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 ‘추기경 정진석 센터·성 니콜라오 경당’ 봉헌 한국 최초의 무연고자 무료 봉안시설, 약 6만기 안치

추기경 정진석 센터 앞쪽에 세워진 피에타상(예수의 시체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상). 피에타는 이태리어로 ‘동정, 불쌍히 여김, 슬픔, 비탄’을 뜻한다

(음성타임즈) “우리 교구 신부들도 궁핍한 가난뱅이인데 누가 누굴 먹여 살리겠습니까?” 교구 신부들이 어렵사리 꺼낸 말이 화살이 되어 정진석 주교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정 주교는 내색하지 않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신부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위태위태한 처지를 드러낸 것은 한 신부가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며 계획서를 제출한 직후였다. 전국의 걸인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당시로는 허무맹랑한 발상인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최대 사회복지 시설인 꽃동네는 그렇게 힘겹게 시작됐다. /허영엽 신부의 ‘기적’ 中

40여 년 전 당시 천주교 청주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주교와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와의 인연은 ‘추기경 정진석 센터’와 그의 세례명을 딴 ‘성 니콜라오 경당’에서 마침내 완성됐다. /편집자 주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오웅진 신부

토빗이 길가에서 말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묻어 준 것처럼 오늘날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고맙고,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7월 세계청년대회 십자가 기도 中

연고자 없이 외롭게 노숙의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모시는 ‘봉안시설’이 ‘꽃동네낙원’에 마련됐다.

꽃동네 설립 40주년을 기념하여 봉헌되는 ‘추기경 정진석 센터’ 및 ‘성니콜라오 경당’ 축복식이 지난 23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낙원에서 오전 10시 30분 축복미사를 시작으로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 날 축복미사는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됐다.

이어 진행된 기념식에는 한승수,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필용 음성군수, 윤창규 음성군의회 의장, 김윤희, 우성수, 이상정 의원을 비롯 성직자, 꽃동네 가족, 신자 등 1,5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미사 강론에서 “꽃동네는 봉사와 기부 정신이 만들어 낸 기적의 현장”이라고 자주 치하했던 정진석 추기경은 이날 미사를 집전하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축복미사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 꽃동네낙원”이라며 “지난 2014년 꽃동네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랑의 정신이 바로 이 성니콜라오 경당에서 발현됐다”고 기뻐했다.

정 추기경은 “꽃동네가 노숙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인 기적이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간구했다.

 

한국 최초의 무연고자 무료 봉안시설

축복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왼쪽부터) 장봉훈 주교, 정진석 추기경, 오웅진 신부
축복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꽃동네는 그동안 ‘토빗이 길에서 죽은 사람들을 묻어준 것’처럼 꽃동네가족들뿐 아니라 길에서 죽은 전국의 무연고자들을 모신다는 계획으로 센터 설립을 추진해 왔다.

‘추기경 정진석 센터’는 대한민국에서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을 무료로 봉안할 수 있는 한국 최초의 봉안시설로 화강암으로 특수 제작되어 특허까지 받은 유골함에 모셔진다.

이날 기념식에서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는 먼저 “‘순천자는 존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꽃동네는 하느님과 맺은 새로운 계약을 실천하고 있다”면서 “지난 41년을 기억해 보면 참으로 신비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오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잃지 않고 살아 왔다”며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오웅진 신부는 “꽃동네낙원은 산 이와 죽은 이가 서로 사랑으로 만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무연고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에게 안식을 제공하는 묘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가친척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해 줄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면서 “국가에서 장례식을 치루지만 훗날 누군가 그 분들을 찾을려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오 신부는 “꽃동네는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가신 분들을 아무 조건 없이 추기경 정진석 센터에 모시고 그 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매일 기도와 미사를 봉헌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축사를 통해 “이제 꽃동네는 연고가 없는 노숙자들을 위한 생전의 시설과 사후의 시설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며 “정진석 추기경님과 오웅진 신부님의 특별한 노고로 무연고 사망자들이 안식을 얻을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 날 봉헌된 ‘추기경 정진석 센터’는 지하 2층 지상 3층 약 10,420㎡(3,152평) 건물로 6,500기의 봉안석을 안치할 수 있다.

또한 건물 외부를 포함해 약 58,986기의 봉안석을 안치할 수 있는 시설이다.

유골 봉안함은 꽃동네에서 자체 설계 제작하여 특허를 받은 화강석 유골함이다.

 

‘무명(無名)’이라는 ‘이름 없는 이름’

추기경 정진석 센터·성 니콜라오 경당 전경
추기경 정진석 센터·성 니콜라오 경당에 안치된 봉안석

꽃동네는 그동안 어려웠던 시기, 아무도 모르게 길거리나 다리 밑, 산속 움막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을 구호하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살아 왔다.“오늘 같이 기쁘고 자랑스러운 날이 어디 또 있느냐. 내 사랑하는 아들을 오 신부가 살려주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오늘 너에게 새로운 계약을 맺겠다. 앞으로 오늘같이 가장 고달픈 이들을 내 이름으로 네가 맞아들이면 나머지 것은 모두 책임져 주겠다” 
/1978년 8월 16일 오후 3시 충북 증평읍 반탄교 위에서,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의 신앙고백 中

또한, 꽃동네의 손길이 미처 닿기도 전에 죽어 간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염을 하고 장례를 치러 왔다.

꽃동네 가족, 꽃동네 후원회원, 꽃동네 은인, 꽃동네 수도자가 잠들어 있는 꽃동네낙원의 약 6,000여 명의 망자 중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어 ‘무명(無名)’이라는 ‘이름없는 이름’으로 모셔져 있는 사람도 있다.

이제 ‘꽃동네낙원’은 기도와 희생,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은인들의 도움으로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분들을 모셔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고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귀한 장소로 봉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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