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 망초가 들녘에 만발한 가운데 갖가지 작물의 파종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달 5월은 가족간의 관계를 확인하고 고마움을 되새기게 한다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가족이란 우리의 삶에서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들, 웃어른 밑에서 자식을 위해 전적으로 희생해 이제는 초라한 노인이 돼버린 부모님들, 그리고 아이들의 인성과 삶의 태도를 바르게 이끌어주시는 선생님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여성들에겐 마치 명절처럼 ‘가정의 달’이 주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아마도 예의를 표현해야하는 방식이 상업광고문화와 결부되어 의무적 절차로 전락하다보니 빠듯한 가계사정으론 힘겨운 지출을 하는 달로 인식되기 때문이리라. 일년내내 가족 및 제반 사회적 관계에서 일차적인 봉사와 서비스를 담당해야 하는 주부들의 역할이 5월엔 더 한층 가중되는 느낌이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지혜로운 방식이 개발되고 가정의 중심인 여성의 존재에 대해서 가족들이 오히려 더 감사하는 달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5월 5일은 퍽 의미있게 보낸 것 같다. 시골에서 고추모와 깨를 심느라 분주하신 할머니옆에서 밭두덕을 세워 구멍을 파고 소줏병에 담긴 참깨를 구덩에 흘려 흙을 덮어주는 흥미로운 작업에 아이들을 동참시킨 일이 그것이다. 자연과 노동등 거창한 의미는 생략하더라도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 했다는데서 어린이날 행사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다가오는 스승의 날엔 선생님들께 정성어린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5월을 맞이해 또하나 진지해져야 할 태도는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개방적 관점이다. 국어사전에서는 가정 (家庭)을,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자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연중에 한부모, 재혼가족이나 무자녀, 비혼, 입양,공동체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비정상 가족으로 간주하는 통념이 있으며 게다가 이와같은 (정상)가족 해체를 방지하고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형태 고수를 위해선 끝까지 호주제가 필요하다고까지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 사회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98년 한 해동안 결혼한 쌍의 1/3이 이혼을 하고 있으며 전혀 새로운 가족형태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우리는 가족을 외형적 형태로서가 아니라 성원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로서의 소속감을 갖는 것으로 재개념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에 대한 폭력 폭언이 난무하거나, 가계의 혈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남아출산을 강요하거나, 혹은 사랑이란 명목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등은 오히려 더 이상 정상가족이라 불리워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호주제의 존재로 재혼여성의 자녀가 친부의 호적에 그대로 있어 새로운 가정에서 성이 달라 당하는 고통은 허울좋은 가족법이란 미명하에 우리 사회가 아동을 어떻게 학대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진정한 가족공동체를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한 것인가를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40대의 한 남성은, 자신의 삶에서 ‘가족’은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사회에서 남성 가장의 어깨에 짊어진 고된 책무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면서 그것이 얼마나 비장한가를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제 우리 여성들도 그 짐을 나누고자 한다. 독점된 책임과 권력이 분산될 때, 공동체 성원들의 주인의식은 한층 고취되리라. 한마디 더, 6살 딸에게 폭언을 쓰며 꾸짖는 엄마에게 ‘엄마가 자꾸 그러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했다는 옆집 아이의 우스개 항변이 버릇없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린 아이의 인격도 충분히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이 민주적인 가족 공동체의 질서라는 것임을 눈부신 5월에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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