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문학의 요람을 찾아서’ 연재를 마치며

충북 근대문학의 요람을 찾아서(37-에필로그)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들이를 시작할 때는 봄이었는데 어느새 한겨울이 됐습니다. 돌아보면 충북의 남쪽 추풍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 길이었습니다. 조령과 죽령으로 이어지는 우리 땅의 큰 산줄기에 등을 기대고 금강과 남한강 유역의 문학유적을 주마간산으로 둘러본 셈입니다.
 

▲ 청주시 율량동 율량2지구에 조성된 ‘마로니에 시 공원’ 전경. 시를 테마로 한 공원이며, 충북 출신 일곱 시인의 시비를 세워 놓았다.

길을 나설 때 묵직했던 두려움은 다행히 날이 갈수록 줄었습니다만, 당신이 혼잣말인 듯 건넸던 말처럼 곧 처음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오감(五感)을 열어 보고 듣고 만져보고 해야 성취가 볼 만할 것인데 회가 거듭될수록 자료에 의지하려는 나를 발견하고 혀를 차곤 했습니다. 관성이 생긴 탓이지요. 잘 모르는 것도 다 아는 듯 지레짐작으로 단정해 버린 것들이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딴에는 우리 고장 선배 작가들에 대한 부채감을 운운하며 겉치레를 하였는데, 그들에게 오히려 누를 끼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필요한 일이지만 부질없는 짓이라는 말을 끝내 참아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돌에 새긴다는 건 잊지 않겠다는 뜻

권구현, 정지용, 오장환, 신채호, 신동문, 민병산, 홍명희, 조명희, 권태응, 홍구범……. 그들의 이름을 다시 되뇌어 봅니다. 김기진, 이무영처럼 아픈 이름도 불러 봅니다. 그들을 만나러 나가는 발걸음은 설렘으로 들떴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고 쓸쓸했습니다. 길

에 나선 사람의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일제 강점과 광복, 분단과 전쟁, 그 어두운 역사의 격랑 속에서 대부분 작가들은 고향을 떠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타관으로 해외로 떠돌며 때때로 그리워했던 고향은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속절없이 붕괴됐습니다. 그들의 생가 역시 자취가 없이 되었으니, 마을이 변하는 마당에 집이 성할 리 없는 까닭입니다.

지역의 문학단체나 자치단체의 노력으로 복원이라고 해놓은 곳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집들이 대동소이 초가삼간 일색이니 그저 관광용 세트일 뿐입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들이닥쳐 현수막을 앞세우고 단체사진을 찍을 때 배경이 되어주는 것으로 기능을 다하는 건데요.

그나마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배부른 자의 투정이라고 탓하시렵니까? 아닌 게 아니라 대개는 생가는커녕 집터도 묘연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마을에 기억하는 이가 없고 지역의 관심이 닿지 않으니 마침내는 세월 속에 떠내려가 잊힐 것입니다.

땅은 사람을 내고 사람은 그 땅의 명성을 높인다고 했던가요? ‘먹고사는 일’을 둘도 없는 가치로 알고 달려온 우리 사회에서 그런 옛사람들의 믿음은 마른 낙엽같이 가볍고 쓸데없는 것입니다. 시인이든 소설가든, 그게 뭐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길 리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생가 유적이 그런 형편이다 보니 자연스레 시비(詩碑)나 문학비를 찾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비라도 있어서 그들이 ‘존재했던’ 것을 전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여간 기특하고 고마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돌에 새긴다는 것은/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당신을 잊지 않으려고 당신의 말을 새기고/그런 나를 잊지 않으려고 내 이름을 새깁니다.//새긴다는 것은/마음을 깎는 일입니다.”― 우연히 전각(篆刻) 공부를 하게 된 후에 느낌과 마음가짐을 술회한 글입니다.

시비가 반가운 것은 그런 마음이고, 돌을 깎아 뭔가를 새긴다는 것은 그만큼 상징적인 일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제천시 송학면, 의림지 산림욕장에 조성된 한방생태숲 공원. 지역 문인들의 시비를 곳곳에 건립해 놓았다.

대량생산한 시비는 시비가 아니다

그렇다고 만나는 시비마다 모두 기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많아서 뽑아서 땅에 묻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착잡했던 날이 숱했습니다. 비록 사회적 합의는 없더라도 가문의 문사(文士)를 기리고자 세운 시비 중에도 문중의 정성과 염치가 엿보이는 것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치켜세우고 우상화 하느라고 치장하여 놓은 비석들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치단체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문학공원을 조성하고 우후죽순처럼 세워놓은 시비들을 보는 것도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량생산한 시비는 이미 시비도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저 돈을 썼다는 영수증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를 즐기고 소비하는 사회도 아닌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공급하는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서 한참 활동 중인 사람의 시비를 세우는 것도 탐탁지가 않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사회적인 평가가 적은 작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널리 호평을 받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섣부른 일이라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이를테면, 청주 율량동 율량2지구에 ‘마로니에 시 공원’이 조성돼 있는데요, 충북 출신 일곱 시인의 시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모두 생존해 있는 작가들이며, 시비 제막식 날 기사문을 빌리면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들’(2014년 6월 26일치 연합뉴스)입니다.

어떤 합의를 거쳐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원 내 표석에 따르면 청주시가 계획하고 LH충북지역본부에서 시공하고 D일보사가 관리를 맡았습니다. 자치단체가 이런 사업을 추진한 것이나 관리를 언론사에 맡겼다는 게 아리송했는데, 시비 중 하나가 신문사 관계자의 작품인 걸 확인하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제천 의림지 산림욕장에 조성된 ‘한방생태숲 공원’에도 꽤 여러 개의 시비가 건립돼 있습니다. 지역 작가의 작품을 새긴 것으로 보이는데, 과문한 탓인지 대부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입니다. 작가·작품이 선정된 기준이나 자격 유무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세우는 사람 맘이니까요. 다만 혈세로 만들어진 예산을 타다가 비석을 남발하는 세태를 염려할 뿐입니다.

문학작품을 돌에 새겨 세우는 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돈이 아니라 뜻으로 세운 것이라면, 진정 후세에 길이 전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글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것이라면 말입니다.

돌에 새겨야 할 작품은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돌에 새긴 것은 오래 갑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길이길이 광영일 수도 있지만 두고두고 욕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고 경계해야 할 줄 압니다. 그것이 여름과 가을 두 철을 길에 나가 다니며 배운 한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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