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전임 사장의 인사비리로 공채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8명 전원을 구제키로 했다는 뉴스는 모처럼의 희소식이었다. 이를 주도한 신임사장이 충북출신이라서 지역민들의 소회는 더 남다랐다.

공교롭게도 이 발표가 있은 뒤 곧바로 청와대가 강원랜드 부정합격자 226명에 대한 직권면직을 천명하면서 한국가스안전공사는 더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김형근 사장은 취임 두달여만에 공기업 혁신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게 됐다. 흔히 말하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것이다.

사실 그의 사장 취임은 회사 구성원은 물론이고 주변인들에게 기대감 못지않은 많은 우려의 시선으로 먼저 다가왔다. 전임 사장이 형사처벌돼 구속된 마당이라 경직된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도 급선무였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조차 다루기 힘들다는 우리나라 거대 공기업, 그 것도 상처받은 조직을 외부인사로 낙점된 그가 과연 어떻게 끌고 나갈 지가 여러모로 궁금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공기업 책임자들에 대한 인식은 어쩔 수 없이 당시 정권과의 역학관계로 받아들여지고 정리돼 왔다. 공기업의 고유업무와는 무관한 정치성향 인사들이 어느날 낙하산으로 내려왔다가 무사히 임기를 채우면 그만이라는, 이른바 공기업 매뉴얼 등이 그렇다.

실제로 국가 공기업을 경험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신임 사장의 경우 몇가지 공통적인 행동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취임하더라도 일정 기간은 관망의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노조 등 견제세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또 그들과의 관계설정을 고민하면서 일단 말을 아낀다고 한다. 이를 통상 서로 간을 보는 ‘허니문 기간’라고 한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선 이러한 신경전이 신임사장과 조직 기득권 사이의 ‘암묵적인 신사협정’ 즉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공생관계로 변질돼 결과적으로 조직의 발전과 혁신까지도 해친다고 한다. 더러는 이 과정에서 신임사장의 약점이 드러나 임기 내내 소신없이 물타기 처신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역대 정권마다 공기업의 개혁을 그토록 외쳐왔지만 모두 무위로 끝난 이유를 이런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기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나서 강원랜드 부정합격자에 대한 직권면직을 주문하고, 또 앞으로 조직혁신에 미온적인 공기업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처사는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현 정권의 의지를 가늠케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김형근 사장은 달랐다. 취임 닷새만에 비서실장과 인사업무 책임자를 전격 교체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의 취임 일성도 청산과 혁신, 인사비리의 발본색원이었고 현재 이를 위한 공개적 시스템을 갖추는데 전력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은 그동안 부당하게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직원들에 대한 자체 구제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 자의 적폐를 걷어낸다고 해서 이 조직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담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가능성을 예시했을 뿐이다. 전임 체제에서 공기업을 사유화하고 납품과 승진, 인사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기까지는 사장 개인의 일탈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를 방관하고 유기한 조직 구성원들에게 더 큰 책임이 갈 수도 있다. 김형근 사장이 이 것까지를 극복하고 진정한 개혁을 이루어낼 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공기업의 정상화는 한낱 기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근간을 바로 잡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국가운영의 신념과도 맥을 같이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그 의지를 곧추세우기 위해서라도 공기업의 수술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바로 강원랜드 사태가 국민들에게 이를 실체적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힘있고 가진자들의 특권의식은 그동안의 국가적 문화와 정서를 감안해 다소간 이해한다 하더라도 강원랜드의 인사부정은 그 규모와 의도성에서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데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이른바 ‘빽’이 없으면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정당하게 대접받고, 정당하게 살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정의로운 결과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원초적으로 불가능함을 국민들은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패악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반칙과 특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 그 것이 사회와 국가운영에 있어 어떠한 죄악이 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부정한 인사청탁을 해놓고도 “지역구민을 위한 정상적인 의정활동”이라고 고개를 쳐드는 문제의 국회의원들이 우선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DNA는 어제 오늘 만들어진 게 아니다. 뿌리가 깊고, 그 결정적인 토양은 광복 이후 친일청산을 못한 원죄로부터 비롯됐다. 꼭 처단되어야할 친일분자들이 다시 국가운영의 주체가 되고 그 후손들은 매국으로 나라를 유린한 선친을 똑같이 답습하며 2세, 3세 대를 이어 군대의 문턱에도 안 간 병역기피자가 되고서도 눈만 뜨면 종북놀이로 나라를 이간질 한다. 그들에게 특혜와 편법, 부정은 반드시 누려야 할 삶의 기회가 될지언정 절대로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의 변함없는 원형질이 지금 공기업의 인사부정이라는 또다른 탈출구를 찾아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한국가스안전공사의 김형근 발 적폐청산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어지러운 사회에서 반칙의 문화를 정직과 원칙의 문화로 되돌려 놓는 것, 그는 지금까지 이에 책잡힐만한 쓰리고 아릴 게 없는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누구보다도 자신감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내가 깨끗하면 결국엔 인정받는다.

차제에 도내 지방공기업들에 대해서도 여론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때마침 충북도 출연기관인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의 전 사무국장이 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 문제가 된 임대사업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사석에서 회자되고 있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지역사회가 예의 주시한다.

선출직인 자치단체장의 선거공신들이 주요 자리를 꿰차는 지방공기업의 혁신은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해 국가 공기업만큼이나 힘들다. 지금도 끊임없이 지역 공기업들의 난맥상이 논란을 일으키지만 명쾌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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