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먹고, 김치 담그고, 일기 쓰고, 기타 친다
인생은 혼자 떠나는 여행…생각을 가지치기하며 즐겨

안남영의 赤道일기(13)
전 HCN충북방송 대표

혼자 사는 법이 유행인가 보다. ‘혼밥’이니 ‘혼술’에다 ‘혼텔’이란 말도 나왔다는데, 혼자 사는 것을 일컫는 시쳇말이 딱히 아직 없다는 게 궁금하다. 독거가 있긴 하지만 느낌은 그게 아니다. 자진 아니면 페이소스가 빠져 있기에 말이다. 소위 욜로( YOLO, you only live once)족이 살아가는 방법을 ‘○○법’ 또는 ‘○○기’식으로 명명했으면 좋겠는데, 그 말이 안 떠오른다. 한때 유행했던 ‘홀로서기’도 뭔가 어색하다.

어쨌든 요즘 나는 혼자 사는 법을 맹렬히 터득해 가는 중이다. 이국땅에서 보낸 세월이 어느덧 1년 반이나 지났다. 적응기는 오래 전에 넘었어도 ‘○○법’ 완성은 요원해 보인다. 다만 각오가 돼 있던 만큼 힘든 줄 모르고, 아픈 데 없이 지내온 것이 대견하다. 감사할 따름이다.
 

깍두기는 작년에 해봤지만 인터넷도 안 보고 지난 3월 처음으로 혼자서 김치를 담가봤다. 여기저기 사진을 올려 보니 자립 축하 메시지가 답지했다.

이른바 ‘이방독거’(異邦獨居). 그저 즐기려고 애를 썼다. 모기·지렁이(같은 것)·곰팡이·도마뱀·쥐·길고양이, 더위, 소음, 매연, 정전, 비위생, 저품질, 무질서(우리 기준) 등 꼽아보면 짜증거리도 많다. 하지만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웃어넘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벽과 바닥의 곰팡이나 도마뱀 똥을 닦아내는 일은 “언제 또 해 보랴” 식이면 그만이다. 쥐덫 치우는 일은 성과가 보이므로 쾌재를 부를 일이다. 한국에선 얄밉던 비도 더위 탓에 고맙게 여기니 반가워졌다. 목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감사 주문과 함께 실감 중이다.

빨래, 청소하며 어머니와 아내 생각

이곳 일상은 이렇다. 일어나자마자 사과를 깎아 먹는다. 그리고 식사를 한다. 월~목 평일엔 8시쯤 출근, 4시 전 퇴근이다.―이 나라는 3시 넘으면 보통 러시아워가 된다. 귀가 후엔 청소하고 운동으로 땀을 낸다. 이어 샤워 후 현지어 공부 혹은 낮잠으로 한두 시간 때운 뒤 저녁을 차려 먹는다. KBS월드 실시간 종합뉴스를 시청하고 나서 자정까지 독서나 인터넷, 단어공부로 시간 보낸다.

반공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엔 수업이 없어 안 나갈 때가 많다―여기 교사들은 출퇴근이 수업에 따라 자유롭다. 주말은 가끔 현지인들이나 동료 단원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혼자 지낸다. 회화 공부에 도움 될까 해서 현지어 자막이 나오는 한국드라마를 보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여가는 많아도 선용이 어렵다. 유원지라고 갈 데도 별로 없고, 있다 한들 교통수단이 문제다. 오락시설도 매력은 별로다. 담배연기 가득하고 어둡기까지, 포켓볼 당구장 얘기다. 언어문제가 해결 안 되는 영화관, 한국노래가 많지 않은 노래방 등 모두 내겐 시답잖다. 그래도 영화관은 혼자서 두 번 가봤다. 그것도 홀로 지내는 법 개척의 기록이다.
 

혼밥에 이골이 났지만 가끔 동료 단원들과 마주한 식탁은 괜히 풍요롭다. 중국계 식당에서는 몰래 맥주를 파는데, 종이로 겉을 가려 내 놓는다.

혼밥은 가장 흔한 일상이 됐다. 그 횟수가 주 평균 19회쯤 된다. 점심은 주로 혼자 사 먹는데, 동료 교사들이 금식 연습이다 뭐다 하여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서글플 이유도 없다. 끼니때가 늘 기다려지고, 먹지 않던 라면이나 식빵을 즐기게 된 게 신기하다. 된장찌개, 카레, 쇠고기뭇국도 만들어 보았고 김치·깍두기 담그기 도전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나니 스스로 대견해졌다. 요리에 젬병인데 간 맞추기를 어렵지 않게 해내는 걸 보고 자못 놀랄 때도 있다.

