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규 「그만큼만-금희의 겨울나기」 전문

하굣길

발 조금 미끄러울 만큼만 내리는 눈

뺨 조금 따가울 만큼만 시린 바람

눈물 조금 글썽일 만큼만 오른 열

선생님, 오늘은 제 생일이었어요. 제 생일날 제가 끓인 미역국은 차마 넘어가지 않았어요. 괜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구름 가득한 하늘이 낮게 내려와 제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주었어요. 문득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어요. 그러면 구름과 함께 바람 따라 흘러가다가 어느 따스한 마을에 닿으면 눈발로 내릴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어느 집 불빛 노란 저녁 식탁 유리창에 붙었다가 순하게 녹아들 수도 있지 않겠어요.

차마, 그만큼만 깊은 겨울

─ 윤장규 「그만큼만-금희의 겨울나기」 전문(시집 『언덕』에서)

 

학생들의 글을 심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놀랍게도 결손가정의쓰라림을 호소하는 내용이 30% 가까이 되더라고요. 특히 소도시나 농촌 학교로 갈수록 가정환경 때문에 고통 받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부모의 무모한 이혼으로 조부모 슬하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많았고요, 한쪽만 남은 부모와 어려운 생활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학생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처한 어려운 사회적 환경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고요. 모든 이들이 함께 힘써 보듬어 나가야 할 우리가 처한 균열된 삶의 현상입니다.

「금희의 겨울나기」도, 다 자라기도 전에 제 삶의 몫을 고스란히 넘겨받아야만 했던 환경 속에서 무거운 생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발견해 가면서,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길어 올리려는, 어린 화자의 의연한 의지가 뜨거운 한줄기 눈물처럼 아름답게 가슴을 적시는 시입니다. ‘어느 따스한 마을에 눈발로 내려, 불빛 노란 저녁 식탁에 순하게 녹아들 수’ 있다면, 지금 뺨을 때리는 시린 바람의 하굣길쯤이야, 꼭 그만큼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눈송이인 것을.

저 생의 수레에 실린 분노를 내려놓을 줄 아는 곱디고운 슬기는 어디서 오는가요. 숙인 고개를 들고 따스한 등불을 향해 체온을 녹이려는 향기 묻은 삶의 지향은 어디서 오는가요. 금희의 겨울바람 속에 가슴을 묻고 그래도 살아보라는 속삭임에 흐느끼며 마음껏 펄럭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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