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금성사는 최고 기업이었다. ‘골드스타(Gold Star)’는 주부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브랜드였다. 다리미에서 네발 달린 TV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가전제품에서 골드스타는 독보적 브랜드 파워를 자랑했다. 기자는 어렸을 때 눈에 딱지가 앉도록 보아온 ‘Gold Star’ 로고를 지금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 광채를 발휘하던 골드스타는 90년대 들어 ‘2등별’로 전락하며 빛을 잃고 만다. 87년과 89년도에 발생한 파업투쟁으로 날을 지새는 바람에 연구개발 등 미래투자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글(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도 부족할 판에 내홍에 발목이 잡히면서 삼성에게 지존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금성사의 맥을 이은 LG전자는 지금까지 2인자의 치욕을 벗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구본무 LG회장은 ‘1등 LG’를 외치고 나섰다. 그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돌파구는 1등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R&D(연구개발)에 매진할 것을 천명했다. 권토중래를 꿈꾸는 LG의 염원이 절절히 느껴진다. 그러나 구 회장의 ‘1위 복귀’ 다짐 선언이 정작 관심을 끄는 것은 그 배경에 노조의 전폭적 지지가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대의를 버리고 소리(小利)만 탐내다가는 ‘내일’을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이 과거 투쟁적 노조를 변화시킨 것이다. 물론 투명경영을 통해 모든 것을 공유하며 신뢰를 심어온 회사의 부단한 노력도 노조의 변화를 촉진한 자양분이 됐다.
LG전자 노사는 지난 2월 청주산단 업체중 가장 먼저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특히 노조는 기본급 동결을 넘어 자신들이 받을 성과급에서 6억원을 떼어내 R&D에 투자키로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R&D는 회사가 할 일이다.
올들어 산업평화 기상도에 불안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봉합됐지만 발전부문 파업, 전국공무원 노조의 출범 등이 파상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청주산업단지도 월드텔레콤 심텍 등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노사관계에 우려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조광피혁은 노노갈등으로 또다른 불신의 싹을 키워가고 있다.
노사관계처럼 상대가 분명한 주체간의 갈등에는 늘 양비적 요소가 존재한다. 평소 근로자를 바라보는 회사의 인식이 저급할 때 불신의 씨앗이 배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막무가내식 비타협적 노조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게 우리 노사문화의 현주소다. 더구나 노조집행부의 협조적 태도를 어용으로 매도하는 일부 노동운동권의 이분적 흑백논리는 사소한 이견조차 극한투쟁으로 몰고 가는 경직성으로 나타난다.
2년전 사양산업으로 어려움을 겪던 (주)대원이 명분없는 노조의 파업투쟁으로 주문이 급감, 결정적 타격을 입은 사례가 전형적이다. 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겨준 데 대해 부담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 노조간부들은 그후 회사를 스스로 떠났다. 노조가 형해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명분론은 늘 선명해서 화려하고 당당하게 보이지만 냉철한 이성을 마비시키기 십상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