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연구가 신동흔 교수의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경 전 꿈꾸는책방 점장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든 책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설화연구가이자 문학박사인 신동흔 교수가 쓴 이 책은 바리데기와 백설공주 같은 옛이야기 속 주인공을 통해 여행과 길 떠남, 나아가 삶의 주인공이 되는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제목처럼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왜 모두 길을 떠나는 것일까? 그들의 떠남은 스스로 결정한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떠밀리기도 했다. 길에서 동반자나 조력자를 만나기도 하고 약탈자를 만나거나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이들의 여정과 결말이 이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권선징악처럼 착한 인물이어서 복을 받고 못된 인물이어서 그렇지 않은 걸까?

<장자못 전설> 이야기 속 며느리는 시주를 온 스님을 도와주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길을 떠나서 뒷산 고개를 넘어가시오. 그래야 삽니다. 길을 갈 때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라고 일러준다. 스님이 말한 대로 집을 떠난 며느리. 그러나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자 차마 고개를 다 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만다. 자신이 살던 집터가 벼락에 맞아 물로 잠기는 모습을 본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돌이 되었다. 착한 심성 덕에 집을 떠나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끝내 지난 삶에 대한 미련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기에 돌이 된 것이다.

결국 인생의 결말은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훌륭한 동반자나 조력자가 있어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우면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독일에서 살고 싶다”라고 말하곤 했다. 누군가가 왜 독일에 가고 싶어 하냐고 물으면 “브레멘 음악대를 만나고 싶어서요.”라고 대꾸했다.

왜 브레멘 음악대를 이야기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무렵의 나를 돌아보면 아마도 브레멘 음악대를 ‘연대의 힘’을 보여 주는 훌륭한 모범으로 여겼던 듯하다. ‘(인간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된 동물들이 결국은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재능으로 도둑을 쫓아낼 때, 처음엔 혼자였지만 나중에는 여럿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되었을 때 힘없는 이들이라도 연대하면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의문도 들었다. 브레멘 음악대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목적지까지 가지 않고 도중에 주저앉은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당장 숲속 작은집이 주는 안락함에 자신들의 목표를 잃은 게 아닌가? 하는 물음. 마침 책에는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나온다.

“숲 속의 집에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맘껏 해서 즐거움을 찾았으니 그곳이 바로 그들이 가고자 했던 ‘브레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브레멘이란 어디 특정하게 정해진 곳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식으로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는 뜻입니다.”

떠남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만나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엮어 내는가라는 뜻일 터. 그렇다면 꼭 길을 떠나지 않더라도 현재 머물고 있는 곳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지는 것이리라.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흔히들 여행이, 그것도 혼자 떠난 여행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낯선 곳으로 떠나기만 하면 누구나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모두가 성숙해지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이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비행기를 타거나 유명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만 여행이 아니라, 집 밖에 있는 골목길이나 시장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여행이라고, 어디서든 새로운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라고 말한다. 여행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여정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았어도 숲속에서 행복을 찾은 브레멘 음악대처럼 어디서든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장소가 여행지이며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

옛이야기 연구가답게 마지막에는 ‘이야기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도 조곤조곤 말해 준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이야기 중에서 좋은 이야기 또는 진짜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말이다.

짐작하듯, 오랜 세월을 거쳐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다듬어진 옛이야기야말로 진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또한 우리의 몫이다. 어쩌면 이것이 저자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책을 덮고 나니 잊고 지낸 옛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부른다. 긴 겨울밤,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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