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저 멀리 우주를 탐사할 때 생명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물의 존재이다. 생명의 근원이기에 생명체에 대한 기질도 좌우한다. 예로부터 행정구역을 나누고 동네를 구분할 때 산맥과 물줄기를 기준으로 했다.

같은 물을 마시는 동네 사람들은 같은 생명의 근원을 공유하기에 기질도 비슷하다. 그래서 동네마다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고, 더 넓게는 지역과 시도 그리고 국가에 따라 사람의 기질이 달라진다. 외지나 타국에서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동네사람을 만나면 더욱 반가운 이유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어디서 길어온 것일까? 필자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에 지하수 관정을 파서 물을 퍼 올린 후 동네 8가구가 나누어 마셨다. 지하수라서 별도의 수도요금은 나가지 않았지만, 펌프를 작동시키는 전기세는 가족 수로 나누어 분담했다.

고지서가 한 집으로 나오기 때문에 자연스레 공금 형식으로 미리 돈을 내게 되었고, 공금에 여유가 생기자 동네를 위한 공동의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모임이 만들어지고 식사도 같이 하였다. 지하수는 동네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끈이 되었다. 간혹 지하수에서 모래가 올라와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불편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민원을 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모래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수도 요금도 공동분담이 아니라 각자 쓴 만큼 내니 누가 더 쓰네, 덜 쓰네 불평도 없어졌다. 그 편안함은 더 이상 동네 사람들이 마주할 시간을 줄여주었고, 그 만큼 서로가 멀어져 갔다. 조그만 갈등도 오래가고 풀리지 않았다. 결국 동네 사람들은 2~3가구씩 쪼개졌다.

마을의 지하수를 마실 때나 저 멀리 대청호 물을 마실 때나 같은 근원의 물을 마시는데,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왜 대청호의 광역상수도에는 동네의 물처럼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신비한 힘이 없는 것일까?

동네라는 말의 어원은 우리나라 말의 조상격인 르완다어의 tonga(큰 통, large basket)와 nya(지역, region)가 합쳐져서(tonga+nya) 생긴 말이라고 한다. 큰 물동이로 물을 떠다가 사용하는 동산(洞山)의 주변지역을 의미하며, 이것이 구전되면서 ‘동네’가 된 것이다.

동산의 동(洞)에도 물을 의미하는 수(水)가 붙어있다. 결국 동네는 같은 근원의 물을 마시는 지역이라는 의미였는데, 지금 대청호라는 같은 물을 마시는 지역은 더 이상 동네가 아니다. 필자의 동네처럼 대청호 상수도는 더 이상 같은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지 못한다.

멀리까지 대청호 물을 운반하여 마시는 사람들을 위해 진짜 대청호 근처에 사는 동네사람들은 너무 많은 규제와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낡은 집도 마음대로 고치거나 새로 지을 수 없고, 동네에 있는 대청호 물도 마실 수 없다. 생활이 불편해지자 사람들은 동네를 떠났고, 이제는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상수원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유기농, 무농약 농업도 이제는 힘에 부쳐 포기했다. 쌀농사는 돈이 되지 않아 밭으로 바꾸고, 축산업으로 전환했다. 지하수도 오염되어 슈퍼에서 페트병 물을 사서 마시기도 한다. 대청호 하류 사람들이 그들에게 물을 깨끗이 지켜달라고 십시일반 보태준 수계기금이 1년에 1220억원이 넘지만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마을 도로 포장, 회관 건축, 가로등 설치 등 행정기관에서 집행하기 쉬운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수계기금을 관리하는 금강수계관리위원회에서는 오염원 관리를 위해 대청호 상류 옥천군의 50%를 매입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수립하였다고 한다. 대청호 동네사람들은 같은 물을 마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머지않아 쫓겨날 슬픈 위기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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