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기부채납으로 기념사업회 추모사업 토대 마련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송건호 선생 생가 터와 표지석

한국 민주 언론의 사표인 청암 송건호 선생 옥천 생가 터 정비사업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16일 옥천군에 따르면 최근 송건호 선생의 장남 준용씨가 군북면 증약리 331-4번지 1021㎡의 대지에 대한 기부채납 의사를 밝혔다는 것. 이에따라 군은 현재 생가 터에 지어져 있는 주택과 창고를 매입하고 정비 작업을 거쳐 추모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옥천군 김영만 군수는 2년전 군 주도로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를 발족한 뒤 생가 터 표지석 건립, 공식 추모식을 개최했다. 군의 적극적인 추모사업 의지에 따라 유족들이 생가 터 기부채납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선생은 1927년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증약)에서 아버지 송재찬과 어버니 박재호 사이에 3남 5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증약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서울 한성사립상업학교에 진학했다. 해방 이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가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청암 송건호 선생

대학재학 시절 대한통신 기자로 입사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언론사에서 일했다.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해 이듬해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백지광고 사태'를 맞기도 했다. 결국 사주가 정권에 굴복해 기자들을 대량 해직시키자 이에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

이후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을 맡아 민주언론의 명맥을 이어가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84년 해직기자들을 모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하고  월간 '말'지를  발행했다. 월간 '말'지는 군사독재정권의 이른바 보도지침을 폭로하여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언론출판의 자유가 회복되면서 국민주로 창간된 한겨레신문사의 초대 사장으로 선출돼 1993년까지 재직했다. 하지만 고문후유증으로 생긴 파킨슨병이 발병해 현직 언론인 활동을 접었고 수년간 투병하다 2001년 작고했다.

송 선생은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해방전후사의 인식'(공저) '한국민족주의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같은 업적으로 생전인 1994년 호암상,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했고 사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언론민주화에 평생을 바친 송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2년 청암언론문화재단이 발족됐고 '송건호 언론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2010년 옥천신문, 2014년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2015년 변상욱 CBS 대기자가 수상했고 작년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친 ‘JTBC 뉴스룸’이 주인공이 됐다. 

한편 충북에서는 민간주도로 2003년 송건호기념사업회를 조직했고 '옥천신문' 주관으로 해마다 언론문화제를 개최했다. 이같은 민간의 추모사업 의지에 부응해 마침내 2016년 옥천군이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로 확대 발족시킨 것이다. 기념사업회 이인석 회장은 옥천문화원장을 역임했고 이안재 사무국장은 옥천신문 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