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들 둘의 운명은 대비됐다. 출판기념회 파문으로 20대 총선을 포기한 노영민은 주변인들에게 정치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떠올리게 했고 그로부터 지역구를 넘겨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도종환은 정치인으로서의 몸집을 본격 부풀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한데 지금은, 참 묘하게도 둘이 같이 뜨고 있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의 주요 뉴스에서 둘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는 도민들로선 그야말로 뉴스보는 재미가 있다. 그 것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국정의 가장 핵심 분야에서 두 사람의 역할이 자주 조명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동안 국가권력의 역학관계에서 충북인들이 늘 되뇌이던 자학, 이른바 광복 이후 총리 한 명 내지 못했다 하여 붙여진 ‘불임(不姙) 충북’이라는 오명이 요즘은 두 사람으로 인해 많이 희석되는 느낌마저 든다. 역대 정권에서 지역출신 정치인들이 반짝 잘 나가는가 싶다가도 결국엔 권력의 편의적 발상인 1회용 핀치 히터로 끝나던 사례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1년전 노영민의 주중대사 내정 소식에 본란을 통해 이런 칼럼을 실은 적이 있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향후 역할이 기대되고 또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예단한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전임 정권에서 주중대사를 지낸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권의 최측근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엔 오히려 정치적으로 사장되거나 잊혀졌다. 노영민의 활동은 정치적인 배경보다는 순수하게 본인의 식견과 역량으로 성과를 낼 것이다”.

당시 이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이렇다. 우선 평소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른바 ‘관시(關係)문화’가 국가운영의 가장 기조가 되는 중국임을 감안할 때 정치인이자 시인인 노영민은 한시(漢詩)에도 밝은데다 한 때는 한국과 중국 의원들 간 바둑대회를 주관하며 상호 우의를 다진 경험이 있기에 주중대사 역할에 메리트가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사드보복으로 양국의 사이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현실에서 결국 돌파구는 상호 경제문제에 있을 것으로 보고 체질적인 경제통인 그의 역할에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운동권 시절엔 노동운동을 주도했고 사회에선 오랫동안 전기사업을 운영함으로써 실물경제에 누구보다도 밝다. 이같은 내공으로 구 민주당 시절엔 경제특보로 활동했으며 19대 국회에선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여하튼 지금, 사드보복 해제라는 말이 중국측으로부터 먼저 불거지면서 양국의 관계복원이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것을 보면 1년 전의 예단이 틀리지는 않은 것같다.

본인 정치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무대에서 내려오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리고 바닥까지 추락한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에서 이를 극복하고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노영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력을 실현하며 한반도의 운명을 견인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20대 총선 불출마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 그의 평생 정치동지 이장섭은 지난해 많은 논란속에 충북도 정무부지사로 변신했지만 지금은 그 역시 거대 행정조직의 ‘발상의 전환’을 주도하며 새로운 리더십을 곧추세우고 있다. 그의 유연하고 탈권위적인 행보에 지역정가에선 벌써 그를 차세대 주자로 거론하며 세대교체의 아이콘으로까지 주목하려 한다.

도종환의 변이(變移)는 가히 혁명적이다. 어찌보면 그가 시인에서 처음 정치인으로 돌변(?)할 때보다 지금이 더 드라마틱하다.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은과 환담하고 또 그와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은 그 자체가 사건이다. 북한핵으로 인해 한반도의 명운이 최대 갈림길에 놓인 상황에서 도종환은 그 해법을 찾기 위한 최고 중심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운신 하나하나는 이제 역사로 기록되게 됐다.
 

사실 올초만 하더라도 정치인으로서 도종환의 입지는 살얼음판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얘기다. 북한과 미국이 막가파식 막말을 주고받고 전쟁을 전제한 일촉즉발의 위기를 알리는 외신이 쏟아지면서 반쪽 올림픽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커지자 주무장관인 그의 입은 바짝 바짝 마를 수밖에 없었다. 눈만 뜨면 고조되는 북미간 긴장과 국제정세의 급변침은 그가 매일 거의 밤잠을 설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올림픽 실패는 곧 도종환의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의 성공개최를 바란다는 김정은의 신년사는 곧 도종환의 시름을 덜게하는 메시지가 됐고 그 결과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대성공이었다. 도종환의 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측 예술단을 이끌고 평양으로 넘어가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과 ‘봄이 온다’를 합창하게 되었고 오는 가을엔 다시 서울에서 ‘가을이 왔다’를 함께 부르기로 약속까지 한 것이다. 외신은 그를 한반도에 봄을 알리는 전령사라고 표현하며 주목하기에 이른다.

현재의 도종환을 생각하면 그의 대표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언뜻 떠오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은 지난 2012년 이명박 정권이 그에게 좌파의 딱지를 붙여 이 시를 교과서에서 빼려하자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를 직접 낭송하는 초유의 상황을 연출한다, 그러면서 “문화를 이념으로 재단하고 정권유지의 도구로 만들지 말라”고 일갈한다.

‘봄이 온다’를 가장 실체적으로 알리는 것은 어느덧 피어나는 봄꽃들이다. 또한 ‘가을이 왔다’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여름 내내 땡볕을 이겨내다가 마침내 꽃잎을 터뜨리는 가을꽃이다.

도종환은 지금 그 꽃들을 피우기 위해 마냥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종착지는 그가 자신의 시에 그토록 담고자 했던 인간, 삶, 사랑, 당신, 진실, 정의, 평화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노영민과 도종환의 정치는 이제부터 시작이고 우리는 이를 지켜볼 것이다. 어쨌든 찌들고 찌든 정치판에서 둘의 움직임은 새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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