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구호 노근리유족회 부회장 21일 별세, 23년간 진상규명 헌신

영동 노근리사건 희생자유족회 정구호 부회장이 지난 21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1994년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이후 23년간 늘 앞에 서서 진상규명을 위해 애를 썼다. 당시 고 정은용 님이 실화소설 ‘그대, 우리 슬픔을 아는가’를 출간하고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사건 대책위원회’를 만들때부터 한배를 탔다. 미국정부를 상대로 한 진상규명 활동이다보니 대부분의 유족들이 참여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결국 고 정은용 대책위원장과 고 서정구님, 양해찬 노근리유족회장,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고 정구호님 등 5명으로 출발했다.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쌍굴의 생존 피해자로 국내는 물론 미국으로 건너가 수많은 육성증언을 했다. 국회를 통해 노근리특별법을 제정했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이끌어냈다. 포도 농사를 짓는 농부이지만 노근리평화공원에 외빈이 방문하면 정 이사장을 도와 손님맞이를 하곤 했다. 정 이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일부 내용을 정리해 본다.

“고 정구호씨는 노근리사건을 두고 미국을 상대로 외롭고 지난한 역사전쟁과 인권전 쟁을 수행할 때 함께 한 나의 든든하고 훌륭한 동지셨다. 한국사회에서 미국 관련 문제는 일본관련 문제하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고 어렵다. 일본 문제는 각 정당, 언론, 대통령으로부터 심지어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미국관련 문제는 미국의 위세(?) 때문인지, ‘미국이 불편해 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을 반미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선입견과 불균형한 인식(?) 때문인지 몰라도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사회도 소극적이었다.
 

생전에 노근리 쌍굴을 찾은 정구도 이사장, 양해찬 노근리유족회장, 고 정구호 부회장 모습(왼쪽부터)./ 사진=재능기부 김은주 작가

아니 오히려 ‘반미’를 한다고 공격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터라 대책위의 진실규명 활동은 늘 고단하고 외로운 싸움 이었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던 정구호 부회장님! 당신의 작고가 슬프고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빈 자리가 너무나 큽니다. 2001년 1월, 노근리사건의 존재자체를 부인하던 미국 정부가 노근리사건의 실존을 인정하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노근리사건의 잘못을 인정하여 유감표명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소년 다윗과 골리앗 장군과의 싸움보다 더한 싸움에서 이겼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나는 당신을 ‘21세기 로마제국’이라고 일컫는 강대한 미국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 소년 다윗이요, 노근리사건의 역사적 진실과 국가적 자존심을 지켜낸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부르고 싶다”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세간의 오해가 남아 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유족회가 상당한 수준의 배·보상 또는 위로금을 받았다는 소문이다. 노근리특별법이 제정되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유감표명을 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족들은 단 한푼도 이같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 특별법은 추모공원 등 추모사업 지원에 국한됐고 미국의 제안도 한국전쟁 당시 전국의 미군학살 피해자에 대한 추모탑 건립과 장학기금 설립이었다. 23년간 진상규명과 유족회를 위해 헌신해온 고 정구호님은 떠났지만 아직도 남은 이들의 해야 할 몫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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