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만질수 있는 증거내라" VS "우리 존재가 괴롭힘 증거다"
기자회견 이후 달라지는 것 없어…가해자에게는 조롱거리 '전락'

충북도내에 첫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5일. 어둑어둑한 아침 7시부터 분주하게 피켓을 챙기는 사람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 정문에서 2시간이 넘도록 묵묵하게 피켓을 들고 서있던 이들을 만나봤다. 왜 이들은 거리에 나왔을까?

"달라지는 게 없었습니다. 우연히 회사 휴게실에서라도 가해자들을 만나면 우리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만 듣게 됩니다. 고통은 점점 커지고 달라지는 건 없어 거리로 나오게 됐습니다"

LG하우시스 옥산공장에서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피해를 호소했던 한원구씨. 지난 10월17일 한 씨를 비롯한 피해자 6명이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 앞에 드러내고 눈물을 쏟으며 '살려 달라' 외쳤던 그날. 그날 이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옥과도 같았던 부서에서 벗어났지만 그것뿐이었다. 가해자들은 이들을 보며 '배신자'라 칭했고 회사와 노동부는 가해자처벌과 문제해결이 아닌 '증거가 없다. 만질 수 있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가해자들은 조롱 섞인 비아냥만…"

한원구 씨는 "기자회견 이후 지금은 노동조합에서 대기발령 상태로 지내고 있다. 최초 사측은 인사팀 직원 2명과 함께 별도 사무실을 사용하라고 했고 우리는 감시 받는 느낌이 들어 이를 거절했다"며 "노동조합에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했고 오히려 기자회견 이후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피해자는 우리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회사 내 자체 감사팀이 현재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노동부도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들을 불러 우리와 대질조사까지 하고 있다"며 "당연히 그들은 가해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퇴사한 직원들까지 증언을 하며 힘을 보탰지만 '만질 수 있는 증거'를 요구하기만 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해당 팀장은 현재 직무정지 상태라 회사에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와 뜻을 함께하고 우리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이들은 아직 회사에 있다"며 "휴게실에서라도 마주치면 우리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두 번 세 번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0월17일 청주노동인권센터는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G하우시스 옥산공장 Q팀에서 발생한 ‘조직내 집단 따돌림 사례’를 공개했다.

"노동부가 철저하게 조사해야"

또 다른 피해자 강석우 씨도 "기자회견 이후 달라진 점이라면 부서를 나오게 됐고 치료도 제대로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끔찍한 괴롭힘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게 우리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유다"라며 집회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까지 피해자 6명은 조를 정해 2주 넘게 고용노동부 청주지청 앞에서 아침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강 씨는 "우리의 고통을 개인 간의 갈등으로만 치부하려는 회사와 고용노동부에게 그렇지 않다는 목소리를 분명하게 전하고 싶다"며 "어느 날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타지에 살고 있지만 '오빠를 위해 나도 피켓을 들겠다'며 애써 웃어 보이는 동생을 보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괜찮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피해자들은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피해자들과 손 맞잡은 시민들

매일 평일 아침,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는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한 씨는 "매일 아침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부터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타 회사 노조 선배들 시민단체 활동가, 일반 시민들 까지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힘이 난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기자회견 이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들은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피해 사실을 호소하며 자신들을 드러낸 만큼 불안감은 더욱 커졌고 고통도 사라지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두 달 전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LG하우시스 집단 괴롭힘' 사건. 우리 기억 속에 이들의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있지만 이처럼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충북인뉴스>는 아직 끝나지 않은 'LG하우시스 집단 괴롭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한 달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괴롭힘을 당했다는 '보여 지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가해자들에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건 살아있는 증거라며 자신의 맨 몸을 내놓는 것 뿐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행복했던 가정의 구성원이던 한 노동자는 가족을 등지고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일터 괴롭힘의 고통을 편지 한 통에 써내려갔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아직 피해자들은 제자리입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요. LG하우시스? 고용노동부? 누구 하나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한파에도 직접 거리에 나와 피켓을 든 이들. 소식을 듣고 삼삼오오 모여 손을 맞잡는 시민들도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탭니다.

'작은' 목소리지만 우리도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누군가는 이들의 외로운 투쟁을 기억해야하니까요. 이들이 따뜻한 포옹으로 몸을 녹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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