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아흐레 민박집」 전문

이슬 내린 뜰팡서
촉촉이 젖어서 자던 신발들이 좋다
모래와 발바닥과 강물이 간지럽다
숙취 하나 없다
아침부터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이 바람
바람의 살
그 살결의 허릿매가 저리게 좋다
돌아갈 곳을 가로막는
파꽃 같은 이 집 돌아온 따님이
들어가 나오지 못하는 부끄러운 부엌
그 앞을 종일 햇살로 어정대서 좋다
병 주둥이 붕붕 울리며 철겹게 논다
그렇게 노는 게 좋다 한다
안 떠나는 게 좋아서 아흐레 민박집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던
바람의 속살이 잠을 설쳐서
마냥 이 집이 마음에 좋다.

─ 박흥식 「아흐레 민박집」 전문(시집 『아흐레 민박집』에서)

그림=박경수

 

“여기 이 ‘돌아온 따님’은 이혼이다. 3개월 만에 홀연 돌아왔다. 얼마간의 조용한 슬픔의 연애기와 혼전에 입었던 물빛 원피스와 화장기 없는 얼굴이 다였다. 말수가 적은 어머니와 어린 날 죽은 부친, 한여름 민박을 치르는 강변의 허름한 이층집. 그 언덕을 조용히 내려서야 강물이 굽이돈다. 이 ‘돌아온 따님’에게 유원지의 입장료를 받는 남정네들과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동네 청년, 강변으로 놀러온 몇몇의 눈길이 잦다. 그때마다 나는 나 혼자만이 간직하겠다는 의미 있는 미소로 일관했다."

이 시집 말미에 적은 시인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사랑했던 여자가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내 사랑은 더욱 간절해지고 애틋한 것이 되었지요. 그녀의 속눈썹 그늘에 가린 수심이 한없이 깊어 보이고, 이슬 내린 뜰팡에 밤새 촉촉이 젖은 그녀의 신발이 선연하게 다가옵니다. 어떤것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고, 어떤 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숙명의 관계맺음 속에서 사랑은 발아되고 남모르게 어여쁜 꽃을 피웁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빛나는 옥돌 같은 사랑이고, 샘물처럼 천천히 차오르는 지순한 사랑이지요. 시인의 말은 계속됩니다.

“그 강변의 흰꽃을 가진 파릇한 찔레를 보듯 애틋한 연정의 마음으로 사람의 시를 보고 싶다. 어떤 밉고 못생기고 버림받은 마음이 찔레꽃 별것 아니라고 뜯어 흩뿌려주기도 할 것이다.”

니체가 묻지요. 그대는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아, 그래서 바로 이런 사랑을 했지요. 세상만사 다 잊고 한 보름 죽치고 누워 파꽃 같은 여자가 부끄러운 듯 차려내는 밥이나 축내며 마냥 머물고 싶은 ‘아흐레 민박집’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