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충북도교육감에 출마한 황신모-심의보 두 보수후보의 단일화가 일단 무산됐다. 굳이 ‘일단’이라고 사족을 단 것은 앞으로의 변수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현직인 김병우 교육감을 상대로 두 사람이 모두 출마하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필패구도다. 때가 되면 둘은 어차피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차기를 염두에 둔 이름알리기가 아니라면 질게 뻔한 출마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상호 불신때문에 이것 저것 안가리고 끝까지 오기로 나선다면야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한 요즘 시중의 최고 담론은 역시 특정 후보들의 단일화 여부다. 황신모 심의보 외에도 이시종 도지사에 맞서는 박경국과 신용한, 청주시장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얘기다.

세대교체를 추켜들고 도지사에 도전한 박경국 신용한 역시 서로 다른 야당 소속이지만 마지막까지 동시 출마로 3자대결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드루킹 댓글사건이나 김기식 사퇴처럼 앞으로도 집권여당의 악재가 더 불거진다 하더라도 박-신 두 후보가 손을 잡지 않는 한 이시종의 현직 프리미엄을 깨기란 현실적으로 기대난망이다. 둘의 고민은 점 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선거든 단일화는 대략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타협과 합의에 의한 한 쪽의 양보, 그리고 불리한 상황에서의 자발적 포기, 여기에다 경선이라는 절차적 룰에 따른 후보 사퇴 등이다. 이런 방식으로 큰 잡음없이 단일화를 이뤄낸다면 대개는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수반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소위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닌 이상 아름다운 단일화는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일화 자체가 다분히 정치공학적인데다 어차피 선거라는 건 승자독식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례를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양보와 포기에 의한 단일화는 공교롭게도 안철수가 가장 모범(?) 사례를 보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안철수-박원순 단일화와 2012년 18대 대선에서의 안철수-문재인 간 단일화가 그렇다. 오세훈의 무상급식 실패로 치러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당초엔 안철수 대세론이 지배했다.

안철수는 30%를 오르내리는 1위 지지도를 오랫동안 유지한 반면 어느날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며 덥수룩한 수염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불쑥 나타난 박원순은 고작 5% 내외의 한자리 지지도를 맴돌았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담판 끝에 출마를 접음으로써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설령 사퇴선언 이전에 이미 불출마를 결심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보다 더한 아름다운 단일화는 없다.

박근혜에 맞서 안철수와 문재인이 출사표를 던진 2012년 대선때는 초장부터 둘의 단일화 여부가 최대 관심사였다. 선거전 초기엔 서로 엇비슷한 지지도로 인해 상호판단이 불투명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권자의 안철수 식상함이 불거지면서 지지도마저 급락하자 그는 급거 사퇴하고 만다. 스스로의 포기였다.

2011년 후보를 양보한 안철수는 얼마전 서울시장에 재도전하면서 박원순에게 7년전의 빚을 갚을 것을 시사했지만 돌아온 답은 “뭔 소리여?”였다. 안철수가 여전히 정치를 ‘철수와 영희’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비아냥만 잔뜩 들었다.

단일화의 뒤끝이 안 좋은 것은 1996년 15대 대선에서의 김대중 김종필 DJP연합이나, 2002년 16대 대선의 노무현과 정몽준 관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종필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자기몸을 불살라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그가 양지를 누린 것도 잠시, 결국 토사구팽을 당한다. 정몽준은 여론조사까지 거쳐 노무현으로의 단일화에 승복하고도 선거 하루를 앞두고 전격 철회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그가 축구인임을 빗댄 ‘정치적 자살골의 원조’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가 뒤끝 작렬로 변질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타협과 협상이 정치의 최고 가치라고는 하지만 선거에서의 단일화는 후보직을 잃거나 내놓게 되는 당사자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안긴다.

설령 서로 조건까지 제시해가며 이를 상호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단일화를 꾀한다 해도 막상 결정되는 순간, 밀린 상대는 그 심리적 공황을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어차피 1등만 선택받는 승자독식 선거문화에선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부작용이 따르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판단해 당선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스스로 주제를 파악하고 깨끗하게 후보를 양보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조건이 따르면 JP의 판박이가 된다. 또 한가지는 룰에 따른 공정한 경선을 치러 다중의 의견으로 최종 후보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결과에 대한 군말없는 승복은 필수다. 안 그러면 정몽준의 자살골은 또 재연된다.

하지만 이 것들보다도 더 바람직한 방안은 기껏 아름다운 양보와 용퇴를 하고서도 미련을 못버리고 여기 저기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엔 또 이용만 당함으로써 본전도 뽑지 못하는 안철수의 전철을 피하는 것이다. 만약 안철수가 2011년 이후 박원순과 인간적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면 지금쯤 원순씨는 아마 심각하게 후보양보를 고민할 지도 모른다. 만약 안철수가 2012년 후보 사퇴이후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처음부터 본인만의 정치를 다시 만들어냈다면 아마 지금쯤 그는 서울시장이 아니라 차기 대권감으로도 굳건히 부상했을 것이다.

이러한 안철수가 이번 서울시장출마에선 ‘안 철수한다!’고 외치고 있다. 앞으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미일텐데 두고 볼 일이다. 후보 단일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양보이든 포기이든 혹은 경선이든 한번 작심하고, 결정됐으면 생각의 철수를 하지 말고 자기행동에 의연하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충북교육감 보수후보 사례에서 확인했듯 현실에선 그 기미가 여전히 안 보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럴 때 언론은 그래도 깨끗하고 능력있고 바람직한 후보를 가려내야 하겠는데 요즘은 세월이 하 수상한지라 그저 따라가려고만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적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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