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만약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십중팔구는 돈이나 명예 혹은 이 것들을 전제로 한 자신의 성공여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물론 돈을 많이 벌면 다는 아니겠지만 대개는 행복하다. 또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당연히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에 대한 체감도가 높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을 내가 사는 도시와 마을, 그리고 내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찾는다면 이를 가늠하는 척도는 분명 달라진다. 돈과 명예가 안기는 앞의 행복이 물질의 보상이라면 뒤의 행복은 세상을 살아가는 환경이 과연 나에게 적합하고 맞느냐는, 이른바 심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기좋는 도시, 살기좋은 마을, 살기좋은 자연을 찾아 순례를 하고 있다. 귀농 귀촌을 하거나 서로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 데 모여 마을을 일구기도 한다. 방송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이것 저것 다 팽개치고 아예 산으로 들어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고 싶다는 사람들을 요즘엔 쉽지 않게 만난다.

이들의 공통점은 행복, 그 것도 진정한 ‘나의 행복’에 대한 갈망이다. 그 중엔 돈많은 사람도 있고 이미 출세하여 세상을 마음껏 활개치며 호령한 이들도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행복에 대해 배고파하고 갈증을 호소한다. 가족과의 공감, 이웃과의 소통, 주변환경과의 교감이 더 절실함을 느끼면서 살기좋은 도시, 살기좋은 마을, 살기좋은 자연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살기좋은 도시, 살기좋은 마을을 외치며 이에 모든 것을 걸고 활동하는 우리나라 도시학 분야의 국가대표가 있다. 서울시립대 정석 교수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거리를 설계해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든 그가 강연을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말은 “여러분 행복하세요?”다. 그러면서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듯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고 마을의 주인은 주민이라고 강조하며 얘기를 풀어간다.

얼마전 그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제주 서귀포에서 보름을 살았다. 그가 쓴 책 ‘도시의 발견’을 우연히 읽게 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책 내용에 공감하면서 이를 당시 서귀포 시장에 소개한 것이 계기가 돼 그 곳 사람들의 초청으로 제주살이를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한 강연을 통해 ‘서귀포 다움이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제주인들이 방관하지 말고 나설 것을 촉구했다.

요즘 제주도로 골프투어나 여행을 다녀온 주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이젠 제주도는 끝났다”이다. 중국 자본 등에 의해 마구잡이로 점유되고 파헤쳐지는 자연경관과 이로인해 제주의 고유성을 잃어가는 추세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정석 교수 역시 막상 현지의 서귀포 살이를 통해 그 심각성을 느낀 나머지 이젠 ‘시민들의 행동’이 절실함을 자각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순진하게 살기좋은 도시를 바라지만 권력과 자본은 아주 영리하게 팔기좋은 도시만을 추구한다. 시민들이 살기좋은 도시를 꿈꾼다면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말해야 한다. 기다리지 말고 가만있지 말고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살기좋은 도시’라는 화두로 인해 요즘 가장 국가적 관심을 끄는 것이 도시재생사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도시재생 뉴딜정책’이 본격적인 추진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의 최대 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향후 5년간 총 50조원이 투입되어 전국 500여 낙후지역을 정비하는 이 사업의 1차 대상지 선정은 오는 12월 말까지 결정된다.

도시재생은 그동안 우리나라 개발정책의 양대축을 이루던 재개발이나 재건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간단하게 말해 재개발과 재건축이 왕창 부수고 까뭉갠 후 다시 건설, 건축하는 것이라면 도시재생은 기존의 도시틀을 유지하며 일종의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해당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살리고 여기에 스토리텔링까지 입히면서 주거와 상업시설의 개선을 통해 궁극적으로 총체적인 도시활력을 기하는 사업이 도시재생이다.

문제는 정부지원 사업이 늘 그렇듯 이번 도시재생 역시 획일적인 잣대의 개발정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그 개연성이다. 지자체가 예산을 확보하면 업자는 소위 ‘눈먼 돈’ 따먹기에 혈안이 되고 그 결과로서 도시와 마을의 원형까지도 훼손되는 얼치기 개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 엄청난 예산규모에 주목하며 자칫하면 제2의 4대강 사업이 될 수 있다고 경계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도시재생의 최고 딜레마인 원주민들의 엑소더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역풍까지 염려하는 것이다. 결국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어낼 것이라고 예단한다.
 

이젠 고급 커피숍들이 즐비한 청주 수암골 전경

청주 수암골은 부산 감천마을, 통영 동피랑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벽화마을로 꼽혔다. 셋 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모여 살던 달동네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이를 주제로 한 도시재생이 추진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이다.

2009년 소지섭과 한지민이 주연을 맡은 ‘카인과 아벨’을 시작으로 ‘제빵왕 김탁구’(2010년) ‘영광의 재인’(2011년) 등 여러 TV 드라마가 수암골에서 촬영됨으로써 테마 관광지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어떤가. 고급 브랜드의 커피숍과 음식점, 여기에다 대형 빌딩까지 합세함으로써 수암골은 더 이상 역사와 이야기를 최고 자산으로 하는 재생도시가 아니다. 아직까지 힘들게 남아있는 벽화는 골목의 주인공은커녕 군더더기가 된 느낌이고 이 곳 주민들도 하나 둘 떠나가고 있다. 이미 수암골 형(型)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최대 관건은 현재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살기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바로 그들, ‘도시의 주인’인 시민 스스로가 자각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충청리뷰가 오는 12월 13일 청주예술의전당 대회의실에서 창간 24주년과 지령 1000호를 기념해 개최하는 정석 교수 초청 정책강연회는 바로 이런 문제를 놓고 도시의 ‘실질적 주인’인 시민들이 모여 함께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특히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정책 관련 공무원이나 시민운동 관계자들은 꼭 참관할 것을 당부한다. ‘살기좋은 충북’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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