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여성 앵커가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은 한나라당 ㅇ 총재의 정치적 신의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로 표시했다. 최근 물의를 빚은 한나라당 ㅎ부총재는 거함이 흔들리면 ‘쥐새끼’들이 왔다갔다한다하여 ㅇ총재의 입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당내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소장파 의원들을 쥐새끼에 비견하여 비난하였다.
정치가 무엇이길래 정치와 결합만 되면 이전에는 멀쩡하던 사람들도 인간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일까. 논어에 이르기를 정(政)은 곧 정(正)이라하여 정치란 바로세워 다스리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백성을 바로 세워 다스리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이를 정치가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영어의 스테이츠맨(statesman)에 비견된다. 스테이츠맨이 말 그대로 국내정치와 외교 등 ‘나라’일을 하는 자라면 정치인은 정당정치를 주로하는 정치꾼이나 이익에 따라 정책을 바꾸는 정상배로 폴리티션(politician)의 범주와 연결지을 수 있다. 정치인이란 말은 한자 옥편에도 없는 말이고 보면 정치가로 부르기 어려운 수많은 정치꾼, 정상배들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한국식 조어로 짐작된다. 정치의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에서도 정치가에 해당하는 스테이츠맨은 위싱턴이나 링컨 등 극소수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을 맞아 지도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세몰이와 줄서기로 나라 안이 어수선한 이 때 조지훈의 지도자론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자는 따를 수 없다. 자기의 명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익과 세를 쫓는 이합집산의 혼란과 남을 거꾸러뜨리기 위한 인신공격과 국민의 눈을 현혹시키기 위한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이 시대의 정치판에 지조있는 지도자, 제대로 된 정치가를 어디서 보겠는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우리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김대중대통령까지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 마당에.
원래 정치란 국가의 주권자가 영토와 주민을 통치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지금은 백성이 단순한 통치의 대상이던 민종사회가 아니라 국민이 국가의 주권을 가지고 주인노릇을 하는 민주사회이다. 민주사회의 정치란 무엇보다 먼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받들어 영토와 국민을 지키고 보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정치가의 의미도 국민을 바르게 세워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국민이 그를 바로세워 제대로 다스려지는 자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정치가와 정치인의 구분도 국민에 의해 바로세워 다스려지는 자인가 아닌가로 판단함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거에서 국민들은 무엇보다 우선하여 바로세워 다스리기 쉬운 자를 뽑게 될 것이다. 자기의 정치철학이나 경륜을 내세워 국민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나 국민 앞에서 위엄을 세우는 자. 식언을 밥먹듯하는 자는 국민들이 바로 세워 다스리기 지난한 자들로 선택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될 것이다.
이처럼 정치와 정치가와 정치인의 이름이 바로 서면 정치를 하는 이들은 성실해지고 공적을 이룰 것이며 법을 따르고 국민의 명령을 따르는데 조심할 것이니 치적은 쌓일 수밖에 없고 정치는 발전할 것이다. ‘국민이 바로 세우기 용이한 성실한 정치갗야말로 시대적 요청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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