 용서하기로 했다.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를 탓해 무엇하겠느냐는 생각도 있지만, 이제 그녀 스스로도 아버지가 있는 그 쪽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용서를 빌고 싶은 이도 있다. 처음으로 정을 알게 해 주었던 포주 언니. 그 언니에게서 500만 원을 가져다 썼는데 그녀는 그 빚을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다. 저 쪽 세상에 가서라도 그녀는 언니에게 참 용서를 빌고 행복을 기원하고 싶다고 한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가족끼리 오순도순 행복한, 그저 남들 사는대로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다가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늙다가 평범하게 죽고 싶어요. 저에겐 그런 평범함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함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장기기증을 약속했다. 몸 아프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몸 가운데 효용이 닿는 것이 있다면 온 몸을 남에게 주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항문은 자꾸 졸아들고 있다. 때문에 배가 자꾸만 불러온다. 처음 보는 이는 그녀를 두고 혹 임산부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배변을 하면 항문과 질 두군데로 나온다. 그 때문에 너무 아프다. 전에 수술할 때 독한 약을 쓴 탓일 것이라고 그녀는 막연히 추측하고 있다.
그녀는 삶 자체가 지옥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저쪽 세상으로 가는 게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녀는 말한다. 삶 자체가 행복이라고. 죄만 짓고 산 인생, 지금 조금씩 조금씩 할머니들의 병수발을 들면서 봉사의 삶을 사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러니 그녀에게는 삶도 행복이요, 죽음도 행복이다. 남을 위해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듯 큰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인 줄 그녀는 알지 못했었노라 고백한다. 덧붙여 그녀는 말한다.
“이 세상에 저같은 여자들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약한 여자, 그 여자들의 행복을 무참하게 짓밟는 사회의 구조가 여자들을 먼저 생각해주는 그런 사회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거리의 여자들도 동물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당신들처럼 울음이 있고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고 고통이 있고 절망과 환희를 모두 느낄 줄 아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녀는 떠났다. 슬픔처럼 겨울비가 내리던 날 처음 만난 그녀는 그리 슬퍼보이지는 않았었다. 자신의 죽음을 이미 인정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 겨울비를 맞으며 한숨처럼 ‘아, 겨울이야!’ 나직히 되뇌었던 기억을 저편으로 이제는 묻어야 한다. 그녀는 이미 그때 항문암 말기였다. 그녀의 간호를 맡았던 수녀님이 말했었다.
“본인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또 그렇게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그녀가 떠난 것은 필자가 그녀를 알게 된 지 반 년 정도 지난 뒤였다. 죽음이 임박해 왔을때 그녀는 몹시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었다고 한다. 술도 자주 마셨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 몸 속까지 저며오는 육체적 고통 또한 컸었다고 한다. 온 몸으로 전이된 암세포와 싸우며, 고통스러워하고, 절망하고, 고뇌하다 그녀는 떠났다.
극적 종결이라면 그녀가 자신의 죽음에 끝까지 초연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서, 자신의 죽음에 끝까지 초연할수 있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어찌보면 그녀는 가장 인간답게 살았고 인간답게 저 편으로 갔다. 그 인간다움의 불완전성을 뒤로하고 우리는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