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노 칼럼 ‘吐’/ 충주·음성담당 부장

▲ 윤호노 충주·음성담당 부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4일 생가인 음성군과 본가가 있는 충주시를 찾았다. 충주 환영대회장에는 반 전 총장을 보려는 시민 2000여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였고, 빈자리도 눈에 띄었다. 2006년 10월 유엔사무총장 당선 뒤 환영대회를 열었을 때 열렬하게 환대받은 것과 대비된다. 떠나기 전과 불과 1년여 전만해도 그는 살아 있는 위인 대접을 받았다. 충주와 음성 두 자치단체는 앞다퉈 반기문 브랜드 사업을 벌였고,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거나 진행형이다.

그런데 1년여 사이 우상화 논란이 일면서 자치단체 사업이 주춤거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의 대권 행보와 무관치 않다. 그가 유엔사무총장 재직 시 대선과 선긋기를 정확히 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보다 더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모호한 정체성 및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태도도 지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데 장애가 됐다.

반 전 총장은 유엔사무총장 재직 기간 중 방한했을 당시 주로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세력이나 과거 실세였던 충청의 맹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과 접촉했다. 야권 어디에도 접촉의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 중에는 8번을 만났느니 10번을 만났느니 할 만큼 잦은 만남을 가지면서도 자신을 유엔사무총장으로 만들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거의 찾지 않았다. 심지어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직후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가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는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의 신년 전화 통화에서도 위안부 합의를 “올바른 용단”이라며 “역사가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다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반 전 총장은 180도 입장을 바꿨다. 그는 지난 12일 귀국길 인터뷰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궁극적인 완벽한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취지다.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약 104억 원)이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피해 상징 소녀상 철거가 조건이라면 차라리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도 했다.

반 전 총장은 과거에도 상대 반응이나 주변 상황에 따라 기존 입장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참여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4년 국정감사에서 “전쟁시에 성적노예 행위를 강제한 것은 국제법에 반하는 중대한 불법행위”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가 이듬해 3월 대일 압박책을 논의한 당정협의회에서는 “위안부 책임문제를 법리적으로 따지면 한국이 말려들 수 있다. 법리적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후퇴했다.‘기름장어’라 불리는 별명답게 상황에 따라 말 바꾸기를 한다는 논란이 이는 이유다.

반 전 총장은 나라를 위해 자신이 꼭 대권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지지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권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인들 가슴에 영원한 유엔사무총장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쯤 과거 위인이 아닌 현대 살아 있는 위인내지 존경받는 사람을 갖게 될까. 그 자격을 갖춘 자가 욕심과 사심을 버려야 가능할 것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