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옥천군 안남면 사람들과 함께 만든 특별한 결혼식을 추억하며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망초대 꽃 핀 거 보니 순영씨 결혼식 생각나네. 이제 거의 일 년 다 됐지?” 며칠 전 동네 친한 언니가 망초대 이야기를 하며 인사를 건넨다. ‘아, 그렇구나. 벌써 일 년!’ 지난해 1월 결혼을 결심하고 안남에 집을 구하고 안남면 잔디밭에서 혼례잔치를 올리고...2016년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도 행복했던 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10년 전, 옥천신문사에 입사해 취재 차 처음 안남면을 찾았을 때부터 ‘언젠가 여기서 살게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2016년 6월4일 있었던 우리 부부 혼례 잔치 사진. 여느 결혼식 사진과는 사뭇 다르지만 나는 이 사진이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 부부가 아닌, 함께 한 분들 때문에.

안남이 우리를 받아주었다

그러던 2010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안남면 덕실마을에 귀농귀촌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마련되면서 상상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마을에 찾아와 ‘여기서 살고 싶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마을 어르신들이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시골 마을에 혼자 들어와 살 수 있겠느냐?’고 염려를 하시면서도 ‘마을에 젊은 사람이 들어온다니 우리가 오히려 고맙다’며 반겨주셨던 일은 항상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신문사 일이 바빠지면서 결국 일 년 만에 다시 읍으로 나와야했지만 이후로도 안남에 들를 때마다 ‘우리 마을 아가씨’라며 따뜻이 반겨주고 챙겨주셨던 덕실마을 어르신들.

사실 남편도 나만큼이나 안남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안남면 관련 각종 농업농촌 컨설팅을 해왔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운 세월을 주민처럼 안남에 드나들었기에 우리 두 사람이 결혼을 결심하고 평생의 보금자리를 어디에 마련할지 고민했을 때 선택은 당연히 안남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귀농귀촌 할 지역을 찾고 있는 분들을 종종 뵈면 ‘왜 안남을 선택했느냐?’란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면 나는 우리 부부가 안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안남이 우리를 받아주었다’란 말씀을 드리곤 한다. 주제넘은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사람이든 지역이든 좋은 인연을 만나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 부부가 안남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는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우리 부부를 만나게 해준 것도 안남,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해준 것도 안남이었기에 결혼식을 고민하면서도 단지 우리 둘과 가족들의 잔치가 아닌, 동네 분들에게 축복받고 함께 즐기는 잔치가 되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명칭도 결혼식이 아닌 ‘혼례 잔치’라 이름 붙였고 안남면 명소인 잔디광장에서 잔치를 열기로 했다. 그렇게 면 잔디광장에서 혼례잔치를 열겠다고 하니 거의 20년 만에 열리는 잔디광장 혼례라며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과 축하를 보내주셨다. 그리곤 혼례잔치를 준비하면서 ‘얼굴에 철판을 딱 깔고’ 동네 분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눈물과 웃음을 쏙 뺐던 안남 어린이들의 혼례 축하 공연 모습.

안남 사람들의 도움으로 치른 잔치

혼례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잔치 음식은 안남면 언니들께 부탁드렸는데 잔치국수부터 각종 전, 떡, 과일까지 500인분 넘는 음식을 정말 푸짐하고 정성스레 준비해주셨다. 그 덕에 잔치에 다녀간 분들에게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혼례 잔치 진행에도 면의 어른들이 나섰다. 사회는 안남면 주민자치위원장님이 맡아주셨고 우리 부부의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선포하는 데는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장님이 해주셨다.

잔치에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과 춤일 텐데, 내가 단원으로 활동해 온 안남면 둥실풍물단에서 잔치의 시작을 여는 길놀이와 난타 공연을 선사해주셨다. 또 하나, 두고두고 고마움을 갚아야 할 것 같은 안남면 아이들의 축하 공연! 결혼해서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를 잊지 말라고 ‘어머님은혜’를 다 같이 합창해 신랑 신부 눈물을 쏙 빼게 만들더니 이어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어찌나 귀엽고 예쁜 율동을 선보였던지! 아마 우리 부부보다 더 감격스런 축하 공연 선물을 받은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안남면 잔디광장에서 혼례를 올릴 새내기 부부가 머지않은 시기에 탄생했으면 좋겠다.

두 시간 여의 혼례 잔치를 치르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잔치 내내 자리를 지키고 함께 울고 웃으며 결혼을 축하해주신 안남 분들의 표정이 여전히 생생하다. 잊지 못할 혼례 잔치를 치를 수 있게 도와주시던 분들에게 지면을 빌려서나마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아까 글 서두에 망초대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잔치 전날 친한 동생과 함께 낫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망초대 꽃을 베어 직접 잔디밭을 꾸몄다.

함께 한 동생의 아이디어였는데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뻤다고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셨다. 그래서 올해 역시 피어난 망초대 꽃을 보며 우리 부부를 떠올린 분들이 많으셨던 것 같다. 요즘 드는 바람이 있다면 안남면 잔디광장에서 혼례 잔치를 열고 안남에서 함께 살아갈 부부가 얼른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때는 내가 좋은 동네 언니가 되어 혼례잔치 음식도 함께 준비하고 망초대 꽃도 꺾어 그렇게 또 잔디광장을 꾸며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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