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박아롱 변호사

박아롱 변호사

얼마 전 101명의 연습생이 여러 차례 경연을 펼치고,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의 시청자들이 이들 중 11명을 데뷔그룹으로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자극적인 편집과 변칙적인 룰,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아 데뷔하게 된 그룹은 음원과 음반, 광고, 출연 프로그램 시청률 등 모든 면에서 승승장구하며 매일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필자는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이 한창 위엄을 떨치던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른바 ‘1세대 아이돌’ 세대에 속해 자연스럽게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며 자랐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직장 생활에 바빠지고 남편과 아이가 생기면서 점차 아이돌 문화는 나에게는 이미 지나간, 어린 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러던 중 가벼운 흥미로 이 101명의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어느 순간 본방송을 꼭꼭 챙겨보다가 응원하는 연습생이 생기고, 그들이 안내하는 방법에 따라 투표를 하게 되었다. 마지막 생방송을 앞두고는 마치 내가 큰 시험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긴장하다가 응원하던 연습생이 데뷔 그룹에 속하게 되자 나의 일에도 그렇게 기뻐했던가 싶을 정도로 큰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고 한편으로 다행이었던 일은 나만 주책스럽게 그들에게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충분히 아이돌을 좋아할 만한 어린 아이들 외에도 나와 연배가 비슷한 친구,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함께 업무나 세상에 관한 일이나 이야기했지 드라마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어 본 적 없던 지인들이 텔레비전 속의 연습생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특이한 점은 여기에 있다. 통상 이들을 오빠라고 부르며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는 청소년들 외에 이미 아이돌은 잊었을 법하거나 아예 이들에게 관심이 없던 30~40대의 응원까지 끌어내 전무후무하게 다양한 연령대의 팬 층이 형성된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다시 아이돌 문화로 끌어들인 것일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그룹을 응원하도록 만든 것일까.

이 프로그램은 편집의 방향에 따라 회차마다 연습생들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바뀐다. 101명 중 11명을 추리는 프로그램을 11회 안에 마치는 과정에서 드라마까지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크게 화제거리가 없는 연습생들은 화면에 얼굴 못 비치고 그대로 탈락한다. 그 과정이 마치 30~40대가 그동안 치열하게 버텨내온 각종 경쟁과 그로 인한 아픔을 압축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정도를 넘나드는 편집과 불공평한 분량 분배를 비난하면서도 안타까운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어린 연습생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실력과 매력을 겸비한 연습생을 내 손으로 뽑아 반드시 데뷔시킴으로써 그 경쟁이 정당한 것이 되도록 만들고 싶은 의지를 갖게 됐다. 내가 응원하는 연습생, 실력과 매력이 있는 연습생이 좋지 못한 모습으로 화면에 비치거나 충분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면 내 손으로 그 연습생에게 투표해서 그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호전시키고 싶다. 나아가 그를 데뷔시킴으로써 불공평한 기회와 불공정한 과정에서 그 연습생을 구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과정 끝에 데뷔한 이들에 대한 애정이 여느 연예인에 대한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이미 이들의 열성 팬이 된 시청자들은 음원과 음반, 이들이 광고하는 물품을 구매한다. 또 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함으로써 이들이 걷는 길이 ‘꽃길’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한다.

어찌 보면 아이들만 즐기는 문화인 것처럼 그냥 지나치고 말 수 있는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선물한 것은 치열하고 잔인한 경쟁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의 길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나의 손으로 후배, 후손, 사랑하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정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적어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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