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작업환경에 불면증과 우울증…회사 옮기려 했지만 실패
고용주 허락 없이는 못 옮겨…이직 어려워지자 극단적 선택

 

지난 6일 네팔에서 건너온 젊은 노동자 깨서브 스래스터(Keshav Shrestha)가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그가 남긴 유서(사진 청주네팔쉼터)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합니다. 제가 세상을 뜨는 이유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네팔이주노동자 깨서브 스래스터가 남긴 유서. 번역 청주네팔쉼터)

꽃다운 나이인 27살. 지난 6일 새벽 4시에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깨서브 스래스터(Keshav Shrestha)씨가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자살하기전인 새벽 3시까지도 동료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그의 극단적인 선택을 미처 예감하지 못했다.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안건수 소장에 따르면 깨서브 스래스터 씨는 지난 2016년 2월 한국에 입국했다. 경기도에 소재한 S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회사가 이전한 충북 충주시로 거주지를 옮겼다.

깨서브 스래스터 씨는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운영되는 노동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급기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심한 불면증으로 악화됐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깨서브 스래스터 씨는 회사에 고통을 호소했고 지난 5월 경 주간근무만 하는 것으로 근무형태를 변경했다.

주간근무로 전환했지만 불면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깨서브 스래스터 씨는 고국인 네팔을 다녀오는 지인에게 현지 약을 구입하려 했다. 그의 부탁을 받은 지인은 약을 구매하려 했지만 당사자가 없어 약을 처방 받을 수 없었다.

깨서브 스래스터 씨의 동료들은 면담한 청주네팔쉼터를 운영하는 수니따 씨에 따르면 최근 서 회사에 이직에 동의를 해주거나 네팔에 가서 잠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상황은 그의 유서에도 언급된다. 깨서브 스래스터 씨는 유서에서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라고 밝혔다.

 

고용주 동의 없으면 이직 안돼

 

정부는 현재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취업을 규제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고용주가 근로기준법 등 실정법을 위반 한 경우 외에는 사업주의 동의없이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길 수 없다.

깨서브 스래스터 씨는 결국 회사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고국으로 일시 귀국해 치료를 받는 것도 어려워 지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고용허가제의 여러 조항 중 위 조항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한다.

안건수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은 이번사건을 “고용허가제에서 직장변경을 사업주의 허락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청주네팔쉼터 대표 수니따 씨는 “ 한국 사람은 취직 후 회사를 받고 싶으면 쉽게 바꿀 수 있지만 고용허가제에 해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주의 허락하지 않으면 지금 있는 회사가 좋지 않아도 제도적으로 마음대로 회사를 옮기기 어렵다”며 “직장 변경만 되었더라도 그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깨서브 스래스터 씨의 안타까운 죽음이 끝은 아니었다.

9일 청주목련공원 장례시작이에서 입국한지 일주일만에 열사병으로 사망한 러시아 브랴트 족 바지르씨의 장례식이 치뤄졌다.(사진 안건수 청주이주민노동인권센터 대표)

수니따 씨에 따르면 지난 8일 충남 천안시 한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26세의 또 다른 네팔노동자가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니따 씨는 “매일 매일 이런 일이 생겨 너무 슬프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만 해결해도 비극은 없어질 것”이라며 “회사를 변경하기가 너무 까다롭고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죽음도 있었다. 지난 7월 27일 입국해 세종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러시아 국적의 부랴트 족 바지르 씨가 열사병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 안건수 대표에 따르면 7월27일 입국한 바지르씨는 8월 1일과 2일 이틀을 일했다. 그의 한국생활은 7월 27일부터 8월 3일가지 단 일주일에 불과했다.

청주네팔쉼터 대표 수니따 씨는 “사람을 위해 만든 제도가 사람을 죽인다면 그 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해 만든 제도일까요?”라고 힘없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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