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대한 솔직함을 담은 마이클 로젠의 <내가 가장 슬플 때>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나경 전 꿈꾸는책방 점장

내가 가장 슬플때 마이클 로젠 지음 김기택 엮음 비룡소 펴냄

여행길에서 만난 친구가 읽어 보라며 그림책 한 권을 건넸다. 마이클 로젠이 글을 쓰고 블레이크가 그림을 그린 <내가 가장 슬플 때>. 한 장 한 장, 힘겹게 넘기던 나는 그만 오래도록 참았던 눈물을 봇물 터지듯 쏟아 냈고, 결국 그곳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숨겨 둔 내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그날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림책은 글작가 로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슬픈 일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이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고 어떻게 견뎌내는지를 로젠의 글과 가볍지 않은 블레이크의 그림으로 풀어낸다. 첫 장에 나오는 그림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얼굴이자 로젠의 얼굴이다. ‘슬퍼 보이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행복한 척하는’ 얼굴. 열 여덟 살이던 그의 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곁을 떠났다.

예고 없이 찾아온 아들의 죽음에 슬픔이 로젠을 뒤덮는다. 아주 아주 사랑했지만, 이제는 곁에 없는 아들을 생각할 때면 슬픔이 넘쳐 꼼짝할 수가 없다. 때론 울화도 치민다. 어느 날은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찾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쏟아 놓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날은 아무 말도 하기 싫어진다. 슬퍼서 미친 짓을 할 때도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슬픔은 이유 없이 로젠을 찾아온다. 이제 슬픔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가까운 이들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겪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슬픔의 크기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의 슬픔과 당신의 슬픔에 어찌 크고 작음이 있을까. 허나 갑자기 찾아 온 이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별이 가져오는 슬픔은 크기는 같더라도 분명 그 무게는 다를 것이다.

슬픔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작가는 이토록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슬픔의 무게를 조금씩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나만 슬픈 게 아님을,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슬픔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날마다 하나씩 자랑스러운 일, 즐거운 일을 시도해 보는 것. 그가 찾아낸 방법이다. 그렇다고 슬픔을 마냥 밀어내지는 않는다. 슬픔에 대한 글을 쓰고 아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미 마음속에 자리한 슬픔을 인정한다. 그리고 생일 축하 파티처럼 평범한 일상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지막 장, 촛불 하나 켜 놓고 그 앞에 세워 둔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로젠의 표정은 애써 행복한 척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저 담담하다. 슬픔을 부정하지도, 행복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힘들게 지우려 하지도 않는 모습이다. 그는 이제 슬픔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된 것일까?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허나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가끔 슬픈 표정을 짓게는 하겠지만 말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어른을 위한 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으면서 슬픔이 무엇인지, 슬플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모르는 아이,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없다.”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한 강연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몽실언니>처럼 슬픈 이야기 말고 밝고 희망찬 동화를 써 주셨으면 좋겠다는 참석자의 요청에 하신 답변이다. 이미 남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차고 넘친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어른이 되지 않도록, 슬픈 일을 겪은 사람이 왜 울기보다 화를 내고 때론 평소보다 더 크게 웃는지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해 봐도 좋겠다.

그리고 지금 슬픈 당신, 애써 슬픔을 부정하고 묻어 둔 당신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나면 쏟아 낸 눈물만큼 슬픔의 무게가 덜어질지도 모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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