그렇기로서니 한국에서 이따금 보내오거나 자카르타에서 사온 밑반찬이 없다면 어찌 혼밥에 엄두를 낼까? 임지 파견 첫 달, 김치 없이 살았을 때의 ‘고행’은 이제 추억이 되어 있다. 식사 문제가 해결되니 다른 문제는 모두 사소해 보였다. 장보는 일도 익숙해졌다. 처음엔 대형 마트만 이용했으나 이제 근처 재래시장 나들이도 어줍지 않다.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이란 게 직접 해 보니 참 궂은일임을 알겠다. 그때마다 9남매를 뒷바라지며 농사일까지 하시느라 굳은살이 박이고 갈라졌던 어머니의 거친 손과 아내의 주부습진이 이따금 어른거린다. 쓰레기 배출할 때면 살림 유단자가 된 기분이다. 여유가 생긴 탓이렷다.

혼살이, 홑살이, 홀살이 어때?

참 싫은 게 운동이었는데 이걸 습관화할 줄이야. 걷고, 자주 달리고도 싶지만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다. 그래서 맨손 체조, 스트레칭, 팔굽혀펴기 등으로 체력 단련을 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건 아니지만 어디선가 보았던 기체조를 흉내 내며 스스로 많은 동작을 창작해 보았다. 앞차기 연습도 한다. 태권 동작 요구가 가끔 있어서다. 예전 같진 않지만 이제 키 높이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10번씩 찰 수 있게 됐다.

작년 말 기타를 샀다. 코드는 알아도 한곡을 제대로 칠 줄 모르기에 독한 다짐이 필요했다. 집에서 보내준 책으로 틈나는 대로 연습해 보지만 좀처럼 늘지가 않는다. 드럼 배우러 동네 학원을 노크했다가 우리 돈으로 월 8만 원 정도를 요구해 포기했다. 너무 비싸서다. 방음이 부실해도 소음에 관대한 문화에 기대 목청껏 노래해 본 적도 많다.

그런가 하면, 노느니 마당 쓴다고 비트박스를 연습해 보았다.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즐기기엔 ‘딱’인데, 방법을 몰라 인터넷을 뒤져 보기도 했다. 주제도 모르고 또 의지도 빈약한 터에 시작한 도전이 맹랑했지만, 경지 높은 비트박스 동영상을 본 뒤엔 마치 새 세상에 눈을 뜬 것 같은 희열도 느꼈다. 이게 다 혼자 사는 재미가 아닌가. 내친 김에 창이나 웅변도 도전해 보고 싶은데, 정열이 안 따라 준다. 치매예방에 도움 되려나 싶어 시작한 왼손 글씨쓰기는 제법 속도를 내 가는 중이다.
 

동네 근처에서 매일 아침 열리는 장터에 가는 일도 이제 쑥스럽지 않다.

홀로 지내며 일기를 쓰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는 것도 보람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싫어했던 일기. 하지만 지금은 반성과 사색, 그리고 글쓰기가 매일 밤 습관이 됐다. 친구들에게 무슨 도량의 은사(隱士)를 자처한 터라 그런 시간이 의무처럼 느껴지지만 참 소중하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그러니 ‘고독’을 각오하거나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노년고독이 됐든, 아니면 ‘관계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 의도가 됐든―꼭 재미나 삶의 질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혼자 지내는 법에는 인내와 현실적인 지혜가 꽤 필요할 것이다. 지금 그걸 연습 중이거니와 나로선 행운이라 말하고 싶다.

베스트셀러 ‘혼자 사는 즐거움’에 나오는 ‘내 마음의 분갈이’란 말이 요즘 마음에 와 닿는다. 얽히고설킨 생각의 뿌리를 분갈이하고 가지치기를 위한 의도적 홀로서기 같은 것이야말로 나의 독거생활을 미화시키기 딱 좋은 말 같다. 사족으로 ‘○○기’를 위한 신조어를 제안해 본다. 이름하야 ‘혼살이’. 조어법 상 ‘혼’을 접두사로 쓸 수 없다면 ‘홑살이’나 ‘홀살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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