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수제기타 장인 김희홍씨의 ‘알마기타’ 공방
해외 유명연주자 고객 매년 초대해 정기연주회 화제

기타는 현대인들에게 음악을 가장 쉽고 가깝게 만들어 주는 악기로 통한다. 한국에서도 4050세대는 이른바 ‘통기타’ 세대로 청춘의 한때를 추억하게 한다. 70~80년대 통기타 바람이 불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저가 공장식 기타 생산국이 됐다. 세고비아, 성음 등등 쟁쟁한 기타 제조회사들이 90년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중국 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고 수년전 ‘콜트’사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났다.
 

전국 기타 애호가들의 명소가 된 괴산 ‘알마기타’ 공방 김희홍 장인.

공장식 기타 제조사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하나둘 수제기타 공방이 들어섰다. 저가 ‘공장제품’이 막을 내리고 고가 ‘장인작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경기도 하남·파주·이천에 터잡은 공방이 많았고 인정받는 전문 제작자는 국내 20여명에 이른다. 괴산 소수면 입암리 ‘알마기타’도 애호가들이 손꼽는 수제기타 공방이다. 지난 2008년 이천에서 이곳으로 공방을 옮긴 김희홍씨(55)는 해외에도 알려진 국제적 장인이다.

알마기타 홈페이지(www.almaguitar.com)에 소개된 악기 사용 해외 연주자 면면을 보면 영국, 이태리, 독일, 중국, 태국, 일본, 브라질, 베네주엘라, 러시아까지 전 세계적이다. 이들 가운데 5~6명은 한국을 방문해 괴산 공방에 머물며 국내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브라질 출신의 파브리시오 마토스(FABRICIO MATTOS)를 초대해 괴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전문 연주자들은 악기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직접 제작자를 만나고 제작과정을 보고 싶어 한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음악학원(우리나라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유사) 기타 전공 교수를 통해 판매한 것이 해외 진출의 시작이었다. 그때 학생이었던 수멍과 왕 야멍은 지금은 국제적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공방에 머물며 한국 문화도 체험하고 지방의 작은 음악회에서 관객들과 만나기도 한다. 내 기타도 알리고 한국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해마다 주선하고 있다”
 

자부담 무료연주회 전국서 몰려

김씨의 해외연주자 초대 공연은 자비 부담으로 무료로 진행한다. 클래식 기타의 저변이 넓지 않다보니 유료 공연으로 객석을 채우기 여의치않아 과감하게 ‘문턱없는’ 공연을 만들었다. “언젠가 자발적 관람료식으로 후원금 모금함을 놓았더니 티켓발매와 별차이 없는 돈이 모였다. 이후로는 아예 무료공연으로 기획했는데 최상의 경우엔 수지균형점을 맞췄고 최악의 경우엔 1700만원까지 자부담한 적도 있다. 기타 제작을 통해 번 돈을 기타 예술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면 서운할 건 전혀 없다”

기타 제작의 장인이 된 김씨와 기타의 첫 만남은 남들처럼 청소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 중학생 ‘까까머리’가 기타 소리에 흠뻑 빠졌다가 결국 호기심으로 19살때 기타를 해체해 봤다. 내용을 보니 별것 아닌 것 같아 시작했지만 물어볼 곳도 참고할 만한 서적도 변변치 않았다. 결국 국내 클래식 기타 제작자를 찾아다니고 스페인, 미국 등 해외 유명공방으로 날아가 제작 과정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수제기타는 한 사람이 모든 공정을 하다보니 한달에 만들 수 있는 수량이 1~2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무명의 제작자가 만든 기타를 제값받고 팔기도 힘들었다. 평생을 걸고 시작한 기타 제작의 외길이 위기를 맞았다.

