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그림에 종이·비단 붙여 새 생명 불어넣어
전통문화 되살리는 배첩 …후진 양성에 심혈 기울여

<홍종진 배첩장인 인터뷰>

사람이나 문화재나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제 아무리 좋은 작품과 보물도 숱한 시간과 세월이 지나면 결국 낡고, 변하고, 급기야 없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건만 우리 고유의 정신과 의미가 녹아있는 문화재나 작품이 사라지는 일은 정말이지 아깝고 안타깝다.

글과 그림은 더해서 수백 년, 아니 수십 년만 지나도 퇴색되고 깨지고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게 된다.

누구라도 한번쯤 수백 년 전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보고 감탄과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고유의 정신과 문화재를 후손들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첩만을 바라보다

배첩은 글씨나 그림에 종이나 비단 등을 붙여 족자, 액자, 병풍 등을 만들어 아름다움은 물론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처리기법이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에 너덜너덜해진 소중한 문화재가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배첩 기술은 중국에서는 장황, 일본에서는 표구라고 부른다. 배첩은 신라와 고려를 거쳐 꾸준히 발전해 오다 조선시대에 꽃을 피웠다. 조선시대에는 도화서(圖畵署) 소속으로 궁중 서화 처리를 전담하는 배첩장을 둘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성기를 누리던 배첩은 인쇄 기술의 발달과 보존기술이 변함에 따라 급속도로 쇠퇴했다. 현재 배첩의 명맥을 잇고 있는 장인은 전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몇 명 되지 않는다.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전국에서도 흔치 않은 배첩 장인이 우리 지역 청주에 있다. 무려 50여 년 동안 배첩의 명백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 작품의 생명을 되살리는 무형문화재 제7호 배첩장인, 바로 홍종진 씨다.
 

홍종진 배첩 장인

홍종진 씨는 15살에 처음 배첩을 안 이후 배첩만을 바라보며 한길을 가고 있다.

홍종진 씨가 배첩과 인연을 가진 건 1960년대 초등학교 졸업 무렵이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꿈꾸기 어렵던 차에 동네 한 어른으로부터 우연히 “배첩 기술을 배우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듣고 청주에서 표구사를 운영하던 윤병세(40여 년 전 작고) 선생을 찾아갔다.

윤 선생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102호 배첩장 기능 보유자이자 배첩기술 최고 권위자인 김표명 옹의 스승이기도 하다.

홍 씨는 1966년부터 10년 동안 칼을 갈고 풀을 쑤는 허드렛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다. ‘최고가 되겠다’는 꿈은 홍 씨를 현실에 만족하지 않게 해줬다.

이후 홍종진 씨는 윤병세 선생의 제자인, 윤병의 선생으로부터 배첩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료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풀을 쑤는 것, 칼을 가는 것, 배접 방법까지. 단계별로 천천히 배웠지만 당시 종이 등의 재료가 귀해서 배첩 배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배첩 배우는 일은 돈과는 거리가 멀어 한 달 이상을 라면만을 먹으며 살기도 했다.

서울 관훈동 일대 ‘표구골목’을 전전하며 관련 서적을 읽으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기도 했던 홍종진 씨는 1975년 6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자신의 표구사를 청주에 차렸다.

홍종진 씨는 “글과 그림도 생명이 있어요. 숱한 시간이 지나면 너덜너덜하게 찢어지잖아요.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 직업이야말로 제 숙명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1999년 11월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 배첩장으로 지정된 그는 현재

운영하고 있다. 이 전수관은 청주시가 2004년 12월 국비 등 6억 여 원을 들여 홍 씨에게 마련해줬다.

후진 양성에 심혈 기울여

50여 년 동안 홍종진 장인의 손을 거쳐 간 문화유산은 수도 없이 많다. 경기 안성시 칠장사의 오불회괘불탱(五佛會掛佛幀·국보 296호)과 경북 영천시 수도사의 노사나불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보물 1271호), 청주 보살사의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보물 1258호)을 비롯해 충북대와 청주대, 청주교대 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청주 고인쇄박물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 700여점도 그에게서 새 생명을 받았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밀랍본(국보 151호·성종실록) 재현과 복원에도 온 힘을 기울였다.

 

홍종진 씨는 배첩 기술전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종진 씨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관건은 얼마나 빨리 보수하고 복원작업을 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조기에 암을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는 것과 같죠. 문화재도 제때 보수하면 200∼300년, 심지어 400년 이상 더 보존할 수 있죠”라고 전했다.

홍종진 씨는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 이외에도 명맥이 끊어져 가는 배첩 기술을 후진에게 전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배첩 전수자는 홍종진 씨의 아들 홍순천 씨를 비롯해 수십 명에 이른다. 매주 월, 금, 토요일마다 배첩 강좌를 열고 배첩의 기초부터 액자와 병풍, 족자, 장정(책 묶는 기술), 고서화 처리 등 다양한 배첩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홍종진 씨는 “소중한 문화유산에 생명을 불어넣는 배첩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며 “전수관을 온전히 후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홍종진 씨는 배첩의 예스러운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 구조에 맞게 연구해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는 “점점 잊혀져가는 배첩 문화를 아파트에 맞는 액자 등의 공예품을 제작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현대 주거 구조에 맞게 계속해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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