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문학과 사회>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5년만에 신혼여행> 등 소개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거대 담론이 아닌 사소한 일상이 중요해졌습니다. 출간되는 모든 도서가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성실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익숙해진 시장의 관습과 타성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신간 도서를 관통하는 뚜렷한 맥락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살펴볼 만한 대상을 정리하는 일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목록을 마련하고 나서도 그 안에 흐르는 하나의 맥락을 찾아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책마다 변화의 징후를 포착하는 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출간 된 지 한두 달 이내의 신간도서 안에서 변화의 추이를 가늠해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다행히 이달의 신간 브리핑의 실마리는 계간지 <문학과 사회>를 통해서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널리 알려졌듯 <문학과 사회>는 우리 사회의 문화 담론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계간지로서 지형 내에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번 혁신호 특집은 ‘세대론’을 조명했습니다. ‘세대론’을 말하는 다양한 이야기 중에 ‘세대’ 구분 자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세대’에 대한 구분이 기성세대의 프레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였습니다.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담론과 프레임 안에서 실수로 만들어진 ‘결핍’의 세대가 아닌 스스로 판단하고 모색하며 진화 중인 세대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바라보니 그 생기발랄함이 부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상의 변화와 혁명을 주도하겠다는 당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거대 담론을 거부하고 나름의 저항 방식을 만들어가는 젊음이 반가웠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사소한 일상’이라는 생각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승효상의 신작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를 통해서 였습니다. 승효상의 책 외에도 장강명의 <5년 만에 신혼여행>, 그리고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저술한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이 담론이 아닌 일상의 사소한 것들 속에서 세상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골목들이 생긴다

일찍이 <빈자의 미학>으로 건축과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분명히 밝힌 건축가 승효상은 신작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단일 건축이나 기념비가 갖는 상징적 가치보다는 그 주변에 담겨서 면면히 내려오는 일상의 이야기가 더욱 가치 있고, 시설물이나 건축물의 외형에 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더 중요하며, 도시와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속되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며 도시에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디테일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의 광장에서 우상과 같던 담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수없이 많은 골목이 생겨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시의 생기가 돌아오겠다 싶었습니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쓴 장강명은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보여줬습니다. 메타내러티브(거대담론)로 중심 뼈대를 구성하고 자잘한 일상을 맞추어가는 담론 중심의 글쓰기 방식을 벗고 사소한 것들을 늘어놓고 일관되고 의미 있는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아예 분석하기조차 사소해 보이는 부스러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멋대로 우리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도저히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이라도, 그 상황은 그 사람에게 ‘진정한’자기 자리일지도 모른다”며 단편적인 것들 나름의 의미를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나아가 이를 재단하고 판단하려는 우리의 굳어진 잣대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가 양손에 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올바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본 올바름이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추적한 다음소프트 팀은 <2017 트렌드 노트>라는 책에서 2017년을 여는 힌트 하나로 “마케팅이든 커뮤니케이션이든, 모든 것은 가벼워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치 중심이 쓸모 있는 것에서 매력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그들의 조언을 마케팅의 관점이 아닌 동시대의 삶을 이해하는 진지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변화의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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