“세상 일이 의지와 열정만으로 되진 않았다. 생활인으로 생계 자체를 포기할 수 없다보니 한 7~8년 외도를 하게 됐다. 하루 일당을 받고 공사현장을 다녔는데 손재주가 있다보니 실내건축 일을 하게 됐다. 낮에는 출근해 현장 일을 하고 밤에만 기타를 만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러다간 나만의 기타를 영영 못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전업으로 매달렸다. 이천공방에서 한참 신나게 일을 하는데 인근에 고물상이 생기면서 소음피해 등으로 살기가 힘들었다. 결국 이전을 결심하고 집사람과 전국을 찾아헤매다 이곳 소수면에 터잡게 됐다. 누구 소개나 연고가 있는 건 아니었고, 뒷산도 푸근하고 앞쪽에 도로옹벽이 가리고 있어 작업환경이 좋다고 여겼다”
 

괴산국제기타페스티벌도 가능해

오라는 사람도 없는데 제 발로 찾아온 기타 장인 김씨는 괴산군의 행운(?)이기도 하다. 김씨가 있었기 때문에 클래식기타 괴산동호회 ‘알마기타’가 생겼고 해외 연주자들의 정기 연주회도 가능했다. 김씨의 이름 석자를 알고 있는 웬만한 전국의 기타 동호인들은 ‘알마기타’하면 곧바로 괴산군을 떠올린다. 해외에서 온 연주자들은 한결같이 김씨의 안내로 괴산 자연관광지를 둘러본다.

그런데, 지역의 귀인인 김씨가 최근 이천에서 겪었던 환경권 악몽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공방과 등을 맞대고 있는 공장에서 화학물질 용기를 세척하면서 악취가 심하다. 수년간 지내면서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염된 폐수까지 배출해 집앞 도랑의 물고기도 죽어가고 있다. 손님들과 집앞 베란다에서 고기구워 먹던 재미도 이젠 엄두를 못낸다” 오는 5월 내한 예정인 러시아 여성 연주자 에카테리나 공방방문을 앞두고 걱정이 크다.

김씨는 해외 주요 기타콩쿨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Asia 국제기타콩쿨, Thailand 국제기타콩쿨, Frauchi 국제기타콩쿨, Shenyang 국제기타콩쿨 등이다. 기타 제작 능력 뿐만 아니라 그의 연주능력도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에서는 성남시에 이어 대전시가 매년 국제기타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그러다보니 김씨는 외부에 내세울만한 예술문화 행사가 없는 괴산군에서 기타페스티벌 개최를 꿈꾸고 있다. “이름있는 국제콩쿨의 경우 대상 수상금이 1만달러(1천만원 내외) 정도다. 괴산고추축제 예산의 일부만 있어도 국제기타페스티벌이 가능하다. 괴산의 아름다고 청정한 자연 관광자원은 전국 기타인들의 축제를 열기에 적합하다”

기타 장인 김씨는 자신의 기술을 스스럼없이 공유하는 것도 남다르다. 공방 제작과정을 동영상에 담아 공개하는가 하면 기타제작마스터스쿨링을 개설해 후진양성에 힘쏟고 있다. 지명도가 높은 중국에서도 2011년 광조우, 2015년 천진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한 바 있다.

또한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도 건강한 직업의식과 인생관에 대한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괴산군교육청은 관내 학생들의 직업체험 현장교육 대상지로 공방과 협약했다. 교사들간에 입소문이 나면서 청주에서도 초청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지난 15일 청주 주성고등학교 ‘명인과 함께 하는 인문학 특강’ 1호 강사로 초청돼 700명의 학생들에게 연주와 함께 특강을 들려줬다. 학생들의 호응이 뜨거워 오는 5월 러시아 연주자 에카테리나의 주성고 특별공연도 약속했다는 것.
 

괴산군 ‘알마기타동호회’ 회원들을 매주 직접 지도하기도 한다.

알마기타는 주문자의 취향과 터치, 손의 크기 등을 고려하여 주문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전 과정을 한사람이 도맡다 보니 1년 동안 제작되는 기타는 20대 남짓이다. 주문이 밀릴때는 반년이상 기다려야 하고 기본이 두달 이상은 걸린다. 김씨는 유명 연주자에게 악기를 스폰서(?)하는 관행도 거부하고 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제작자와 공연자 간에 공생관계로 스폰을 받은 경우가 있다. 유명 연주자가 연주해 악기값이 오르고 수입이 커지면 그만큼 다시 사례를 하는 식이다.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당한 값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고집이 신뢰감으로 쌓여 김씨와 인연을 맺은 연주자들은 개런티와 상관없이 국내 공연에 응해준다.

태국 연주자인 누타부 라타나칸은 자신의 앨범에 직접 작곡한 ‘The alma’곡을 삽입해 김씨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기타 제작자가 사랑하는 연주자로부터 헌정곡을 받은 것 이상으로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다보면 우리 알마기타도 언젠가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같은 영원한 명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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