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일로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을 다녀오는 나는 그때마다 답답함을 금치 못합니다.
버스가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 톨게이트를 지나 가로수 터널을 들어서면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도로양편에 늘어선 아름다운 가로수들이 일견 자랑스럽고 청주시민이라는데 대한 자부심마저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기분은 청주의 관문인 강서 소재지에 들어서면서 순식간에 깨져 버리고 맙니다. 파출소 건너편에 요란스럽게 장식해놓은 의류상점의 울긋불긋 혼란스러운 현수막들과 유령 같은 마네킹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조금전의 좋았던 기분이 확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청주를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그처럼 볼썽사나운 첫 인상에 혐오감과 함께 눈살을 찌푸릴 것 이 틀림없습니다.
현수막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 청주의 어지러운 간판공해는 이미 도를 넘어서지 않았나 싶습니다. 간선도로는 간선도로대로, 이면도로는 이면도로대로 어디 한군데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건물 대부분이 형형 색색 온갖 모양의 간판으로 뒤덮고 있는 어지러운 도시 풍경을 보노라면 이 도시가 간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학합격자들의 이름이 빽빽한 수십 개 현수막들로 즐비한 학원 빌딩들, 평면간판에 돌출간판도 모자라 입 간판에 유리창에까지 닥지닥지 메뉴를 써 붙인 수많은 음식점들, 원색들로 도배된 수많은 상점들의 어지러운 간판들, 보행마저 불편하게 하는 인도의 입 간판들, 거기다 의약분업이후 경쟁이나 하듯 요란하게 바뀐 의원들과 약국들의 현란한 간판들. 어디 그 뿐인가. 최근에는 관공서들마저 약속이나 하듯 현수막에 네온사인마저 마구 건물에 붙여대 ‘광고공해’에 일조를 하고 있으니 더 할말은 없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수많은 간판들이 규정에 어긋난 불법간판이란 점입니다. 모든 업주들과 간판업자들이 법을 비웃으며 앞다퉈 ‘더 크게’ ‘더 많이’ ‘더 튀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경이니 행정력으로 그것을 단속하기란 이미 한계를 넘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단체장들이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하리라는 것도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에 말입니다.
간판은 도시의 얼굴입니다. 간판은 도시 문화의 척도입니다. 간판은 곧 그 도시의 문화를 나타냅니다. 문화란 무엇입니까? 시민의 눈 높이요, 의식수준입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어느 도시건 도시의 색이 있습니다. 파리에는 파리의 색조가 있고 뉴욕에는 뉴욕의 색조가 있습니다. 그곳의 간판들은 도시의 전체적인 색조에 맞춰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도시의 고유색은커녕 울긋불긋 원색으로 뒤범벅된 조잡한 간판들이 온통 도시전체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제도시인 서울이나 다른 지방도시나 예외가 없이 모두 똑 같습니다.
너나없이 튀는 간판으로 경쟁을 벌이다 보면 도시 미관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기 마련입니다. 이제라도 당국은 시민들과 힘을 합쳐 불법간판, 혐오간판과의 ‘전쟁’이라도 벌여 깨끗한 거리, 아름다운 도시를 가꾸는데 나서야 합니다.
무슨무슨 비엔날레, 무슨무슨 엑스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분한 행정 속에서 쾌적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가꾸는 일이 그 보다 시급하다고 나는 봅니다. 그럴 때 시민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또한 표로 돌려 줄 것입니다.
그 옛날 온 도시가 공원이나 다름없던 청주가 아니었습니까?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기만 하던 청주, 그 청주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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