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직언직썰/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배명순 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직장은 신청사를 건축하느라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어 자가용 출퇴근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인근의 한적한 도로나 골목에 주차를 했는데, 몇 번의 주차위반 과태료를 물고 나서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출장이 아니면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는다. 출장 때문에 차를 가져올 때는 주차위반 걱정이 없는 먼 거리의(그래봐야 걸어서 5분 안팎) 골목에 주차하고 걸어온다.

처음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점차 적응이 돼가고 있으며, 주로 시내버스나 자전거 때로는 운동 삼아 뛰어서 다니게 되었다. 다른 직원들도 전 보다는 불편해 졌지만, 이제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어 무사히 출퇴근 하고 있다. 불편함을 겪게 되는 초기에는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익숙해지자 불편함은 견딜만한 것이 되고 있다.

최근 노란 색깔의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운전하는 지인을 통해 지나친 편안함의 추구에 대한 위험성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를 비롯한 일반적인 사람들은 빠르게 달리는 노란색 어린이집 차량을 보거나, 그 차량에 어린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으레 운전자를 탓하게 된다. 어린이를 책임지는 운전자가 난폭운전을 하는게 말이 되느냐? 당장 처벌해야 한다는 둥 남의 일이 아니듯 분노의 말을 쏟아낸다.

그런데 지인의 말은 달랐다. 보통 일정 크기 이상의 어린이집 차량은 원칙적으로 아파트단지 내로 출입하면 안 된다고 한다. 보호자는 어린이와 함께 아파트 밖의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량이 도착하면 안전하게 탑승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정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차량에서 어린이가 안전하게 하차한 후에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어린이집 차량이 시간에 쫓겨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되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어린이집 차량으로 인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보호자들이 조금 더 편하고자 아파트 단지 내로 차량을 보내달라고 요구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기가 사는 동의 입구에 차량이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를 혼자 내려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차량이동이 쉽지 않고,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어 다음에 탑승할 어린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빨리 달려야 한다. 친한 지인도 10여 년 전에 단지 내로 들어온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차량에 둘째 아이를 잃는 안타까운 사고를 겪었다. 만약 그 차량이 단지 내로 들어오지 않고, 단지 밖의 지정된 장소에서 승하차를 했다면 그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발생한 청주시의 홍수피해도 자연재해 보다는 사회적 인재(人災)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언론과 시민들은 행정기관의 부실한 대책으로만 탓을 돌리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의 공공의 책임에 더 있다.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주택과 인구, 하수관로 시설의 용량을 초과해서 점점 커져가는 도시, 침수가 예상되는 지역의 택지개발, 하천 바로 옆에 지어진 펜션과 주택, 산을 과도하게 절개하여 지은 전원주택들은 애초에 위험성을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편하고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위험한 선택을 늘려갔던 것이며, 그 선택의 결과로 발생한 피해를 내가 아닌 공공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다.

미세먼지, 공기오염, 교통체증을 걱정하고 공공의 대책을 요구하면서 출퇴근용 자가용을 선택한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걱정하면서 집 앞까지 어린이집 차량이 와 주기를 선택한다. 가뭄을 걱정하면서 PET병의 생수를 선택하며, 홍수에 침수피해를 받으면서 오밀조밀 몰려서 사는 도시를 선택한다. 스마트폰의 폐해를 알면서도 더 새로운 기능의 폰을 요구하는 스마트하지 못한 선택을 하고 있다. 지금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사실 10~20년 전에는 그냥 일상이었다. 지금의 불편함이란 어쩌면 위험을 포함하고 있는 편리함이 만들어 낸 가짜 허상일지도 모른다. 위험한 편리함과 안전한 불편함,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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