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희 「충북선 기차」 전문

같은 길을 달리며 늘 보는 풍경 사이
느티나무 굵을수록
검버섯 돋은 집들
소리를
먹고 자라며
풀잎도 질겨진다

집집마다 젖은 삶을 노래하는 빨랫줄과
살아온 기억 너머 흔들리는 옷가지들
수없이 바람굽이를 맞으면서 달린다

젖은 사람 마른 사람 기차엔 늘 붐비고
간이역에 내리는
사람들의 뒷모습마다
헛뿌리
개구리밥이
떼 지어 붙어있다

─ 배경희 「충북선 기차」 전문[격월간 <유심> 47호(2011년)에서]

그림=박경수

오래전 식민지 시대에 놓여 진 단선 철로는 아직도 그대로인 채, 바라보이는 주변 풍경도 그제나 저제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문명의 외곽을 가끔 굼뜬 기차가 지나가는 충북선 철길. 시간의 두께만큼이나 녹슬고 바스러진 노변을 따라가 보면, 등진 고향의 오래된 목판본 한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갈비뼈 밑이 시려옵니다.

묵은 느티나무 뒤로 띄엄띄엄 누운 누옥은 오래 전에 배달된 낡은 소포처럼 무너진 담장 너머 풍진 세월에 억센 잡초만 무성한데. 잔멸의 햇살 초췌한 봉당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검버섯 돋은 손을 들어 반기는 듯 성가신 듯 내젓는 노친 두엇. 젖은 삶을 노래하는 외줄처럼 걸린 빨래들, 살아온 기억을 흔드는 옷가지들. 차창에 기대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는, 다음 역이나 그 다음 역에서 내릴 고만고만한 얼굴들. 그래도 장이 낀 날은 이런 저런 일로 조금은 붐비는 승객들. 외진 곳에서 저들 끼리끼리 익숙하고 낯익은 세상의 안부를 나누고 한숨을 나누고, 그렇게 젖은 손, 마른 손을 맞잡고 비비는 참으로 오래 변할 것 같지 않은 저 심원하기조차 한 풍경이지요.

고향에 뿌리 박고 살아도 부유하는 인생처럼 늘 헛헛한 늙은 농부들의 입성엔 헛뿌리 개구리밥이 풀무늬처럼 무성하고요. 누구의 책임인지 모르겠으나, 속수무책의 세월 속에 참 덧없이 버려진 적빈의 풍경을 충북선기차를 타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내가 누구인지, 내 DNA의 원형이 무엇인지, 어제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꿈꾼다면, 그런 생의 물기가 아직도 맞닿아 촉촉한 충북선 열차에 오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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