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단 본사·공장, 국내 최연소 의사고시 합격, 최장수 경영인 기록

故 정재원 회장

국내 최장수 경영인으로 불렸던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이 지난 9일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국내 두유의 시초인 ‘베지밀’을 생산하는 정식품은 1983년 청주산업단지에 생산공장을 건립하고 서울본사와 청주본사로 이원화했다.

고 정 회장은 역대 최연소 의사국시 합격자(만 19세)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일제 당시 황해도 은율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정 회장은 가난하게 자랐다. 대중목욕탕 심부름꾼부터 가게 점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고 우연히 의학강습소의 급사 자리를 얻게 됐다. 당시 등사기를 밀어서 강습소 학생들이 볼 강의 교재를 만들었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결국 주경야독의 2년간 노력끝에 1937년 19세 나이로 의사고시에 합격했다.

첫 근무지는 서울 성모병원이었다. 복부 팽만으로 병원을 찾은 신생아들이 설사만 하다가 무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접했다. 의사로서 자책과 의문에 빠졌다가 44세의 늦은 나이에 의학 선진국으로 유학을 결심한다. 당시 아내와 6남매가 있었고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사명감 하나로 짐을 꾸렸다. 영국와 미국의 의료과학을 접하다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lactose intolerance)’이 소개된 책을 접하게 됐다. 유당불내증은 우유나 모유의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을 가진 신생아는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

20여년간 품어온 의문의 실마리가 풀린 고 정 회장은 우유 대용식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줬던 콩국을 떠올렸다. 귀국 후 서울 명동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며 병원 지하에서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마침내 3년만에 두유를 개발했고 이것을 설사병에 걸린 신생아들에게 줬다. 콩에는 필수영양소(단백질 40%, 탄수화물 35%, 지방 20%)가 들어 있지만 유당은 들어 있지 않다. 병상의 아이들은 눈에 띄게 증상이 완화됐고 이때가 고 정 회장에겐 “인생에서 최고로 기뻤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제33기 혜춘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고 정재원 회장(앞줄 가운데).

소아과병원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베지밀’을 만들다 1973년 경기도 신갈에 하루 50여만병 생산규모의 공장을 가동했다. 두유 ‘베지밀’은 유아 뿐만 아니라 노약자에게도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마침내 1984년 청주산단에 하루 150여만본의 베지밀 생산공장을 건립했고 본사도 청주로 옮겼다.

이후 1992년 정식품 중앙연구소가 두유와 우유를 일정비율 섞어 만든 ‘베지밀C’가 공전의 인기를 끌었다. ‘베지밀’은 식물(vegetable)과 우유(milk)의 영문명을 합쳐 지은 이름이다. 창업이후 지금까지 판매된 두유는 총 130억개다. 나란히 세우면 서울∼부산을 1630차례 오갈 수 있다.

고인은 청주본사를 설립하던 해 자신의 호를 딴 ‘혜춘 장학회'를 설립해 해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까지 총 2370여명의 학생들에게 누계 금액 21억7000만원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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