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최초의 열린 도서관, 스웨덴 스톡홀름시립도서관

청주시의원을 그만두고 스웨덴 책읽기에 빠져있을 때,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에서 북유럽도서관을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전국에서 열여섯 명의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을 안내하여 북유럽의 도서관을 돌아보는 계획이었다. 이거야말로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에서 도서관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있다. 시키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책을 같이 돌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민간도서관을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말이었다. 그런 활동을 하던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서로 돕기 위하여 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 협의회가 지금은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로 발전한 것이다. 되돌아보면 우리나라의 작은도서관 운동도 아래로부터 싹튼 것이다. 그런 운동을 주도해온 사람들에게 민중도서관의 뿌리를 가진 북유럽의 도서관을 안내할 기회가 생겼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서가 위에서 본 모습

판테온 신전을 닮은 중앙홀

스톡홀름시립도서관이 민중도서관의 토대위에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밖으로 나와 건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스베아베겐 거리에 서면 도서관은 팔을 활짝 벌리고 반기는 듯 서 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도서관이다.

건축가 아스프룬트는 건물 중앙에 원형의 홀을 만들고, 그곳에 서가를 배치하기로 하였다. 기록에는 아스프룬트가 이 도서관 설계를 위해 미국 뉴욕과 보스톤의 도서관을 둘러보았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미국에 가는 도중 런던에서 대영박물관을 보았던 것 같다. 원형의 홀과 서가가 런던의 대영박물관 중앙홀에 있는 원형의 서가를 꼭 빼닮았다. 서가뿐 아니라, 위쪽에 넓은 창을 내어 자연채광을 하고 있는 점도 그렇다. 뒤에 나는 로마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판테온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대한 원형 건물, 자연채광을 위한 천정의 구멍. 스톡홀름도서관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고대 로마의 건축물인 판테온까지 이어질 것 같았다.

아스프룬트는 처음에는 천정을 돔구조로 스케치했다. 아스프룬트는 도서관의 위상을 성당이나 궁의 수준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건축을 하면서 한번 비틀었다. 돔구조를 버리고, 실린더 형태를 취한 것이다. 이것도 맘에 든다. 돔은 아무래도 고루하다. 돔을 열어 중세를 뒤덮은 권위와 엄숙함을 깨뜨리고, 원통으로 개방감과 평등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전국 각지에서 작은도서관 운동을 주도해온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지금은 한국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주요 활동가들과 함께.

북유럽 최초의 개방형 서가

더 획기적인 것은 둥근 벽을 따라 열린 서가를 만든 것이다. 중세 이후 수도원, 교구를 중심으로 이어져온 도서관은 이용 대상이 제한되고, 관리인을 거쳐야 했다. 자료가 귀했고, 신분제 사회의 문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서가를 개방해서 누구나 관리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책을 살펴보고 고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책과 사람을 가로막는 벽을 없애고, 책을 중시하는 도서관에서 사람을 더 중시하는 도서관으로 나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중을 위한 도서관으로 만들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도서관이 개관했을 때 스톡홀름 시민들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흥이 벅차오른다.

서가는 3개 층으로 되어 있고, 서가 사이에 숨겨진 계단과 통로가 있다. 3개 층의 서가가 연결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며 서가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이다. 중간에 영어책도 있지만 스웨덴어가 대부분이라, 무슨 내용의 책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책으로 둘러싸여 책의 숲, 책의 바다를 지나는 느낌만으로도 황홀하다. 서가 뒤편에는 또 다른 원통형으로 이어져 있다. 통로가 되기도 하고, 책을 관리하고 수서하는 공간, 사서들을 위한 공간이 오밀조밀하게 숨겨져 있다.
 

이야기극장

시대를 앞선 어린이도서관

도서관 입구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열람실이 있다. 1920년대에 도서관을 만들면서 이런 공간을 입구에 따로 만들었다는 것도 놀랍다. 당시는 스웨덴에서 복지에 관한 논의가 거론되기도 전이다. 사민당의 새로운 당수가 된 페르 한손이 의회 연설에서 ‘국민의집’을 처음 주창한 해가 1928년이다. 그만큼 아스프룬트의 설계는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

어린이열람실 안쪽에는 이야기극장이 꾸며져 있다. 무대에는 안데르센의 동화인 ‘올레 루코이에’의 내용을 그려놓았다.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책을 읽어줄 어른이 앉을 수 있도록 커다랗게 만들어진 의자도 있는데, 아스프룬트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오래되고 보니 현대에 와서는 문제도 많다. 우선 공간이 좁고, 서가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장애인의 이용을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동안 건물 리모델링에 관한 논의를 계속 해왔다. 그렇지만 기념비적인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야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필요한 공간은 다시 짓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런 결정인가. 논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랜 논의 끝에 바람직한 합의를 이끌어내온 것이 오늘날 복지국가 스웨덴의 모습이다.

천천히 열람실을 돌아본다. 어린이열람실에는 갓난아기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 모임이 있다. 청소년실에는 청소년들이 토론을 하는 듯 진지한 분위기를 하고 둘러앉아 있다. 원통형 중앙홀 옆쪽으로는 일반열람실이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소리가 민망하고, 사람들과 눈길을 마주칠 때마다 고개가 숙여진다. 모두가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도서관은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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