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의 同床異夢

홍강희 충청리뷰 편집국장

견지망월(見指忘月).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다. 요즘 그런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한 인터뷰에서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 둘이 식사를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참석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즘 여기서 유래한 ‘펜스 룰’이 유행이다.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가 만들어낸 이상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미투 운동’ 이후 주변에서 듣기싫은 소리를 매일 듣고 있다. 이런 말도 성희롱이냐, 이것도 성추행이냐, 내가 이렇게 했다고 당신도 ‘미투’ 할거냐, 서로 저 만큼 떨어져서 얘기하자, 전화로 하자, 요즘은 남·녀 직원이 따로 회식한다더라, 남녀칠세부동석이라더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거냐 등등. 대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물고 늘어지면서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를 알기는 하지만 피곤하다.

지난 1993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이 터졌다. 우 모 조교가 서울민사지법에 신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소송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법원은 6년간 4번의 판결 끝에 ‘신 교수는 우 조교에게 5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적으로 성희롱이 인정된 것이다. 가해자 이름을 따서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 전까지는 불필요한 성적인 접촉을 하거나 농담을 해도 처벌받는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고발자들은 너무 힘들다. 우 조교는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여성이었다. 이런 그에게 신 교수는 지속적인 신체접촉과 성적 희롱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 조교는 거부의사를 밝힌 ‘죄’로 재계약에서 탈락된다. 그는 기나 긴 소송에서 이겼으나 다른 대학에도 취업하지 못했다. 성희롱사건을 시작한 사람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평생 ‘우 조교’라 불리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요즘 ‘미투’에 나서는 사람들도 폭로 이후 심각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하고 아무렇게나 뱉어내는 이상한 소리를 다 들어야 한다. 꽃뱀 아니야,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야,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인가 등등.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 같으면 직장과 이름과 얼굴을 내놓고 폭로할 수 있는가. 폭로 이후 가해지는 2차 피해가 얼마나 큰데 영웅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미투’에 나선 사람들의 처지는 25년 전의 우 조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성평등사회를 앞당기는 용기있는 행동이지만 감수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 10년전, 20년전 사건을 이제야 고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고발자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성평등 없이는 사회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수많은 여성운동가가 외쳐왔던 말을 이제 실행할 때가 됐다. 성평등사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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