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인 「신기리 옛 산길에서」 전문

다닥다닥 붙은 지붕 위로
낮게 깔리는
옛날의 저문 햇살 속으로
옛날의 골목을 지나
옛날의 내가 간다.

황금빛 햇살, 햇살
지붕의 참새, 참새
굴뚝의 연기, 연기

그리움도 기다림도 모르던
옛날의 옛날
의심스럽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고
마냥 저물던 하루하루

조금씩 배어나는 슬픔과
조금씩 쓸쓸해지는 저녁을
그림자로 데리고

옛날의 노을 속으로
옛날의 내가 간다.

─ 신동인 「신기리 옛 산길에서」 전문(시집 『그곳으로 가는 길』에서)

그림=박경수

 

‘신기리 옛 산길’은 시인의 고향으로 가는 길인 듯싶은데요. 돌이켜보면 그래도 우리의 삶에 활력을 주고 윤기를 가져다주는 것은 ‘낮게 깔리는 저문 햇살, 지붕의 참새, 굴뚝의 연기’같이 작고 일상적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러나 촘촘하게 가슴속에 무늬로 남아 있어 가끔씩 그리워지는, 그런 낯익은 풍경이 아니던가요. 낯익은 것들은 편안하지요. 그리고 고요합니다.

장석주 시인은 ‘고요함은 존재의 균형과 평화를 암시하며, 손상 없는 삶의 상태로 우리를 이끈다’고 했지요. 이 시의 화자도, 아주 천천히 걸어서, 의심의 눈초리도 없고, 기다림으로 안타까이 속내를 태우지도 않는, 하루하루가 마냥 아무렇지도 않은, 견고한 평화의 시절, 마음의 근원적 고향, 그 ‘손상 없는 삶의 상태’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문명의 쾌속질주 속, 스마트 폰으로 대신하는 지식과 정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마천루의 성냥갑 같은 집에서 문명의 낯섦에 가위눌리는 현대인을 향해 결 고운 치유의 언어로 다정하게 속삭여주지요. 충만한 고요 속에 깃든 삶의 내밀한 진실을 찾아서 조금씩 배어나는 슬픔과 조금 쓸쓸한 저녁을 데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향하여 천천히 우리의 손을 꼭 잡고 옛날의 골목을 지나 저문 햇살 속, 그 순수의 시절, 무위의 시간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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