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익 「귀농 일기 1」 전문

백화산 발치에
오두막집 한 채 지어
빛을 불러 모아 차일을 치고
바람을 불러 앉혀
막걸리를 마신다

동산 높 낮은 무덤들
여전히 양달쪽에서 지켜보시고
가시덤불 사이를 빠져나가며
잘 돌아왔다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이름 모를 새떼들이여

삼십 년간 찌들어 온
타향살이의 찌꺼기가
아직도 구석구석에 남아
나는 무엇으로
앞산의 조선 소나무가 되랴
바람 이는 삭정이에 흰 달이 되랴

─ 전태익 「귀농 일기 1」 전문(시집 『흔들리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에서)

그림=박경수

 

평생 다니던 직장을 마감하고, 말년에 농경사회로의 귀농을 선택하는 일엔 커다란 결심이 따릅니다. 문명과의 괴리로 인한 불편한 일상, 사회적 교류의 일탈에서 오는 관계의 상실감, 아직 덜 끝난 자식교육 등등. 그러나 간절히 꿈꾸어 온 바를 실천하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누리는 참된 생의 기쁨이지요.

우리가 멈칫거리고 주저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인생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과,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과, 지금 만나는 충만한 느낌만이 진정한 내 인생입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사라진 지 오래이며,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불확실한 세계일 따름이지요.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결심은 한낱 어제 있었던 오류의 잔상에 불과할 뿐이고요.

시인은 삼십 년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몸과 마음에 두루 이로운 고요와 평화를 구했습니다. 숲과 새들 사이에 오두막을 짓고, 빛과 바람을 불러함께 취합니다. 이 순간 시인은 귀농의 눈부심 속에서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웠던 과거의 헛된 명리를 벗어던지고 존재의 갱신을 이룩합니다. 돌연한가한 필부의 일상이 빛나기 시작하지요. 앞산 조선소나무의 깊고 서늘한 자태를 보며 용렬해지려는 마음을 다스리고, 바람 이는 삭정이에 흰 달을 보며 흠집 많은 생애의 괴로움을 씻어버립니다. 삿됨을 가라앉히고 마음에 본성으로의 평화와 안일을 구함으로써 청빈의 즐거움과 더불어 존귀한 생의 위안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요. 물욕과 안락을 포기한 곳에 더 큰 안락이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귀농’, 그 자발적 단순함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건강한 대지 위에 맑은 영혼을 지닌 새로운 생명으로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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